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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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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4일 11시 37분 등록

죽음의 굿을 삼킨 늪, 예기소

- 김동리의 <무녀도>, 1936

 

한 여인이 죽었다. 강가 모랫벌에 쳐진 큰 차일 밑에서, 마을 여인들은 무당의 시나위 가락에 취해 있다. 새벽이 가까워 온 듯 그녀들의 얼굴은 피곤에 젖어 있지만, 물에 빠진 혼백은 아직 건져지지 않고 있다. 초망자의 줄을 잡은 화랑이가 넋대를 따라 이리저리 초혼그릇을 옮겨보지만, 강물은 온갖 비밀을 품은 듯 말이 없다. 무당이 혼백을 불렀다. 뼈도 살도 없는 혼령처럼 그녀의 소리는 목이 메었다. 박수들의 장단이 한없이 늘어져 갔다. 무당은 넋대를 따라 점점 더 깊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검은 물이 그녀의 허리를 감고 가슴까지 삼키더니, 종내는 넋두리와 함께 아예 잠겨버렸다. 물위로 쾌자자락이 잠시 머물더니, 마침내 넋대만 빙빙 돌다가 흘러가버렸다.

 

절벽이다. 멀리 서라벌 들판이 한 눈에 다 찰만큼 금장대는 솟아있다. 가을볕을 받은 경주시내는 야트막하게 움츠린 구릉이다. 천년의 세월을 그랬듯이 토함산에서 떠오른 해는 어느덧 중천을 넘어 한참을 기울었다. 발치 아래 물빛은 어둡다. 황룡계곡에서 시작한 북천과 토함산 계곡에서 발원한 남천이 이곳으로 흘렀다. 덕동호수와 보문단지를 지나거나 남산 앞자락으로 시가지를 감싸 돌아온 물길들은 형산강 본류인 서천에서 뒤섞였다. 토함산이 있는 동쪽을 빼고 경주는 서남북으로 물길에 포위된 형상이다. 폭이 넓게 욕심껏 하늘을 담은 강물은 금장대 절벽에 이르러 느린 걸음으로 휘돌았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소沼다. 무녀巫女 ‘모화’의 마지막 굿이 열렸던 곳,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巫女圖>는 형산강 금장대 절벽 아래 ‘예기소’에서 시작된다.

 

‘예기소’에서는 해마다 사람이 빠져 죽었다. 물놀이를 하다 익사한 어린아이도 있지만, 기구한 사연을 짊어지고 스스로 생을 달리한 목숨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상류에 덕동댐과 보문호수가 있지만, 보문관광단지가 조성되기 전까지만 해도 북천은 홍수로 자주 범람했다. 한꺼번에 밀려온 물길들이 갈 곳을 잃고 우왕좌왕 뒤엉키며 소용돌이가 일면, 마치 이무기가 또아리를 틀어 놓은 듯 웅덩이가 깊게 파였다. 전하는 얘기로는 아주 오래 전 ‘을화’라 불리던 기생이 금장대에서 왕과 연희를 즐기다 실수로 빠져죽었다는 말도 있고, 경주지방의 사대부들이 ‘예기藝妓’라 부르던 기생들과 풍류를 즐기던 자리라고도 한다. 심지어는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가 발표된 후로 매년 아이들이 빠져죽어서 그렇게 불린다는 풍문도 있었다. 어쨌든 예기소 언저리에는 늘 음습한 소문들이 끊이지 않았고, 강변 모래사장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굿판이 열리곤 했다. 동리가 유년을 보내던 시절도 다르지 않았다.

 

소설이 발표된 것은 1936년, 김동리의 나이 스물 셋이었다. 그는 샤머니즘과 기독교의 대립과 갈등을 어머니와 아들이자, 신들린 무당과 독실한 교인인 ‘모화’와 ‘욱이’의 비극으로 엮어냈다. 당시는 일제 치하의 암울한 세상이기도 했지만, 전통과 근대가 충돌하며 급격한 혼란을 빚어내던 시기였다. 이런 시대적 흐름이 작가의 문학세계에 고스란히 담겼다는 평이 세간의 중론이다. 그의 초기 작품이자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무녀도>는 발표 이후에도 두어 차례 수정됐다. 특히 1978년 장편으로 개작된 <을화乙火>는 1982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작가는 ‘신들린 세상’ 속에서 ‘인간들의 미래’를 찾기 위한 여정이 곧 자신의 작가 의식이었다고 말한다. ‘새로운 신’을 찾아 나선 그의 문학적 행보는 ‘샤머니즘’에서 출발했다.

