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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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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22일 09시 44분 등록

*이 글은 4기 박중환(bigrock1@empal.com) 연구원의 글입니다.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

 

오랜만에 전 직장 동료였던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잘 있었어? 여전히 일은 잘 되고 있지?”
“네, 선배님. 선배님도 잘 지내고 계시죠?”
“그럼. 혹시 물어볼 것이 있는데……. 내가 예전에 가입했던 보험, 아직 유지되고 있지?”
“그럼요. 근데 무슨 문제라도 생기셨나요?”
“아니야. 그럼 다행이고……. 내일 집으로 와줄 수 있겠니?”
“집이요? 아니 왜, 회사에 안 계시고……. 내일 말고, 오늘 집으로 찾아뵐까요?”
“오늘? 그럼 고맙고…….”

전화통화였지만, 어떤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난 바로 선배가 살고 있는 집으로 차를 몰았다. 집에 도착해보니 선배의 얼굴은 과거와 다르게 수척해 있었다.

“나, 말기 위암 판정 받았어…….”
“…….”
“얼마 전부터 속이 많이 더부룩했어.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증상이 심해지더라고. 갑자기 구토와 복통 증상까지 생기더군. 병원에 가서 정밀검진을 해보니……. 말기 위암이라네……. 세상 참 불공평하지. 나쁜 짓 하면서 살아온 것도 아닌데 말이야……. 아직은 치료의 희망이 있다고 하니, 다시 힘을 내야 하지 않겠어?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야. 보험이라도 들어놔서……. 보험증권을 보는데, 갑자기 소연이 얼굴이 떠오르더라. 소연이 꿈이 피아니스트인데, 내가 없더라도 소연이 꿈만큼은 지킬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무슨 말씀이세요. 빨리 치료받고 완쾌하셔야죠.”
“물론 그래야지. 오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그래도 너 때문에 생명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잖아. 이런 상황이 되니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별 말씀을요. 선배님께서 소연이를 위해 선택하신 거죠. 그런데 치료는 정식으로 언제부터 받으세요?”

선배는 다음 날부터 대학병원에 입원치료를 들어갔다. 긴장 속에서 첫 수술이 진행되었다. 수술 후, 병세는 호전되는 듯했다. 하지만 휴전은 오래가지 못했다. 병세는 순식간에 악화되었다. 말기 위암은 생각보다 무서웠다. 계속적인 항암치료를 했지만, 암 덩어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간과 식도로 전이되었다. 병문안을 갈 때마다 선배의 증상은 심해져갔다. 먹은 음식은 모두 토해버리고, 얼굴은 흙빛으로 변해갔다. 예전의 단단했던 체구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퀭한 눈에 환자복 소매 사이로 보이는 손목은 점점 가늘어지고 있었다. 적절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해 몸은 앙상한 겨울나무처럼 변해갔다. 점점 항암제 양이 늘어날수록 선배는 순간순간 멍한 상태가 되었다. 나중에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명절이 끝난 직후, 흐느끼는 형수의 목소리로 선배의 죽음을 전해 듣게 되었다. 순간 선배와의 추억들이 필름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밤새워가며 토론에 열을 올렸던 일, 직장상사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던 일, 재발과 수술을 반복하며 좌절하면서도 또다시 희망을 다짐했던 지난날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벽제 화장터, 화장이 진행된 후 다 타버린 뼈 몇 조각이 된 선배의 마지막을 모습을 보고, 몸도 가누지 못할 만큼 괴로워하는 형수에게 더 이상 건네줄 말이 없었다. 이제 다섯 살이 된 딸 소연이는 아빠의 죽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천진난만하게 장난을 쳤다.

“엄마, 하느님이 아빠 치료하신다고 데려간 거랬지? 근데, 언제 와? 아빠 보고 싶어…….”

