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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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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4일 11시 51분 등록

사이후이(死而後已)


 무엇보다 가족의 갈등에 취약한 저는 일 년에 한 두 번씩 심한 위통을 앓습니다. 지난 상반기는 가족의 각기 다른 욕구를 절충해야 하는 큰일들이 두어 번 있었고, 그 과정에서 저도 어쩔 수 없이 내상을 입었던 가 봅니다. 이번에도 일주일간 거의 먹지 못하고 바보처럼 지냈습니다. 먹지 못한 다는 건 어떤 일에도 동기유발이 어려워진다는 거고, 바보스러워지는 무력감이 함께 찾아온다는 거지요. 그런 때면 상념 또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옵니다.


  제게 위통이 찾아오면 가는 곳이 있습니다. 15년 동안 단골로 다니는 동네 내과. 통증을 참다못한 저는 집필여행을 앞두고 병원을 찾았고, 그 병원에는 아이들도 어른도 아이가 된 듯 무장 해제 시켜 주는 특별한 의사선생님이 계십니다.


언제나처럼 변함없는 웃음으로 맞아 주신 선생님은 수면마취내시경이 아닌 일반내시경을 권장하며 제게 조직검사도 권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은 ‘노래’를 들려 주셨습니다.

조직을 아주 쪼끔쪼금 떼어내는데 선생님은 언제 떼어 내는지 알 수 없어요. 정말정말, 몰라요. 꼬딱지 만큼도 안 아파요.

제 나이 또래의 체격도 있으신 남자 분이 율동과 운율을 곁들여 진료과정에 대한 안내 노래를 하시는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시지요. 어찌 절로 미소가 지어지지 않겠는지요.


  그 말씀에 힘입어 저는 일반 내시경을 연신 잘 참는다라는 격려 속에 눈물콧물 다 흘리며 마쳤고, 위가 헐어 길게 피가 맺혀 있으며 늘 그렇듯 비흡연, 술 또한 즐기지 않기에 스트레스성 위염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물이 들어가도 쓰렸던 거지요. 

 

약을 처방 받았지만 어느 때보다 컨디션이 걱정되는 상황에서 몇 번이나 여행 가방을 풀었다 쌌다를 반복하다 집필 여행을 왔습니다. 그런데 스트레스성 위염이 어떤 것인지 새삼 느낄 정도로 2박 3일간의 일정을 잘 마쳤습니다. 서너 시간의 수면, 물 삼키기도 어려웠던 사람이 맞는지 스스로 의아할 정도로 많이 먹으며 건강히 지냈습니다. 돌아가서 검사 결과를 봐야 하겠지만 지금으로 봐서는 다 나았을 거 같은 확신이 듭니다.


함께 왔던 일행들이 일정을 마치고 모두 돌아가고 혼자 남은 지 나흘째인 오늘 아침, 글을 쓰면서 자꾸, 사이후이 [ 死而後已 ] 라는 고사가 떠오릅니다.


<논어>의 ‘태백’ 편에 나오는 이 말은 증자는 인(仁)의 완성을 위한 선비의 노력을 강조하면서 “죽어서야 멈출 길이니 이 또한 멀지 아니한가”(死而後已 不亦遠乎)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위나라에 출사표를 던지려 떠날 때 쓰였던 말이기도 합니다. 죽기 전에는 그치지 않을 일, 죽고 나서야 그만 둘일.


모든 것을 접고 딱 한 가지만 할 수 있는 이곳, 이 시간은 오로지 그동안 몰입하지 못한 장르의 글에 경배하는 온전한 시간입니다. 내일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에서 저는 또 사람들과 함께 했던 집필여행의 ‘장’ 에서 둥글고 크게 맺은 한 마디를 내내 생각하게 되겠지요. 그리고 종내는 몸을 불편하게 하는 스트레스에 대해서도 연구해 봐야겠습니다.


  어차피 사는 일은 ‘사이후이’ [死而後已] 가 아닌,   죽고 나서도 계속되는 일이기에 말입니다. 제가 즐겨 찾는 동네 병원, 그 특별한 의사분도 그것을 이미 알고 계셔서 그런 태도로 환자들에게 감동을 안겨 주시며 업을 하시는 거 아닐까요.

그대, 무엇을 하든 ‘사이후이’ [死而後已]를 기억하신다면 어떠실까요. 비장하게 말고 조금 가벼운 태도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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