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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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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1일 06시 56분 등록

한강에는 괴물이 산다.

- 봉준호의 <괴물>, 2006

 

어둠 속이다. 시력을 잃고 곤두선 귀가 컴컴한 화면 저편을 더듬으며 ‘달그럭거리는 소리’를 따라갔다. 갑자기 시야가 열리면 눈앞은 난데없는 시체해부실, 2000년 2월 9일 용산기지 영안실이다. 수술복을 입고 마스크로 입을 가린 두 남자가 각각 화면의 한 쪽 씩을 차지하고 서 있다. 왼편에 미국인 남자가 먼저 말을 꺼낸다. 그의 손에 들린 진한 갈색 병은 먼지가 잔뜩 늘어 붙어있다. 포르말린…… 아니 정확하게 시체의 방부처리에 쓰는 독약, ‘포름알데이드’라고 짚어 말하는 그가 당황해 하던 한국인 남자에게 재차 명령한다. 그는 한강은 넓고, 한강처럼 넓은 마인드를 가지라고 충고하며 등을 돌렸다. 남자의 손에서 버려지는 액체들이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하수구 구멍으로 사라졌다. 무너질 것 같은 남자의 등 뒤에는 어느덧 470개쯤 되어 보이는 빈병들이 빼곡하게 늘어섰다.1)

 

다시 2006년 10월 한강대교, 빗발이 퍼부어 대는 다리 위로 두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다. 그리고 한 남자, 사업에 실패한 중년처럼 보인다. 지금 그는 다리 난간에서 거의 뛰어내릴 듯한 자세로 강물을 노려보고 있다. 가로등 불빛이 젖은 머리칼에서 흘러내린 빗물을 타고 뚝뚝 떨어진다. 다리 아래 어둠 속에서 강물은 온통 죽은 빛이다. 홀린 것 같다. 그 깊은 유혹 속에서 무언가를 본 듯한 남자의 중얼거림이 이어지고, 어찌할지 몰라 하는 두 남자의 비 맞은 얼굴이 잠깐 사이 일그러진다. 이미 작정을 한 듯, 말릴 틈도 없이 남자는 한 마디를 남겨 놓고 강물로 뛰어들었다.

“끝까지 둔해 빠진 새끼들…… 잘 살아들……”

남자를 집어삼킨 시커먼 한강, 빗줄기는 더욱 거세게 쏟아 부었다. 그 위로 흔들거리듯 하얀 자막이 떠오른다.

괴. 물.

 

총사업비 9560억 원, 동원 연인원 420만 명, 동원 장비 100만 2천대.

영화 <괴물> 이야기가 아니다. 천문학적인 저 숫자는 <괴물>의 배경이 된 한강의 둔치와 하수구, 그러니까 1982년 9월에 시작해서 1986년 9월에 준공된 이른바 ‘한강종합개발사업’2)에 소요된 비용, 동원된 인력과 장비 규모다.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한강의 모습은 다시 한 번 탈바꿈하게 된다. 국제적인 대회를 치르는 나라인 만큼 수도인 서울은 이제 그 위상에 걸맞는 모습으로 거듭나야 했다. 전쟁의 피비린내를 닦아내고 분단의 위험도 감춰야 했다. 가난으로 그늘진 모습을 걷어내고 풍요로 여유로운 모습을 내세워야 했다. 날카롭던 독재자의 눈빛은 안경 너머로 숨겨졌고, 통행금지도 해제되었다. 무채색으로는 시대의 변화를 담아내기에 버겁던 흑백 텔레비전들은 이제 내다버려야 했다. 화려한 네온사인 속에서 서울은 밤에도 꽃을 피웠다. 평화를 꿈꾸고 자유를 노래하는 서울이 필요해졌다. 한강은 그 격변의 한 복판을 흐르고 있었다.

 

외국의 유수 사례들을 벤치마킹 했다. 일본의 교토를 흐르는 요도가와(淀川) 그리고 도쿄를 관통하는 아라가와(荒川)와 타마가와(玉川)가 가까운 모델이 되었다.

