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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1일 10시 01분 등록

不在(부재)로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그를 애도하며


마광수 교수가 생을 마감했다. 자살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루에 평균 750명이 죽는 우리나라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그의 죽음은 사실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나의 무의식 속에 <즐거운 사라>의 작가이자 야한 소설을 쓴 교수로 강하게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자살 소식은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는 1992년에 <즐거운 사라>를 발간했다. 92년도이니까 그 당시 나는 고 2였다. 그 당시 이 책이 얼마나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는지 공부에 집중했던 나도 알게 되었다. 그는 출간과 동시에 음란물이라는 이유로 전격 구속 수감되었고, 소설 역시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다. 그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검찰과 사법부와 문화부의 공모로 이루어진 무고한 여인의 사형집행이라고. 사실 그 이후로 그에 대해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어떻게 사는지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고 점점 더 야해지는 이 사회가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지 않았을까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그런 그가 자살을 하다니 갑자기 물음표가 던져졌다.


인터넷에서 여러가지 관련기사를 읽다가 마광수 교수의 정년퇴임사를 알게 되었다.(그는 2016년에 정년퇴임을 하였다고 한다.)

정년퇴임을 맞으니 내 인생이 너무 억울하고 한스럽다. <즐거운 사라>사건으로부터 시작해서 학교에서 잘리고, 한참 후 겨우 복직했더니 곧바로 동료 교수들의 따돌림으로 우울증을 얻어 휴직한 것, 그 뒤 줄곧 국문과의 왕따 교수로 지낸 것, 그리고 문단에서도 왕따고, 책도 안 읽어보고 무조건 나를 변태로 매도하는 대중들, 문단의 처절한 국외자, 단지 성을 이야기했다는 이유만으로 평생을 따라다니는 간첩 같은 꼬리표. 그동안 내 육체는 울화병에 허물어져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다. 지독한 우울증은 나를 점점 좀먹어 들어가고 있고. 오늘도 심한 신경성 복통으로 병원에 다녀왔다. 몹시 아프다. 나는 점점 더 늙어갈 거고 따라서 병도 많이지고 몸은 더 쇠약해갈 것이고, 논 기간이 아주 길어 아주 적은 연금 몇 푼 갖고 살려면 생활고도 찾아올 거고. 하늘이 원망스럽다.”

짧은 퇴임사에서 그의 고통과 세상에 대한 분노, 원망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의 뒤에 감쳐진 이런 모습을 접하고는 적지않게 놀랐다. 당연히 사회가 그 당시와는 비교도 안되게 한바탕 쓰나미가 지나간 것처럼 변화되었는데도 그는 아직 그 당시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강한 멘탈을 가진 인간일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한없이 약한 존재였다. 그가 이런 삶을 살려고 그 책을 출판하지 않았을 건데. 전혀 즐겁지 않은 인생이 되어버렸다. 사람 운명이 참 기구하다.


필화사건 이후 25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즐거운 사라>는 판매금지 책이다. 도대체 얼마나 외설스럽기에 이렇지라는 생각이 든다. 작금의 우리 시대는 포르노와 야동이며 외설스러움이 난무한다. 누구나 맘만 먹으면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즐거운 사라>를 볼 수 없다. 그나마 중고시장에서 이 책을 구할 수 있는데 놀랍게도 적게는 3만원에서 15만원까지 간다. 아마 그의 죽음 이후 그 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이 정식으로 대중 앞에 다시 나오려면 유죄판결이 번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어디 쉽겠나. 새롭게 들어선 정부는 그동안 금지된 혹은 지연된 많은 것을 단시간안에 해결하거나 결과를 보여줬다. 이번에도 독자에게 읽을 권리를 찾아줄 것을 기대해 본다.


그의 <즐거운 사라>는 읽을 수 없었지만 그가 쓴 다른 에세이가 있어 잠시 읽어보는 것으로 그의 죽음에 대해 한 개인으로 애도를 표했다. 물론 그 에세이가 그를 다 대변해줄수는 없겠지만 그의 글은 참 따뜻했고 솔직했다. 그런 세상의 잣대로 평가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많은 유명한 소설책을 읽고는 한가지를 느꼈다고 한다. “나는 소설은 이제 좀 더 가벼워져야 하고 어깨에서 힘을 빼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면의 야한 욕구에 보다 솔직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재미를 위해서이다. 좀 더 심하게 얘기하면 쾌락을 위해서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소설을 통해 작가의 주제의식이 무엇인지 따져보려고만 한다. 주제의식과 같은 그런 어떤 묵직함이 없는 소설은 같은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닌 그런 것으로 분류된다. 지극히 나의 입장에서 말하면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유명하고 이름난 소설들은 하나같이 머리가 너무 아프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게 한다. 그냥 가볍게 읽으면 좋은데 온갖 어려운 것은 죄다 끌어모아 갖다 붙여놓는다. 그래서 그는 문학의 실제 효용가치를 본능적 욕구의 상상적 대리배설에 있다고 전제하고 대리배설로서 카타르시스를 연구하고 몸의 철학’, ‘육체주의등에 주목해 관련된 글을 많이 썼다.


나는 그 당시에도 성문학 작품을 즐겨 읽었는데도, 도대체 예술외설을 나누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나의 예술작품을 놓고 외설이냐 아니냐를 따질 때 현학군자들에 의해 흔히 거론되었던 기준 하나는 성을 그리되 존재론적 탐색을 곁들었느냐 안 곁들였느냐 하는 기준이다. 이른바 존재론적 탐색은 때로는 이데올로기적 탐색이 될 수 있고, 계급투쟁적 탐색이 될 수도 있다. 이를테면 한 여성이 성 자체만을 탐닉하는 것을 그린 소설이면 외설이고, 성을 통해 존재론적 깨달음을 얻으면 예술이 된다는 식이다.” 그런 논리에 의해 그의 소설은 일언지하에 외설이 되어버렸다. 같은 동양적 사고를 가진 일본에서 <즐거운 사라>는 문제없이 출간되어 우리나라 소설로는 이례적으로 베스트 셀러에 올랐다고 하니 참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사기>를 읽고 있는 이번 시기에 마광수 교수의 죽음을 보면서 한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는 너무 시대를 앞서갔구나. 조금만 더 인내하고 세상을 볼 줄 아는 혜안을 가졌다면 그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인데 시대를 잘못 태어난 그의 죽음이 안타깝다. 이번 죽음을 계기로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즐거운 사라>가 빠른 시일 내에 해금이 됨은 물론이고 오명으로 얼룩진 그의 누명이 깨끗이 지워지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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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1 14:45:03 *.226.22.184

구하게 되면 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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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5 20:41:56 *.223.36.249
"존재론적 탐색"이란 녀석때문에 얼마나 많은 글들이 숨, 막혀했을까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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