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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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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9일 00시 44분 등록

* 본 칼럼은 변화경영연구소 1기 연구원 김미영 님의 글입니다.

 

 

, 정말 별거 없었어. 결혼이란 게 뭔가 새로운 출발이란 생각은 했지만 무슨 커다란 희망을 가졌다거나 거창한 목표를 세웠다거나 그런 게 없었어. 처자식 부양하고 본가랑 처가에 때 되면 도리하고 그 정도쯤 생각했던 것 같아. 학생이 아닌 직장인이 되었다는 것 말고는 솔직히 별반 달라진 것도 없었어. 직장 동료들이랑 어울리고, 친구 녀석들 자주 만나서 술 마시고 당구도 치고, 집 밖에서의 생활은 결혼하기 전이랑 크게 변화가 없었어. 오히려 일찍 결혼한 셈이라 부러움을 사기도 했지. 나쁘지 않았어. 남들도 그렇게 산다고 생각했어.

 

가만있어봐라. 우리가 결혼한 지 얼마나 됐지? 큰애가 열다섯 살이니까 16년 됐구나. 난 그때, 그러니까 뱃속에 큰아이와 함께 웨딩드레스를 입었을 때, 무지 혼란스러웠어. 결혼하는 게 엄마가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날 갑자기 진짜 어른이 된 거였지. 어른은 어른인데 남편이 챙겨줘야 하는, 남편에게 기대서 살아야 하는, 이상한 어른이 된 거였어.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하고 아이를 키우고 저축도 해야 하는, 내조의 여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지. 오로지 남편과 아이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내가 되어버린 거였어. 바로 그날이.

 

다 그렇게 살지 않아? 내 주변엔 다들 그렇게 살던데. 요즘에야 맞벌이도 흔하지만 그땐 마누라 일시키면 못나 보이고 그랬어. 당신도 그랬잖아. 현모양처가 꿈이라면서 회사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 키우면서 살림하고 싶댔잖아. 그리고 결혼이 뭐야. 퇴근하고 집에 오면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여놓고 기다리는 마누라가 있는 거, 그 맛 아니야. 그 맛에 밖에 나가서 더러운 꼴 당해도 참고 일하는 거 아닌가. 난 그랬어. 당신이 애 둘 낳더니 나 몰라라 할 줄 몰랐지. 무슨 나무꾼과 선녀도 아닌데 틈만 나면 훨훨 날아갈 생각이나 하고 말이야.

 

맞아. 내 꿈이 현모양처였지. 그게 뭔지도 모르고 글쎄 왜 그런 꿈을 꿨을까. 순수의 시대였어. 당신, 애 안 낳아봤지. 당신, 애 안 키워봤지. 난 말이야. 아이 낳고 키우고 그러면서 완전 다시 태어났어. 서서히, 천천히. 큰아이 백일잔치하고 돌잔치하면서, 둘째 백일잔치하고 돌잔치하면서, 나는 완전 다시 태어났다니까. 현모양처, 그게 사람 잡는 거란 걸 알았지. 그게 말이야. 내가 할 짓이 아니더라구. 무슨 도인이나 수도승이나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구선 어떻게 그렇게 살아. 난 못살아. 그래서 관뒀지. 깨끗하게 손 털었어. 난 싫었거든.

 

사람이 어떻게 좋은 거만 하고 사니? 참고 살아야지. 힘들어도 참아야지. 나라고 뭐 좋아서 이러구 사는 줄 알아? 나도 다 참고 참으면서 산다구. 남의 돈 벌기가 쉬운 줄 아냐구. 더러워도 참고 치사해도 참고 아니꼬워도 참고. 참는 자에게 복이 온다잖아. 난 밖에서 일하는 거 참고 살고, 당신은 집안 살림하는 거 참고 살고, 그게 맞는 거 아니야. 난 하는데 당신은 왜 안한다고 하냐구. 그것도 당당하게 큰소리치면서. 그래, 좋아. 내가 백 번 양보한다고 치자. 아니, 밥은 챙겨줘야 하잖아. 내가 돈 벌어다주고 밥도 못 얻어먹어야 되냐구.

 

당신 하는 일이 오후에 출근하고 자정이 되어서야 귀가하잖아. 아이들하곤 사이클이 달라서 한동안은 나도 아무 때나 먹고 아무 때나 자고 그랬었지. 근데 그것도 지쳤어. 재미없어. 나도 살아야지. 난 뭐야. 내 사이클은 뭐냐구. 난 정말이지 식구들이 각자 자기 밥은 자기가 알아서 챙겨 먹으면 소원이 없겠어. 왜 맨날 나만 보면 밥, , 밥이냐구. 애들이 하는 소리도 듣기 싫은데 당신까지 그 소릴 하면 난 정말 다 관두고 싶어져. 살아야하니까 먹어야겠지만 먹는 거 챙기다가 돌아가시겠다구. 나야말로 누가 내 밥 좀 챙겨주면 좋겠다구.

 

또 먹는 얘기해서 뭐한데. 밥은 그냥 단순히 밥이 아니야. 우린 식구잖아. 식구가 뭐야. 엄마가 뭐야. 애들한테라도 해줄 건 해줘야지. 애들한테까지 밥 챙겨먹으라는 건 너무 심하잖아. 밥이 뭐야? 밥은 마음이야. 관심이고 배려고 사랑이라구. 당신이 그걸 안하면 누가 하겠어. 내가? 물론 나도 할 수는 있지. 하지만 그건 차원이 다른 얘기야. 뭐 어쩌다가 한두 번 그럴 수야 있겠지만 그건 아니지. 집에서 밥까지 해먹으면서 밖에 나가서 일을 하라구?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나의 일이 있는 거고 이건 당연히 당신이 해야 할 일이야.

 

밥이 마음이고 관심이고 배려고 사랑이라고? 정말 미치겠네. 아니 그걸 왜 나한테만 바라냐구. 그렇게 위대하고 좋은 거면 나눠서 하면 좋잖아. , 잘됐네. 그동안 내가 했으니까 이젠 당신이 좀 해봐. 당신이 사랑 나누면서 행복을 찾아보라구. , 싫어? 나한텐 좋은 거라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애들 사랑은 내가 챙길게. 그러니까 당신 사랑은 당신이 챙겨. 내 사랑 챙겨달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 그건 걱정 말구. 원래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거랬어. 난 내가 알아서 나 사랑할 테니까 당신은 당신 사랑 챙겨줘. 그게 맞겠다. 그치?

 

- 글쓴이 : 김미영 mimmy386@hanmail.net, 변화경영연구소 1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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