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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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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6일 06시 40분 등록

* 이 글은 변화경영연구소 5기 연구원 신아인 님의 글입니다. (2009. 7. 20)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지난 4개월 동안 내 삶의 어떤 부분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짚어 보려 한다. 사는 곳이 달라졌고, 가족 구성이 극적으로 달라진 것 말고도 큰 변화가 많았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책에 대한 태도의 변화다. 먼저, 책을 읽는 데 엄청난 부담감을 가지게 되었다. 시험 때문에 읽는 책도 아니고, 평생 처음 가지는 부담감이었다. 나는 원래 다섯 권쯤의 책을 두고 손이 닿는 대로 돌려가며 읽었다. (이 다섯 권은 도서관에서 졸업생에게 빌려주는 책의 한도이며, 이 이상은 무거워서 들고 나르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제 도서관에서 원하는 책을 마음껏 빌리지도 못한다. ‘과제’라는 이름을 단 책이 매주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음 주 과제도서도 떡 하니 버티고 있다. 그 부담감을 이기고 내가 보고 싶은 책만 보다가는 과제를 제출하느라 주말이 괴로워진다. (초반에 그랬던 적이 몇 번 있다.) 읽고 싶은 책을 예전처럼 마구 읽어대지 못하니 스트레스가 쌓인다. 신혼여행지에까지 두꺼운 과제도서를 가져가 읽었던 생각을 하면 그 중압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책을 사서 보는 비율이 늘었다. 북북 밑줄을 그어대기 위해서다. 덕분에 몇 년간 일정하게 유지해오던 인터넷서점과 오프라인서점에서의 고객 등급이 한 단계 더 올라갔다. 예전에는 책을 사서 보더라도 정기적으로 도서관에 기증하거나 지인들에게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절대로 밑줄을 긋지 않았다. 어찌나 책을 아꼈던지 마음에 와 닿는 구절에는 밑줄을 긋는 대신 포스트잇에서 나온 인덱스용 라벨을 붙여놓아 표식을 했다. 책 귀퉁이를 살짝 접어놓다가 그걸로는 어느 부분이 마음에 와닿았는지 기억해내기 어려워 나름대로 진화시킨 방법이었다. 실은 처음 연구원 레이스를 시작하면서 밑줄을 그을 때도 투명한 자를 대고 샤프로 살짝 줄을 그었다. 그런 자세로는 오래 책을 읽기가 어려워 바꾼 것이 잘 깎인 뾰족한 연필로 자 없이 줄을 긋는 방법이었는데, 팔에 힘이 빠져 줄이 삐뚜름해질라치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직도 펜으로 줄을 긋는 것은 손이 떨려서 잘 못 하지만 이번엔 스승의 책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마구 비판해보자는 굳은 마음을 먹고 수정용 ‘빨간 사인펜’을 들기도 했다. 결과는? 눈이 아파서 그만뒀다. 또 책의 내용이 가슴을 너무 무찔러 들면 며칠 후 이걸 받아치느라 고생할 내 어깨와 팔이 불쌍해 손이 주춤거려지기도 한다. ‘이걸 꼭 그어야 할까?’ 두 번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책을 보는 기준도 더 까다로워진 것 같다. 이전에도 너무 시류에 편승한 책은 읽지 않았고 저자도 골라 가며 보았지만, 과제 도서 중 숨겨진 좋은 책들을 발견하다 보니 이런 책을 읽으려면 쓰잘데기 없는 책을 읽는 시간을 더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입맛이 바뀌었다고 해야 할까? 입덧을 하면서 그렇게 좋아하던 쇠고기를 입에도 대지 않고, 비리다고 못 먹던 간장게장을 찾아다니며 먹는 나의 모습과 닮았다.


책 이외의 것으로 넘어가 보자면, 일주일의 패턴이 바뀌었다. 일주일이 마무리되어갈수록 불안 초조감이 급습한다. 따라서, 약속도 웬만큼 중요하지 않으면 주말 가까이에 잡지 않는다. 특히 금요일까지 책의 대부분을 읽어내지 못한 경우 불안감이 극도에 달한다. 최근엔 부쩍 연구원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남편이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확인하고 ‘아직 이것밖에 못 읽었으면 어쩌냐’며 타박을 주는 일도 있었다. 일요일 밤은 늘 잠을 설친다. 잠을 자면서도 생각에 꼬박 잠겨 있어 숙면을 취하지 못했는지 월요일은 늘 몽롱하다. 월요일 오전은 늘 휴식 후 활기찬 한 주의 시작이었는데, 월요일이 마감시간이 되고 보니 쫓기고, 탁 풀리고 여하간 정신이 없다. 기억해 보니 대학원에서 유독 월요일에 전공수업을 몰아 했는데, 그건 알고 보니 교수님들의 ‘주말에도 놀지 말고 공부해 와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가끔 너무 비인간적이라 느껴지기도 했었는데, 월요일의 악몽은 여전히 날 따라다닌다.

 

각오는 했었지만, 가족에게도 미안한 점이 많다. 수십 년을 붙어 살다가 혼자 살게 된 동생의 마음이 얼마나 허전할까 싶어 자주 만나려고 하는데, ‘내가 이번에 책을 좀 덜 읽었으니 짧게 만나거나 다음에 보자’고 튕긴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더 심한 건, 시부모님을 신혼집에 모셔 두고도 ‘과제 좀 하고 올게요’하고 책방 문을 꼭 닫고 두문불출했던 일이다. 여행지 호주에 가서도 책 읽고 글 쓴다고 종종거리는 나를 본 시부모님은 이제 내가 조금 여유를 부리려 하면 ‘숙제는 다 했니?’하며 먼저 걱정해 주신다. 결혼 전에도 전화하시면 조심스레 ‘도서관이니? 공부는 잘 되니?’ 궁금해하셨던 분들이라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 못난 며느리는 공부하는 걸 무척 좋아하는 아버님, 어머님을 둔 게 무척 행운이다.  새로 함께 살게 된 사람과는 때마침 장마철이기도 하니 주말에 어디 나가지 않고 콕 박혀 각자 공부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 ‘우리는 연애를 오래 했으니, 어디 다니는 것도 귀찮은데 오히려 잘 됐지?’, ‘그래, 데이트 안 다니니까 진짜 돈은 안 쓰게 되네’라며 서로를 위안한다. 그래도 꿈꾸었던 결혼생활에 한 발짝 다가간 것 같아 마음은 행복하다.


불평이 섞인 감이 없지 않지만, 실은 행복한 투정이다. 이건 거의 완벽히 내가 꿈꾸던 생활이다. 훌륭한 책과 애정어린 코멘트와 나의 성장에 관심을 가져주는 가족들까지. 그리고 욕심 많은 나는 이 행복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을 작정이다. 내가 이 고마운 것들로 이루어내는 무언가로 그들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보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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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6 15:44:16 *.36.72.193

^^ 제 미래도 이랬으면..

재밌고, 공감도 되고, 개인적으로 가능성도 보게 되는 글이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선배님들이 하셨던 과정, 쓰셨던 글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연구원에 대한 소망이 더 갈급해져요.

(아, 저는 8기 예비 연구원 최세린이라고 합니다.)

 

신아인 선배님 뵐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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