김포대교에서 천호대교 부근까지 36킬로미터에 달하는 강바닥의 깊이를 고르고, 상류와 하류 쪽에 각각 물막이 보를 설치해서 수로에는 계절에 상관없이 물이 흘렀다. 사라졌던 나루터대신 군데군데 선착장이 들어섰고, 강물에는 고깃배대신 유람선을 띄웠다. 암사동에서 성산대교까지 26킬로미터 구간은 4차선에서 8차선으로 확장하고, 성산대교에서 행주대교 간 10킬로미터 구간은 제방을 새로 쌓았다. 올림픽대로의 면모가 갖춰진 것이다. 탄천, 중랑, 안양, 난지 등에 4개의 하수처리시설이 지어졌고, 한강으로 흘러드는 모든 지천들의 양쪽 둔치를 따라 총 길이 274.6킬로미터의 하수관들을 매설했다. 이제 더럽고 냄새나는 하수들은 모두 관을 타고 하수처리장으로 직접 이어졌다. 뿐만 아니었다. 한강의 양쪽 강변을 따라 13개 지구에 총 694만 제곱미터의 공원부지를 조성하여 체육시설과 갖가지 편의시설들이 들어서게 했다. 10톤 트럭 232만대 분의 흙이 들어갔고, 공사비 중 1962억 원은 한강에서 퍼낸 골재를 팔아 충당했다. 이 엄청난 역사를 이룬 괴력의 건설사 사장은 훗날 서울시장도 되고, 대한민국의 대통령도 되었다.

 

팔당을 벗어난 강물이 금암산 자락을 끼고 크게 굽이쳤다. 광나루 근처에 다다른 강은 서울의 한복판으로 접어들었다. 한강은 동서로 흐르며 남북으로 서울을 갈라놓았다. 강남과 강북은 강물을 사이에 두고 서로 밀고 밀리는 일진일퇴를 거듭한다. 광진이 송파를 밀면, 강남이 성동을 치고, 남산자락에서 뻗어 내린 용산이 기세 좋게 동작을 파고들면 주춤거리던 관악이 팽팽한 힘으로 막아선다. 강물은 여기서 겨우 몸을 뒤틀며 숨을 고른다. 영등포와 마포가 강을 사이에 두고 장기판의 양포처럼 서로를 삼키지 못하고 노려보는 사이, 몸을 풀던 강물이 슬그머니 섬을 낳아 놓았다. 여의도와 밤섬이다.

섬들은 커다란 뱀이 삼킨 알 같기도 하고, 강이 마악 알을 품어 배가 불룩해진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금술 좋지 못한 부모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서로 우애할 줄 몰랐다. 강물이 밤섬 너머 위쪽으로 지나던 시절에는 여의도와 밤섬이 간혹 모래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던데, 5.16 쿠데타로 세상이 뒤집히더니 덩치가 컸던 여의도는 제 몸집을 더욱 키우려고 눈앞에 밤섬을 깎아 먹고 말았다. 큰 것이 작은 것을 집어 삼켜도 큰 소리 한 번 낼 수 없었던 시절이었고, 배고픔이 아름다움보다 앞서던 암울한 때였다. 강물보다 높게 키를 돋우고, 모래밭이던 둘레로 제방을 쌓아 다졌다. 섬의 하류 쪽에 솟아있던 ‘양말산’을 깎아내도 부족했던 흙은 밤섬에서 가져왔다. 1968년 2월, 밤섬은 송두리째 폭파되었다. 마치 포식자가 뜯다 남긴 잔해처럼, 허리가 잘린 섬은 흉물스럽게 뿌리가 드러났다. 강을 가로지른 다리가 잠시 짚고 넘어가는 섬, 그저 철새들이나 찾아드는 밤섬은 여전히 강물 위에 떠 있었지만, 좀처럼 흘러갈 줄을 몰랐다.