우리는 ‘삶’이라는 수업에서 ‘약속’을 하면서 살아간다. 자신과의 약속을, 사랑하는 가족과의 약속을, 동료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은 끊임없는 약속에 대한 실현의 역사다. 약속은 한자로 ‘約束’이라고 쓴다. 어원을 분석해 보면, 약(約)에서 사(糸)는 실타래로 단단히 묶듯이 굳게 말한 것을 ‘지킨다’는 뜻이며, 속(束)은 나무(木)를 감아서 묶은 모양(口)으로 '묶다'는 뜻이다. 약속이란 반드시 지켜져야 함을 말한다. ‘보험금 지급’은 보험 컨설턴트에게 약속의 실현이며, 보험회사의 존재이유이다. 고객은 당장 내일 자신에게 찾아올 예기치 않은 불행을 보험 컨설턴트와 회사가 보장해줄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선택한 것이다. 떠난 선배의 약속을 보험금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에게 전달할 때, 다시 한 번 보험 컨설턴트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해야 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보험 컨설턴트를 위한 변명

 

재미있는 조사 결과가 있다. 지나가는 100명의 사람들에게 보험에 가입할 의사가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는데, 90명은 ‘보험에 가입할 의사가 없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머지 10명은 ‘절대(!) 보험에 가입할 의사가 없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조사는 보험 컨설턴트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인식을 알 수 있는 사례이다. 최근에는 많은 인식의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보험 컨설턴트에 대한 인식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안면과 인맥을 통해 부담을 주는 이미지로 많이 남아 있다. 아직까지 보험을 가입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많이 쓴다. ‘들어준다’라는 표현.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들어주는 것’이라는 문구는 지금 보험업계의 현실을 방증한다.

보험 컨설턴트에게 무슨 원죄가 있기에, 이렇게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게 되었을까? 잘못된 판매관행? 지인을 통한 안면판매? 자꾸 귀찮게 하는 행동? 모두 맞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틀리다.

그 이유는 생명보험 상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 속성에서 비롯된다. 생명보험은 예기치 않은 사고로 죽음을 맞이했을 때 보험금이 지급되는 상품이다. 즉, 죽음과 생명과 화폐가 서로 교환되는 체계를 가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암묵적으로 이런 전제가 깔려 있다. 생명은 성스러운 것(the sacred)이고, 죽음은 두려운 것(the fear)이다. 그리고 화폐는 속된 것(the profane)이다. 생명보험은 자신의 사후(死後)에도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려는 애정과 책임에 기초한다. 가족에 대한 애정이 생명보험이라는 상품으로 ‘자본화’되는 것이다. 신성한 생명을 일개의 상품으로 변환시키는 측면이 있다. 더구나 보험 컨설턴트들은 생명보험을 판매하기 위해 ‘죽음’이라는 화두를 꺼낼 수밖에 없다. 죽음으로 인해 남아 있는 가족들의 경제적 우울함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사고 후 벌어질 비극적 상황을 암시하고 예견하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우울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어느새 보험 컨설턴트들은 ‘초대받지 못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처음 생명보험 판매를 위해 가방을 들었던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다름아닌 성직자 그룹, 청교도 목사들이었다.

 

“목사들 대부분은 생명보험이 진전되는 것에 깊고도 변함없는 관심을 표명하였다. 생명보험을 따뜻하게 받아들이고, 심지어 어떤 이는 미리 각 보험회사의 지역 컨설턴트로서 행동하고……, 그들 신자에게 이것을 실행에 옮길 것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 나프, 《생명보험의 과학적 강의》 중에서

 

성직자들은 원죄 속에 신음하고 있는 고귀한 영혼을 구제한다. 그들에게 생명보험은 교회가 할 수 있는 영혼의 구제사업이 확장된 개념이었다. 생명보험은 ‘신과 가족에 대한 책임’으로서 인수되어야만 되는 ‘무엇’이었다.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준비하는 것은 종교적 의무였다. 그래서 이 당시 성직자들은 생명보험 판매가 하늘나라의 역사를 도래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종교가 영혼의 구원을 목적으로 한다면, 생명보험은 육체의 구원을 가능케 한다. 차시환혼(借屍還魂)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내 육신이 없어지고 영혼만 남았을 때, 죽은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서 다시 환생한다’는 의미다. 생명보험은 육신은 없지만, 남아 있는 가족을 위해 부활한 영혼일지도 모른다.

