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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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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26일 00시 57분 등록

* 본 칼럼은 변화경영연구소 1기 연구원 오병곤 님의 글입니다.

 

군대 삼년 마치면

십 년은 군대시절 얘기를 한다

몇 달 외국 여행이라도 다녀왔다면

허구헌 날 입만 열었다 하면 그놈의 얘기다

생각해 보라 그런데

우리에게 노동의 추억이 있는가

십 년 아니 삼십 년 노동을 해도

누가 그것을 그리운 추억이라 하는가

밥과 희망이며 목숨의 진한 흔적들이

어째서 아련히 돌아 보이는 추억의 누더기도 못되는가

어째서 그 시절, 비굴한 치부가 되고

어째서 그 세월, 묻어 버리고 싶은 아픔이 되고

치욕이 되고 더러움이 되고 원한이 되는가

추잡한 싸움의 기억만 되살려지고

비굴한 패배의 아픔만 만져지고

잃어버린 젊음의 울분만 남았는가

성숙 뒤에 되새겨지는 것이 추억이라면

우리 생명은 분명 노동이 갉아먹고 있었다

- 백무산, 노동의 추억 중에서

 

박과장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살고 있는 두 아이의 가장이다. 그의 가족은 자급자족하는 게 없고 맞벌이를 하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그의 월급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다. 그가 월급을 제때 가져다 주지 못한다면 혼란은 불보듯 뻔하다. 만약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늘 그의 머리 속에 화두처럼 자리잡고 있다.

 

“방법이 뭐 있나? 참는 거지. 인내

조직 개편 이후 설 땅이 마땅치 않아 난감해진 박과장에게 강차장이 메신저로 넌지시 조언을 한다.

“이렇게 되면 전 더 이상 회사에 비전이 없는데요.”

“비전이라고? 그런 건 필요없어. 그냥 조낸 버티는 거야.”

“참는 게 인생의 목적은 아니잖습니까?”

“참 답답한 양반이네. 아직도 현실을 이렇게 몰라. 지금 안 참으면 어떻게 할 건대? 어쩔 수 없잖아. 누가 밥 먹여 줘? 하기 싫다고 말하면 뭐라 그러겠어? 그만둬라. 일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고 그러지 않겠어?”

“……”

강차장은 마지막으로 강력한 충고를 건네준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구나……)

 

‘사는 건 견디는 것이라는 말이 진리처럼 여겨질 정도로 참는 게 미덕인 시대가 되었다. 월급을 받는 대가로 이제 박과장은 회사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한다. 그는 평균 11시간을 일하지만 앞으로 맡게 될 일은 그가 하고 싶은 일하고는 무관하다. 일하는 노력에 비해 가져가는 몫은 너무 적고 일의 아웃풋도 그의 것이 아니다. 그는 조직 속에 묻혀 있는 무력한 개인에 불과하다.

 

일찌기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군중 속에 묻여 있는 개인의 비참한 상태를 러시아 농노의 취주악대에 비유한 바 있다. 20인의 악사가 도, , 미 등 자기에게 고유한 소리 하나 만을 내도록 되어 있어서 이들 악사는 각자에게 배당된 음으로 불리운다. 그래서 이들이 지나가면 구경꾼들은 저기 어느 지주의 도가 지나간다, 미가 지나간다고 말한다. 이들 악사는 배당된 하나의 소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농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직장인도 그가 속하는 조직의 한 부분으로서만 존재가치를 인정받는다. 고도의 분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전체 속에서 내 일이 차지하는 의미를 알 기가 어렵다. 정신을 가진 인간이 거대한 조직의 작은 부품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부품은 낡거나 고장이 나면 버리거나 다른 부품으로 교체하면 된다. 더욱이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할 때, 즉 고용되어 일할 때에는고된 일더 나은 삶을 동일시하기가 더 어렵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함으로써 우리는 이미 자신의 힘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인간 각자의 개성은 무시되고 자기의식은 질식상태가 된다. 그저 대체적으로 무난한, 평균화된 인간만 양산이 되며 인간의 소외는 가속화된다.

 

소외 현상을 방치한 채 조직 내에서 참는 행위가 만성화되면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다. 처음에는어서 이 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는데……’라는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마치 화병처럼 병을 키우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참고 있을 때 자기의식이 깨어있기는 어렵다. 자기의 창문을 굳게 닫고 점점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간다. 무슨 일이던 참을 수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말이 될 수 있다. 어떻게 행동할 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사람처럼 변해간다. 실제로 나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살아 남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퇴행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자신의 미래를 지켜낼 힘을 상실한 채 점점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복종하게 된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고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참다보면 오로지 일하는 기계만 있을 뿐 인간은 없다. 여기에 치열한 경쟁의 압력까지 더해지면 인간이 비집고 끼여들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진정한 인간관계가 싹트기는 불가능하다. 진정성있는 관계는 뒷전이고 형식적이고 메마른 인간관계만 주위를 에워싼다. 오랜 직장생활을 했지만 기억나는 노동의 추억은 거의 없다. 외면하고 싶은 반복스런 고통의 순간을 참다보니 기억이 남아있을리 없다. 상실의 세월만 켜켜이 쌓여간다.

 

IMF 이후 라인하르트 휀이 말하는직장인의 내면적 자기 퇴직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 한 통계에 의하면 적어도 국내 직장인의 절반 이상이 내면적 자기 퇴직의 경험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회사에서 보내면서 지시에 따라 시키는 일만 한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는다. 이들에게는 퇴근 후부터 진정한 인생의 의미가 시작된다. 직장 밖에서 마음을 달래 줄 대안을 찾아 다닌다. 술집, 노래방, 골프장에는 자유의 물결이 넘실댄다. 살 길을 찾아 증권가, 창업지원센터를 배회하기도 한다. 그러나 직장 밖의 충전과 방황이 본질적인 고민을 해소시켜 주지는 못한다. 달콤한 휴가 뒤의 씁쓸하고 허전한 기분, 느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당신을주말을 위해사는가, ‘주말 동안만살아남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하려면 자기를 고용한 이의 목적 달성을 위한 대상으로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주체가 되지 못하고 누구의 대상이 된다는 것, 여기서 근본적인 인간의 소외가 발생한다. 모든 현대인들이 처한 문제다. 어쩔 수 없다고 이 문제를 회피해서는 결코 해결 할 수 없다. 모든 순간을 자신의 순간으로 긍정하고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 어떤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는 책임있는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다.

 

인간이면 누구나 본질적으로 자기다움을 원한다. 이 말은 인간의 본래적 자아에는 개별성과 주체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개별적인 존재로 대우를 받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을 위해 무언 가를 해줄 것으로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다.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다면 먼저 자신만의 호흡과 여유가 있어야 한다. 모든 불행은 자기를 돌보지 못해서 시작된다. 자기다움의 회복이 소외의 진정한 극복이다. 무조건 살아남기가 아닌 무엇으로 살아남느냐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 글쓴이 : 오병곤, kksobg@naver.com, 변화경영연구소 1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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