 

밤섬이 바라다 보이는 이 곳, 하늘보다 더 푸른 물빛이 잠긴 한강은 오른편 마포대교를 지나 왼쪽 서강대교 밑으로 천천히 흐른다. 지루한 하루하루가 흘러와 꾸역꾸역 삼켜졌다. 여의도 고수부지는 한강시민공원 중에서도 사람들이 제일 많이 찾는 곳이다. 멀리 63빌딩이 보이고, 가까운 곳에 국회의사당 건물이 자리해 있으며, 공원 주차장을 끼고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교회가 든든하게 버틴 코앞으로 유람선이 오고가는 선착장이 있다. 여의도는 이제 조선시대 양과 염소나 키우던 방목장도, 일제가 일본과 만주를 잇는 비행기를 띄우던 활주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름도 다 헤아리기 어려운 금융기관들과 방송사, 유수한 대기업들의 고층빌딩들로 빼곡히 채워진 노른자위 땅이 되었다. 강두네 가족은 이곳에 살았다.

 

가로 5미터, 높이 3.5미터, 깊이 2.5미터의 컨테이너 박스. 강두와 아버지 희봉 그리고 중학생 딸 현서가 사는 매점이다. 아마도 강두네는 올림픽을 앞두고 재개발이 한창이었던 상계동 어디쯤에서 흘러들었을 것이다. 한강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던 그 시절, 올림픽 성화 봉송이 지나는 길목에 자리한 상계동 달동네는 미관상의 이유로 철거되어야 했다. 삶의 뿌리가 뽑힌 빈민들 중 더러는 한강시민공원의 매점을 맡아 운영하기도 했었다. 현서가 괴물에게 잡혀가던 그날도 매점을 찾는 손님들이 많았다.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 오리배를 젓던 연인들, 오징어에 캔 맥주를 시키던 일상은 난데없이 출현한 괴물에 쫓기기 시작했다. 공원은 금새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선착장이 있던 콘크리트 호안을 따라 종횡무진 하던 괴물이 철새관찰소로 쫓겨 들어간 사람들을 해치고 잔디밭 이곳저곳에서 난동을 부리다 마침내 현서를 낚아채 다시 강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망연자실한 눈으로 뒤를 쫓던 강두를 뒤로 하고 강 건너 밤섬 쪽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암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날 오전 밤섬 근처에서 하반신이 잘린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는 괴물보다 한발 늦게 흘러나왔다. 봉준호 감독은 아주 얄궂은 운명으로 이 장면을 엮었다. 현서가 그냥 잡혀간 것도 아니고 도망치는 사람들의 틈새에서 강두가 현서의 손을 놓치는 장면을 끼워 넣은 것이다. 잠시라도 자식을 잃어버려 본 경험을 가진 부모라면, 이제 강두에게는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죄의식의 족쇄가 채워졌음을 알아챌 수 있다. 한강에 출현한 정체불명의 괴물과 강두네 가족의 사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괴물은 관객들을 꼼짝없이 묶어둔 채 계속되는 희생자들의 피비린내와 하수구에 풍기는 악취 그리고 ‘새끼를 잃고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강두의 냄새가 뒤범벅된 한강의 구석구석으로 끌고 다닌다. 영화 속에 비친 한강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지나면서 보아왔던 그런 풍경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 카메라는 세상의 반쪽이면서도 방송에는 잘 나오지 않던 텔레비전 바깥의 세상을 담고 있다. 일상이면서도 감추고 싶은 한강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괴물은 가까우면서도 생소하던 바로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모든 영화가 그러하듯 주인공인 괴물이 죽으면서, 영화도 끝이 났다. 바리케이드를 치고 1급 통제구역을 관리하던 군인들이며, 바이러스 감염이라고 겁을 주던 의료진들도 모두 철수했다. 오늘의 한강은 분명 어제의 그것이 아니다. 무심한 세월이 강남과 강북을 잇는 스무 개도 넘는 다리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사이, 끊겼던 한강철교가 다시 이어졌고, 제3한강교가 한남대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언제 무너졌냐는 듯이 성수대교는 다시 번듯하게 서 있다. 사람들은 다시 한강으로 몰려왔다.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처럼 차를 몰고 강바람을 맞으며 담배를 피워 물었고, 쓴 소주를 혼자 삼키기도 했다. 캔맥주를 하나씩 든 연인들이 데이트를 했고, 둔치 잔디밭에는 가족들이 소풍을 나왔다. 자전거가 길을 가르며 지나갔고, 이어폰을 꽂고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뒤를 따랐다. 유람선은 푸른 강물위에 하얀 구름처럼 떠서 한강의 마지막 완벽한 풍경을 연출했다. 오후의 햇볕과 바람은 언제까지나 따스할 것만 같다. 노래가 들려온다.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와… 부풀은 내 마음… 3)