보험업계에는 보험 컨설턴트의 사명을 ‘컨설턴트십(Consultantship)’이라고 한다. 보험 컨설턴트에게 ‘ship’은 직업적 사명을 부여한다. 실제 탁월한 성과를 내는 보험 컨설턴트들은 이 직업의식에 투철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직업적 소명의식을 내면화하는 것은 중요하다. 생명보험은 다른 여타의 금융상품과 달리 인간의 존엄한 생명과 연관된 상품이다. 가장 힘겨운 상황에 빠져 있는 미망인과 고아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다. 평생 휠체어에 의존해 살아야 하는 절망적인 환자에게 작은 희망의 불꽃을 준다. 필자가 보험 컨설턴트라는 낯선 길목에서 고민할 때, 직업적 소명을 부여해준 버트 팔로의 《보험설계사 만세》 한 구절을 소개한다.

 

“우리는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판매해야 합니다. 우리가 판매해야 하는 것은 가족의 보장, 마음의 평화, 인간의 존엄, 공포로부터의 해방, 결핍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우리는 가족에 대한 사랑, 소유의 기쁨을 팔아야 합니다. 우리는 희망, 꿈, 기도를 판매해야 합니다.”

 

생명보험은 금융상품 중에서 유일하게 목적이 분명한 상품이다.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금융상품들을 한번 살펴보자. 듬뿍적금, 미래펀드, 해외펀드, 장기채권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상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그런데 알고 있는가. 이 금융상품들은 그 상품이 우리의 인생에서 어떠한 계획과 목적에 쓰일지 관심이 없다. 오직 이 상품들의 관심은 ‘수익률(earning rate)’뿐이다. 그러나 생명보험은 상품의 목적이 분명하다. 종신보험, 연금보험, 건강보험, 교육보험, 어린이보험, 재해보험, 의료보험과 같이 상품의 목적과 효용이 분명하다. 생명보험은 고객의 꿈과 목표 그리고 희망과 함께 성장하는 금융상품이다. 그러나 아직 생명보험이 환영받는 친구가 되기에는, 먼 길을 가야 할 것 같다. 아니 영원히 환영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금융상품 중에서 가장 따뜻한 인간의 피가 흐르는 것이 바로 생명보험이다.

보험업계든, 다른 분야든 ‘내가 이 일을 왜 하는가’에 대한 이유가 가장 중요하다. 자신의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직업적 소명의식이 필요하다. 당신에게 일은 무엇인가. 밥을 얻기 위해, 얄팍한 월급봉투를 얻기 위해,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노동인가. 아니면 가치와 보람을 느끼며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있는 행위인가. 우리는 자신이 맡고 있는 일의 소명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 질문 속에서 자신의 일만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자신의 가치는 자신이 결정한다. 그 누구도 결정할 수 없다. 빛은 어둠이 있기 때문에 빛인 것이 아니라, 원래 빛이다. 우리 자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온몸을 던질 수 있는 소명의 발견하는 것은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다. 누가 쓴 글인지는 모르겠지만, 보험 컨설턴트의 소명과 같은 시(詩) 하나를 소개한다. 힘들고 지칠 때, 다시 마음을 다잡게 했던 보석 같은 글이다.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

 

새벽아침,
졸린 눈으로 무거운 몸 일으키다
문득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면서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 찾습니다.

 

갑자기
비어버린 아빠의 빈자리를
절망의 세상임을 알지 못한 채
풍선껌 하나를 흡족하게 씹고 있는
아빠 잃은 아이의 눈망울을 보면서 가슴 뭉클해집니다.

 

그렇지만
아이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희망 하나
내가 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때,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를 조금씩 깨달아갑니다.

 

동료의 힘내라는 말 한마디에
가방 놓고 싶던 마음 다시 추스르고,
이 일을 누군가는 제대로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슴속 깊이 되새깁니다.

 

당신의 허물보다는
정직함과 깨끗함으로 살고자 한다는
동료의 맑은 미소를 보며
내 믿음을 조금씩 더 키우고 싶습니다.

 

사랑이란 단어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부부를 만나
잠시 얼마짜리 고객으로 판단하려 했던
부끄럽고 병든 마음이 짜증스러워
괜한 헛걸음이 자꾸 길어질 때,

 

아직은 더 많이
나를 굴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안도감을 느낄 때,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를
아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더러 쉽지 않았습니다
거절에 고개 떨구기도 했고,
피곤에 절은 몸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란 단 한마디가
울림 좋게 다가오는 한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를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비록 서툰 몸짓이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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