 

갈등의 시작은 집을 나갔던 모화의 아들, 욱이가 나타나면서 부터였다. 욱이는 모화가 아직 세상물정도 모르던 시절, 어떤 남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 어릴 적 제법 신동이라는 소리도 듣고 자란 욱이지만, 미천한 신분에 공부를 계속하기 힘들었다. 그러던 차에 아는 이의 도움을 받아 어느 절간으로 떠나보냈던 것이다. 벌써 십 년 전 일이었다. 모화의 반가움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었을까. 덥석 품에 안고 볼을 부벼대도 다하지 못할 그리움이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며, 모화는 욱이의 하는 꼴이 영 눈에 거슬렸다. 밥상머리 앞에서 눈을 감고 웅얼거리지를 않나, 아침저녁으로 무슨 주문 같은 걸 외어대고, 틈틈이 품속에 감춰둔 책을 꺼내보는 것이었다. 한 번씩 귀머거리 여동생 낭이에게 하느님을 운운하더니, 급기야는 제 어미가 하는 일마저 ‘귀신 들린 짓’이라고 트집 잡기 시작했다. 도망치듯 절간을 뛰쳐나와 정처 없이 떠돌다가 현목사의 도움으로 기독교를 접한 욱이로서는 어느 것 하나 틀린 주장이 아니었지만, 평생을 무당으로 살아 온 모화로서는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모화는 아들에게 ‘예수 귀신’이 씌었다고 믿었다. 귀신을 쫓아야 했다. 모화는 서둘러 푸닥거리를 준비했다.

 

강을 건너면 성건동이다. 금장대에서 내려와 예기소를 왼편에 끼고 조금 걷자, 동대교가 형산강을 가로질렀다. ‘여민촌’ 또는 ‘잡성촌’으로 묘사되던 마을은 한때 집집마다 대나무가 오르고, 점을 치고 굿을 하던 무당들 꽤나 모여 살던 동네였다. 경주읍에서 성 밖으로 십여 리 정도 떨어진 마을에는 ‘지붕 위에 기와 버섯이 퍼렇게 뻗어 올라 역한 흙냄새를 풍기던’ 모화네 집도 있고, 작가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강변로를 타고 물길을 거슬러 걷는 사이에도 차들은 넓은 대로를 막힘없이 달렸다. 형산강 물길도 반듯하게 흘렀다. 잔디를 심어 풀 한 포기 보이지 않게 널찍한 둔치와 콘크리트로 다듬어진 호안 사이에서 세월은 더 빨리 흐르는가 싶었다. 팔십년…… 소설 속 흔적들을 더듬기엔 너무 오랜 시간이다.

그래도 남아있을지 모를 뭔가를 기대하며, 당산나무로 짚이는 느티나무를 이정표삼아 대로를 벗어났다. 어느 틈부터 한 발 앞선 그림자를 뒤따라가고 있었다. 성건동 284번지, 생가는 골목 안쪽에 있었다.

 

욱이가 두 번째 집을 나갔다 돌아오던 그날 밤이었다. 욱이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따금 어머니와의 불화 때문에 마음이 심란해지면 근방의 교인들을 찾아다녔던지라 피곤했던 참이었다. 그런데 한 밤중에 허전한 기운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품속의 성경책이 사라지고 없었다. 어머니 짓이 분명했다. 소복단장에 쾌자까지 두른 모화는 부엌에서 한참 푸닥거리를 하고 있었다.

“서역 십 만 리 예수 귀신이 돌아간다.

당산에 가 노자 얻고, 관교에 가 신발 신고,

두 귀에 방울 달고 방울 소리 발맞추어

재 넘고 개 건너 잘도 간다…….”

욱이의 품에서 사라졌던 성경책은 마지막 불꽃을 사르며 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일순간 욱이가 소반 위 냉수그릇을 집으려 덤벼들었다. 심장을 쥐어짜는 통증에 그는 아무것도 살필 수 없었다. 기어이 사단이 나고 말았다. 욱이는 머리와 목덜미 그리고 등허리에 상처를 입었다. 모화의 손에는 식칼이 들려 있었다.

 

모화의 지극정성에도 불구하고, 겨울이 깊어가면서 욱이는 알아보게 시들해졌다. 때마침 편지를 받고 찾아온 현목사의 성경책을 가슴에 안은 채로 욱이는 눈을 감고 말았다.

“서역 십 만 리 예수 귀신 돌아간다.

꽁무니에 불을 달고 두 귀에 방울 달고, 왈강달강, 왈강달강,

엇쇠 귀신아 썩 물어가거라……”

“우리 아들은 예수 귀신이 잡아갔소.”