 

행복은 부러움을 타고 공중파를 통해 빠르게 감염됐다. ‘KS 품자 마크’가 찍힌 서울 사람들의 삶은 곧 전국의 강과 하천으로 복제되어갔다. 대구의 신천, 청주의 무심천 그리고 울산의 태화강으로 번져갔고, 전국 방방곡곡 사람들은 괴물이 출연했던 한강을 잊은 듯 강물에 비친 ‘서울의 달’을 동경했다. 광주천도, 원주천도 그리고 대전의 갑천까지도. 고향의 추억과 지역의 역사가 흐르던 강변은 공원으로 진화했고, 작은 한강들이 유행가처럼 흘렀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추억과 그곳에서 있었던 역사를 잊은 것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가 아주 게걸스럽게 사람들의 기억과 강의 이름들을 집어 삼켰다. 아무래도 한강에 살던 그 괴물도 함께 복제된 듯싶다.

 

영화는 ‘이제 안전하다’는 정부의 발표를 전하는 뉴스로 끝을 맺지만, 여전히 신뢰할 수 있을지 싶다.

겨울의 한강. 어둠 사이로 띄엄띄엄 가로등 불빛 몇 개가 서 있고, 눈이 덮이는 둔치에서는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매점 창밖을 응시하던 강두가 움찔하더니, 둔치너머 어디쯤에 맞춰진 초점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손을 더듬어 괴물을 잡던 그 총을 잡아들었다. 헛것이라도 본 걸까.

    

 

 

 

 

1) 주한미군 한강 독극물 무단방류사건(2000.2.9) 위키백과사전 참고

2) 한강종합개발사업, 두산백과사전 참고

3) 이선희, <아름다운 강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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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5 11:16:37 *.236.10.20

세계는 자연과 문명과 생명체의 모습으로 위장한  텍스트이다. 허니 어떤이에게 세계가 A로 보이고, 다른이에겐 B로 보이는 건 문맥을 짚는 고유의 시각이 다를 뿐, 자연스러운 일일 게다. 한솥에서 나온 밥을 먹고 제각각의 똥을 누듯이. 배설은 살아있음을 입증하는 일이니, 진철의 글 두 편이 반가울 수밖에ㅎㅎㅎ 육체적으로 살아있을 뿐 아니라, 텍스트를 지지고 볶아 신진철표 New World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구라빨도 살아있음을 알겠다.

 

지난 여름, 서강대교를 투벅투벅 걸어왔다던 네 모습이 떠오른다. 열사의 잔상으로 혹시 수면위를 어슬렁거리는 괴물을 발견했니.ㅎㅎ그곳에 괴물이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푸석푸석 말라비틀어진 서울 한복판의 리얼 월드에서 네가 남긴 발자국들을 통해 숨통을 틔우는 하늬바람이 건너왔을 것은 알겠다. 그날  한강은 미시시피강이 되고, 신진철은 톰소오여이자 허클베리핀이 된거다.

 

보이는 것이 세상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이 진짜 세상이지. 가상 현실은 남이 만든 세상을 지 세상이라 착각하며 사는 거고. 20편의 江을 지어 세상 멀리 흘려 보내거라. 찰지고 기름진 이야기가 척박한 땅에 단물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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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6 15:39:31 *.186.58.134

박상현식 변증법, 똥의 존재론... 그득그득 그윽한 냄새가 가득하구나. ㅎ

하필 맨 뒤에 찰지고 기름진 이야기에까지 냄새가 묻어간다... 맨 끝에 단물까지도..ㅋㅋ

고맙다 톰, 아니 허크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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