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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옹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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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21일 10시 15분 등록

 글은 3기 연구원 신종윤님의 글입니다

 

"아얏!"

발바닥이 따끔한가 싶더니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사이에 아픔이 잦아들었습니다. 초원의 한 켠에 펼쳐진 물줄기를 따라 첨벙거리고 놀아대는 재미는 그까짓 발바닥의 꼼질거리는 아픔 따위는 쉽사리 잊게 만들었습니다. 몽골의 드넓은 초원과 투명한 강물은 발에 생긴 조그만 상처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저 시간이 조금 필요할 뿐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몽골에 대한 별다른 기대는 없었습니다. 그저 칭기즈칸에 대한 책을 한 권 읽었고, 여행사에서 오신 어떤 분께 간단한 설명을 들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나마 읽은 책은 이미 머리 속에서 희미하게 지워졌고, 발음하기도 어려운 지명들은 뜬구름처럼 뒤섞여버렸습니다. 그래서 이번 몽고 여행은 좋은 사람들과 불편한 어딘가로 떠나는 이색적인 경험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전부였습니다. 그게 다였습니다.

지금도 저 건너편 게시판에서는 드넓고 순수한 몽고의 풍광들이 여러 사람의 색에 따라 낱낱이 펼쳐지고 있으니 거기에 이런저런 감탄을 덧붙이는 것은 이 번 글에서는 하지 않으렵니다. 그저 제 짧은 글로 몽고에 대한 기억을 조금 되살려보자면, 몽고의 초원은 고요했습니다. 너무나도 고요한 그 사이로 각각의 존재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새소리도 벌레소리도 없는 그 넓은 초원에서는 바람도 숨을 죽였습니다. 그저 내가 걷는 소리가 나의 존재를 알려주었고, 멀리 떨어진 다른 사람의 존재가 더욱 가까이 와 닿았습니다. 그런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이번 몽고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내내 마음을 짓누르는 것이 한가지 있었습니다. 몽고에서 발표하게 될 과제에 대한 부담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 동안은 책 이야기를 주로 했었는데, 이제 나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강점'과 '기질'이라는 다소 무겁고 투박한 주제는 몽고의 맑은 자연과 그다지 쉽게 어울리지 못할 것만 같았습니다. 매번 그랬듯이 해보지도 않고 지레 겁을 먹었던 나의 짐작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박살이 났습니다.

우리는 매일 적게는 한 명에서 많게는 세 명까지 자기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조금씩 어색하고 수줍게 시작되었던 우리들의 이야기는 밤의 축제가 되었습니다. 낮 동안에는 눈부신 햇빛 속에서 말을 타고 초원을 누볐던 우리들이 별빛이 쏟아지는 몽고의 게르 안에서는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귀 기울이고 보듬었습니다. 우리는 때로 웃음을 터트렸고, 또 때로는 울먹이기도 했습니다. 예리한 질문은 날카롭게 빈자리를 파고들었고 대답해야 할 이를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체로 서로의 좋은 점을 많이 발견하게 되었고 그렇게 발견된 좋은 점들은 서로를 흐뭇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 그 자리에서 묘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각자가 타고난 기질을 가지고 강점으로 발전시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에 순간순간 우리의 상처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모순과 불일치가 돌출되었습니다. 강점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아픔들이 치유가 필요하다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강점과 기질에 덧붙여 상처와 아픔을 확인해가는 중에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제 이야기를 털어놓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목이 턱 하니 막혀왔습니다. 코 끝이 간질간질해지는가 싶더니 눈으로 무언가 기운이 확 몰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더 이상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쉬는 시간을 벌었습니다. 그렇게 털어놓고 울컥거리기를 여러 번 반복한 끝에야 겨우 제 이야기를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스운 모양새로 제 이야기를 털어놓은 덕에 저는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을 충전 받았고 불끈거리는 용기도 생겼습니다. 물론 제가 안고 있던 고민과 상처가 그 자리에서 다 치유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한결 가슴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 자리했던 그 녀석의 정체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물놀이를 하다가 발바닥에 생긴 상처는 아주 조그만 것이었습니다. 바늘로 살짝 찔린 듯한 상처는 가시가 박힌 듯이 따끔거렸지만 어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때때로 양말을 벗고 발바닥을 코 앞까지 끌어 당겨 살펴보았지만 가시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발에 상처가 생겼다는 소리에 여러 사람이 달려 들었지만 별다른 해결책은 없었습니다. 테를지의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핀셋까지 동원해 이리저리 헤집어 보았지만 헛수고였습니다. 그래서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습니다. 많이 아픈 것도 아니었고 계속 거슬리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조그만 상처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때때로 저를 귀찮게 했습니다. 평상시에는 잘 모르다가 어느 순간 불쑥 불편한 통증을 주었습니다. 잊을 만하면 한번씩 저를 괴롭혔습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지난 밤에 조금 독한 마음을 먹고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스탠드를 밝게 켜고 날카로운 손톱깎이를 상처 부위에 들이 댔습니다. 발바닥에서 통증이 느껴졌지만 조금 더 안쪽으로 힘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무언가 조그만 것이 톡 빠져 떨어졌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모래알처럼 생긴 작은 돌 조각이었습니다. 순간 일주일이 넘게 느껴지던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편안해졌습니다.

마음에 생긴 상처를 발바닥에 박힌 작은 돌 조각처럼 단번에 뽑아낼 수는 없을 지도 모릅니다. 몽고의 밤하늘 아래에서 우리가 발견했던 그 아픔과 상처들을 손톱깎이나 핀셋으로 쉽사리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조금 아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문득문득 떠올라 가슴 한구석을 아프게 하는 상처를 그냥 놓아두기엔 어쩐지 개운하지가 않습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가슴에 작은 상처 하나쯤 가지고 있지 않나요? 소란한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틈에서는 잘 보이지 않다가 어느 순간 문득 떠올라 가슴을 아프게 하는 작은 생채기들.

가벼운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털어놓을 사람을 찾아보세요. 수다에는 치유의 힘이 숨어있습니다. 가슴 속 상처를 주절주절 쏟아내다 보면 그 상처의 존재가 문득 선명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상처가 그다지 깊거나 치유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지막은 항상 혼자의 몫이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상처를 짧은 글에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곱게 적은 종이를 다시 곱게 접어서 높은 곳에 올라 훌훌 날려보는 건 어떨까요? 아니면 예쁜 꽃무늬 접시에 담아 활활 태워보는 건 어떨까요? 스탠드 불빛을 환하게 밝히고 손톱깎이를 조금 깊숙이 쑤욱 밀어 넣으면 뜻 밖에 모래알만한 상처 조각이 툭 빠져나올 지도 모릅니다.

가슴에 모래알처럼 박힌 상처가 있다면 한번쯤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신종윤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flame@kd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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