그날 이후로 모화는 굿을 나가지 않았다. 먹는 것도 잊은 채 혼자서 징과 꽹과리만 울렸다. 입술은 점점 검어지고 눈에는 광기가 돌았다. 모화는 아주 실성한 사람으로 살았다.

그러던 중 모화의 마지막 굿이 있을거라는 소문이 퍼졌다. 들리는 말로는 ‘예수 귀신이 진짠가 신령님이 진짠가 결판을 낼 거’라는 소리도 있었고, ‘딸의 입을 열게 할 거’라는 말도 돌았다. 소문이 꼬리를 물고, 사람들의 기대와 호기심을 불렀다.

 

집은 허물어지고 없었다. 골목 어귀 이정표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겨우 찾아낸 표지판은 이웃집 담벼락에 바짝 등을 대고 붙어 있다. 집터는 감나무 아래로 키 작은 나무들이 드문드문 심겨진 평범한 정원처럼 보였다. 옛집은 이미 지난 60년대 뜯겨 사라졌고, 남겨진 집터 또한 이웃한 세 집에 분할되었다고 한다. 경주시와 기념사업회 측이 토지를 구입하려 하고 있지만, 아직 살고 있는 주민들의 동의를 얻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루가 긴 그림자 뒤로 저물어 가고 있다.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작가의 생가 터 앞에서 뒤적이던 책을 덮었다. ‘자살 아닌 자살’ 같은 모화의 죽음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그리고 홀로 된 낭이는 때맞춰 나타난 친아버지를 따라 나귀에 올랐다. <무녀도>의 모든 이야기는 모화와 아들 욱이의 갈등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던 딸의 기억 속에 남겨진다. 자칫 부모가 자식을 죽인 폐륜으로 치부될 뻔했던 사건은 모두와 피를 나눈 유일한 존재인 낭이에 의해 예술로 승화된다. 귀도 먹고 말도 제대로 못하던 낭이의 <무녀도>, 이 한 장의 그림으로 말미암아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 소설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주인공들의 죽음과 상관없이 이야기는 돌고 또 돌며 전해지고 있다.

 

1978년 김동리는 <무녀도巫女圖>를 장편으로 개작한 <을화乙火>를 세상에 내어 놓으며, 『문학사상』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다.

“내가 <巫女圖>에서 샤머니즘과 기독교의 충돌을 시도했던 것은, 막연히 생각할 수 있는 동서 문화의 충돌이라든가 신·구정신의 대립이라든가 하는 따위가 아니고, 나대로는 좀 더 미래적인 세계를 전제하는 새로운 신의 탄생을 문학적 표현으로나마 시도코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巫女圖>뿐 아니고 샤머니즘을 다룬 다른 어느 작품에서도 나의 이러한 포부를 전달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하고 부족했던 것이다. ……

따라서 나는 이번의 <乙火>를 통하여, 먼젓번 <巫女圖>에서, 줄거리의 일부에다 분위기만 붙여두었던 이 샤머니즘의 세계를 문학적으로 형상화시키는 일과 아울러 샤머니즘에서 이승과 저승에 관련되는 새로운 문제점을 한국문학과 나아가서는 세계문학에 제의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을화>는 종교로 인한 갈등과 대립이라는 소설의 얼개는 그대로 유지되지만, 장편소설답게 몇몇의 인물들이 더 등장하며, 주인공들의 이름도 각각 을화, 영술이, 월희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액자소설이라는 틀에서도 벗어나 이른 아침 물을 깃는 무녀의 일상부터 바로 시작한다. 또한 을화가 마마에 걸린 영술의 간호 끝에 신내림을 받게 된 사연이며, 영술이 친부인 성출을 찾거나 박장로와의 만남을 통해 혈연적인 정체성과 종교적인 고민을 성장시켜가는 장면들이 소개된다. 무엇보다도 무당이 굿을 하는 모습들과 을화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어 한국적 샤머니즘에 대한 이해를 넓혀놓고 있다. 그리고 많은 숙고가 있었을 것인데, <무녀도>의 모화와는 달리 을화는 죽지 않는다.

