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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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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6일 00시 35분 등록

* 본 칼럼은 변화경영연구소 1기 연구원 김미영 님의 글입니다.

 

 

기온이 뚝 떨어져 한파가 몰아쳤던 지난 주, 수업 끝나고 귀가 하는 길에 아파트 주차장에서 나오는 남편을 만났다. 순간, 알 수 없는 텔레파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도, 번호키를 누르며 현관문을 열면서도, 옷을 갈아입고 씻으면서도, 한 마디 말도 없던 남편의 한 마디. 한잔 할까? 바로 손잡고 촌닭 숯불바베큐 집으로 갔다. 시뻘건 불닭에 뚝배기 계란탕을 땀을 뻘뻘 흘리며 먹었다. 참이슬 빨강 뚜껑 3번 땄다. 둘다 수다쟁이로 돌변하는 순간, 나도 몰래 툭 튀어나온 말. “같이 좀 자자!

 

 

결혼하고 나서 나는 참, 더할 수 없이 솔직해지기 시작했다결혼기념일에 남편이 이벤트를 준비하며 뭘 먹고 싶은지 물었을 때, 빛의 속도로 답했더랬다. 보신탕! (그때 내 눈동자는 하트 모양이었을 것이다) 남편의 작은 눈은 황소 눈이 되어서 감길 줄을 몰랐다. 군대 가서 몇 번 맛봤단다. 다른 건 없냐고 물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난 이미 군침만 꿀꺽거렸다. 그렇게 먹기 시작한 결혼기념일 보신탕은 전골, 수육을 아이들과 나눠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냄비에 눌린 볶음밥까지 챙겨먹고 나면, 난 정말 뿅간다.

 

 

남편은 가끔(날 배려하고 싶을 때, 혹은 뭔가 켕기는 게 있을 때) 그걸 기억해내곤 한다. 지난 주말, 내 눈이 하트가 됐다. 게다가 스파 시설 장난 아닌 호텔 같은 모텔도 갔다. 세상엔 정말 별천지가 존재한다. 우리 집 리모콘 채널 수보다 많은 은은한 조명과 하얗고 뽀송뽀송한 시트의 커다란 침대는 더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벽면에 박힌 책상만한 TV는 컴퓨터에 저장된 영화를 꺼내 볼 수 있었다. 남편이 잠든 사이에 난 스파도 또 하고 DVD영화도 보고 다양한 채널을 돌려가며 보고 또 봤다. ~ 정말 별천지 아닌가?

 

 

우리 부부는 술 마시면 진짜 친하다. 하지만 슬픈 일은 술이 없으면 국물도 없다는 사실이다. 어쩌다 이런 사이가 됐을까?

 

 

서른의 나는 남편이 매일 마시는 그 술이 싫었다. 육아도 함께 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힘들기 때문이었다. 이혼을 결심하고 몇 차례의 별거도 감행했다. 아이들과 셋이서 살 계획도 세웠다. 남편은 없는 게 낫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그땐 아이들과 마주앉아 앞으로는 우리 셋이서 살 거란 얘기를 나누곤 했다. 하지만 번번이 ‘금주’를 약속하는 남편의 각서를 핑계로 도돌이표가 되었다. 남편을 믿었다기보다는 아이들이 자꾸만 걸린 것이 컸다. 작은 녀석이 아빠를 어찌나 좋아하던지… .

 

 

내 사랑이 저 멀리 떠나간 남편은 어지간히 외로웠던 모양이다. 다른 언니를 만나 함께 술을 마시고 잠을 자고 그랬단다. 나는 두 계절이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고 돌이킬 수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돌이킬 수 있었다. 가정을 버릴 생각은 없다는 이유였다. ‘결혼’이란 게 정말이지 지긋지긋했다. 내가 선택한 결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요상한 삶을 살고 있는 자신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른 선택이란 것이 글쎄 다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당연히 화가 났다. 그래서 다른 남자를 만나보기도 했다. 거기까지였다.

 

 

내 사랑은 아이들이었을까? 불안해하는 아이들 앞에 난 다시 마주앉아 이야기했다. 너희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진 아빠랑 같이 살게. 그때까진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갈 테니까 엄마아빠 걱정일랑 하지 말고 너희들 일 챙겨. 그리고 남편에게도 전했다. 아무런 말이 없었다. 시간은 참 잘도 흘러갔다. 그 사이 남편은 음주운전 경력 쌓아주시고.  피같은 첫 연봉 날려주시고. 나는 정말이지 도인의 경지에 이르렀던 것이다. 결혼은, 내 사랑은, 나를 또 다른 나로 변하게 했다. 이걸 쿨하다고 하나?

 

 

돌아보면, 지난 시간의 나로 미루어 짐작컨대, 이혼은 물 건너 간 듯하다. 타이밍이란 게 있다면 놓친 것 같다. 대신, 다른 결혼을 시도할 생각이다. 예쁜 별천지 모텔을 차례로 돌아볼 상상만으로도 재미가 솟아나니 말이다. 모텔에서 혼자 놀아봤나? 물론 남편이 잠든 사이였지만, 난 정말 그게 재밌었다. 돌아와서도 한동안은 혼자 씨익 웃으며 입꼬리 올라가준다. 그걸 보는 남편은 뭣도 모르고 괜히 만족해한다. 것두 나쁘지 않다. 이제 시작된 나의 또 다른 결혼. 아직까지 이건, 딴 남자보단 남편이 경쟁력이 있다!

 

 

, 쉬운 여자다

 

- 글쓴이 : 김미영 mimmy386@hanmail.net, 변화경영연구소 1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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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6 13:37:05 *.247.149.244

미영 누나, ㅎㅎ 어찌보면 진지한 글인데, 누나의 재치에 왠지 미소짓게 되네요.

어렸을 적 까맣게 몰랐던 세상들이 나이들어감에 어쩔수 없이 펼쳐짐을 느낍니다.

책임감도 늘어나고, 그만큼 권한도 늘어나고... 또 그만큼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생기구요.

그러나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아름다울 수 있는 책임이자 의무라는 생각이 들어요.

누나 얘기 아니고 이제 아빠되기를 준비하는 제 이야기에요. ㅎㅎ 누나 글 보며 저를 돌아봤네요.

좋은 글로 오후를 버틸 수 있게 되었어요.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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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6 17:25:33 *.30.254.21

쉬운 여자...

 

재치있고 공감가는

그러나..

뭐라 댓글 달기 어려운...

 

잘 읽었습니다.

그렇다면, 쉬운 남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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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6 23:12:15 *.119.126.191

새로운 코너의 첫 테이프를 미영씨가 끊었네!

다시 보는 맛깔진 글이 반가우이.

 

나는 촌스럽게 회원가입이 잘 안 되어 대여섯 번 하다보니  저리 거창한 닉네임을 달게 되었는데

짬내서 고쳐야지. 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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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7 02:13:37 *.169.218.205

언니가 시작이네요. ^^

조아조아조아조아조아. ㅎㅎㅎ

 

지난번엔 다시 태어나더니

이번엔 다른 결혼을 한번 더 했네. ^^

축결혼!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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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6 18:56:15 *.35.224.132

사실...........새로운 파트너를 찾는 건.......비효율적이고 기회비용을 생각하믄 대충 손 봐서 그대로 사는게 나은 겁니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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