 

“어릴 때 개천가에서 그 수렁과 수렁 위의 흐린 물을 바라보면, 모든 과거와 모든 죽음이 그 속에 다 들어 있을 것만 같아 가슴이 북받쳐 오르곤 했다.” 1)

 

아직 복원되지 않은 동리 생가 앞에서 작가의 회상을 떠올리며, 한 소년이 겪어냈던 유년시절 죽음의 기억들을 되짚어 봤다. 소년의 일상 가까이에서 ‘예기소’는 흔히 죽음을 삼키던 공간이었다. 흘러가는 것들과 흘러오는 것들, 강은 지난 것들을 붙잡지도 새로운 것을 거부하지도 않았다. 죽음과 삶, 과거와 미래가 끊김 없이 뒤엉켜 흐를 뿐이었다. 앞뒤를 따지지도 이유를 가지지도 않았다. 세상의 온갖 것들이 그 품안에서 생성하고 소멸했다.

이제 그 강물에도 어둠이 깃들고 있을 시간이다.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동리는 95년 6월 숨을 거두었다. 누구는 삶이 죽음으로 끝났다고 했지만, 죽음을 넘어 삶은 위대해지고 있었다.

 

뒤에 물러 누운 어둑어둑한 산, 앞으로 폭이 널따랗게 흐르는 검은 강물, 산마루로 들판으로 검은 강물 위로 모두 쏟아져 내릴 듯한 파아란 별들, 바야흐로 숨이 고비에 찬 이슥한 밤중이다. 강가 모래펄엔 큰 차일을 치고, 차일 속엔 마을 여인들이 자욱이 앉아 무당의 시나위 가락에 취해 있다. 그녀들의 얼굴 얼굴들은 분명히 슬픈 흥분과 새벽이 가까워 온 듯한 피곤에 젖어 있다. 무당은 바야흐로 청승에 자지러져 뼈도 살도 없는 혼령으로 화한 듯 가벼이 쾌자 자락을 날리며 돌아간다…….2)

    

 

 

 

1) 김훈, 박래부 <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고> 중에서

2) 김동리, <무녀도>중에서

IP *.186.58.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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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4 11:44:23 *.186.58.134

이번 주부터 '江, 물꼬를 트다'라는 큰 제목으로 약 20회 연재를 시작합니다.

소설과 영화같은 문학예술 작품 속에 비친 강을 따라가는 문학기행이면서,

강이 저마다 가진 사연들과 의미들을 소개할 생각입니다.

연구원 식구들의 많은 관심과 좋은 평을 부탁드립니다.

- 진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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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8 08:54:48 *.37.122.79

선배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시죠?

강과 문학이라~ 기대되네요~!

글 자체가 소설같은 느낌!

 

ps. 초기화면에 재키재동 배너가 걸려있어서 헷갈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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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9 15:49:17 *.186.58.134

네,.. 경수씨.. 사진 잘 보고 있어용. ㅎㅎ

- 베너는 곧 바뀔거 같아요. 실수가 있었던 모양이예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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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8 08:58:52 *.110.177.216

다시 돌아왔군요.  환영합니다. 연재 주제 좋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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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9 15:50:27 *.186.58.134

네, 다시 돌아왔더니.. 좀 쓸쓸해보이네요.

일단 맘먹고 시작했는데.. 좋은 말씀 부탁드려요.

선배님도 건강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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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8 10:38:25 *.36.149.144
앗! 반가운 글이다!!!
제목 멋집니다!
매주 기다리겠습니다~*^^*
독자들을 쏙쏙 끌어당기는,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은 글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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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9 15:51:41 *.186.58.134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은 글!!

념두에 두고 있으께...

가드레일이 길 안내 잘 허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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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9 18:33:30 *.34.224.75

첫 글을 죽음으로 시작하다니,

마지막은 진한 삶으로 마감하겠구나...


연재 마지막 날,

막걸리에 취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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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0 11:20:01 *.186.58.134

조~오치요..

형 좋아하는 강물에 배띄우고, 달빛에 노래하면서...

藝妓들이랑... ㅋㅋ

그리놀믄 인생이 참 폼도나고 맛깔날턴디...ㅎㅎ

형, 지금부터 같이 놀 사람 신청받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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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2 15:30:36 *.235.248.131

20주후면 그러니까... ㅎㅎ

그날을 기다리며 열독하겠슴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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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3 14:25:21 *.186.58.134

ㅎ 박작가 ~ 많은 지도 편달바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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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6 14:33:07 *.42.252.225

많이 다니며 듣고 본  흔적이 묻너나는 글이네.

여테 잡았던 책들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풀어냄이기도 하고...

너무 많은 정보와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아 한 번에 다 쏟아 놓은 느낌이드네.

부드럽고  끊이지 않는 강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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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6 15:41:14 *.186.58.134

보내준 고구마는 1차로 오븐에 구워먹고,

며칠 있다가는 '아웃백스타일'로 만들어 먹어볼거임.

ㅎㅎ

부드럽고...끊이지 않은 이야기..큼..큼..감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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