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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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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29일 09시 48분 등록
* 이 글은 4기 양재우 연구원(bang_1999@naver.com)의 글입니다. 

"여자는 참을성이 있어야 하며, 남자는 너그러워야 한다" 

 "결혼으로 여자는 자유로워지고, 결혼으로 남자는 자유를 잃는다" 

 "열렬하게 사랑에 빠진 남자는 사랑하는 상대의 결점을 보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맹인이 되어 버린다. 일반적으로 그런 증세는 결혼 후 1주일간 계속된다." 


자, 위의 문구들을 보면서 어떤 사람이 떠오르는가? 결혼을 했고, 여자에 대해 잘 알며, 연애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는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1주일 후 그 사랑의 열정이 식어버림을 경험하며, 솔로의 자유를 잃어버림과 동시에 이제는 너그러워지는 연습을 해야만 하는 그런 남자의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가? 경험했기 때문에 윗 문구처럼 주장할 수 있는 그러한 연륜이 느껴지지 않는가? 위의 문구만을 보고 그가 누구인지 당신의 머리 속에 그려지는가? 아~하고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알듯말듯 하다고? 잘 모르겠다면 다음의 문구를 같이 보자. 순간적으로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나는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나는 철학하는 것을 가르칠 뿐이다.”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새로운 감탄과 함께 마음을 가득 차게 하는 기쁨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별이 반짝이는 하늘이요, 다른 하나는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다. 이 두 가지를 삶의 지침으로 삼고 나아갈 때, 막힘이 없을 것이다. 항상 하늘과 도덕률에 비추어 자신을 점검하자. 그리하여 매번 잘못된 점을 찾아 반성하는 사람이 되자.” 

 “신을 이해하는 데는 두 가지의 길이 있다. 하나는 믿음에 입각하여 이성으로 믿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도덕에 입각하여 정신적으로 믿는 것이다. 이성으로 믿으려 할 때 그 믿음은 부서지기 쉬우며 실수를 저지를 위험이 있다. 신을 정신적으로 믿으려면 도덕적 행동을 해야 한다. 이런 믿음은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을 초월한다.” 

 “상대방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기의 자유를 확장하는 것, 이것이 자유의 법칙이다.” 


어떤가? 이만하면 누구인지 알 수 있겠지? 바로 모두가 유명하다고 말하지만, 본인 스스로는 왜 본인이 유명한지 사색하고 철학하여 그 이유를 밝혀야만 이해할 수 있는 철두철미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다. 칸트하면 아하~하고 떠오르는 이미지가 몇가지 있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시계 바늘처럼 정확했던 그의 산책시간이다. 얼마나 정확했던지 동네 주민들이 그의 산책 시간에 시계를 맞출 정도였다니 더 말해 무엇하랴! 둘째는 그의 비판 시리즈이다. 나와 같은 순수한 일반인들은 칸트의 명저인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그리고 <판단력 비판>을 교과서에서 제목으로만 접했지 결코 읽어본 적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왜 이 양반은 세상을 비판만 하며 살지? 좀 긍정적으로 살면 더 좋지 않을까?’라고.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는 역시나 철학자답게 내뱉는 어려운 그의 이야기들이다. 솔직히 우리가 철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면 칸트란 사람만 알지, 어떻게 그의 주장이나 사상 등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같은 평범한 일반인이 말이다! 하늘이 두쪽나다 못해 세쪽, 네쪽으로 쪼개지면 몰라도... 그래도 어렵지 않을까? 

철학의 분야에서 칸트는 우리같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젊었을 적 그는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쯔로 대표되는 서구 유럽의 합리주의 철학과 베이컨, 로크, 흄으로 대표되는 영국의 경험론주의 철학이 안고 있는 두 개의 사상적 근간인 이성과 경험에 대한 편향된 선입관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래서 중세 이후 17C까지의 철학사상을 바탕으로 이른바 비판적 방법에 의한 새로운 선험적 종합판단의 가능성을 모색하게 되었다. 

모색을 통해 그가 찾아낸 것은 인식의 능동성이었다. 칸트의 인식론이 위대한 점은 그 스스로 “인식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 말한 부분인데, 칸트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사물을 인식한다는 것은 우리의 외부에 사물이 있고 그것을 우리의 정신이 사물에 맞추어 파악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칸트는 이 이론을 뒤집어 “우리의 정신이 먼저 있고 사물이 우리의 형식(안경)에 맞게 짜맞추어져 들어온다.”라고 주장한다. 즉, 그전까지의 관점이 수동적 인식론이었다면, 칸트는 능동적이며 보다 적극적인 면에서의 인식론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은 코페르니쿠스가 지구의 자전설을 주장한 것 만큼, 철학의 관점에서 큰 획을 그은 대단한 사건이었다!! 라고 한다...

어떠한가? 역시나 철학이란게 어렵고 복잡하지 않은가? 나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자료를 찾던 중 제일 쉬운 부분을 찾아 옮겼지만 그래도 어렵다는 점은 자백해야만 하겠다. 젠장, 철학은 왜 이리 어렵냐고.. 자자, 그럼 빨리 넘어가도록 하자. 뜻하지 않은 스트레스로 인해 주름살이 늘고, 피부가 상하면 큰 일이지 않은가. 글을 읽으면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에는 모든 약의 약발도 안 듣는다는 무서운 말도 있다고 한다. 믿거나 믿거나... 

앞의 연애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연애에 대한 여러 명언을 남긴 칸트는 바람둥이 즉, 연애 전문가일까, 아니면 단순 이론가일까? 안타깝게도 덴마크의 국민 동화작가 안데르센과 같은 병인, 연애 미성숙 불치병을 앓던 남자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그 또한 생전에 결혼 한번 못 해보고 눈을 감았을뿐더러 제대로 연애한번 못 해본 쑥맥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는 독신으로 살아야만 했을까? 

먼저 외모를 보자. 그의 키는 오척단신(五尺短身)이었다고 한다. 척(尺)은 지금의 길이로 30.3cm. 고로 그의 키는 약 151.5cm... 작다... 참 작다... 꽤나 과하게 아담 사이즈다... 하지만 역사 속에 키 작은 위인들은 꽤나 많았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동학운동을 이끌었던 녹두장군 전봉준 또한 칸트와 비슷한 키였고,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비롯하여 러시아의 우주비행사였던 유리 가가린, 프랑스의 황제였던 나폴레옹 그리고 중국의 작은 거인 등소평까지 모두 다 160cm를 넘지 못하는 작은 키들의 소유자였다..그러니 키가 작다고 소심하게 사는 분들, 결코 우울해 하지 마시라. 작은 고추가 ‘비싼’(매우니까) 법이니까. 

하지만 칸트는 작은 키 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성을 갖춘 인물이었다. 삐쩍 마른 체구(항상 세상 고민을 지고 사려니 살이 찔래야 찔 수 없는 체질이었음. 잡담이지만 변경연 4기 연구원 중 모창씨가 이와 비슷한 체질인 것으로 보여진다^^;), 각이 질대로 진 얼굴, 머리가 큰 대두형 몸매. 게다가 시계고환처럼 매일 변함없이 일정하게만 흔들리는 그의 사생활까지. 어디 그뿐인가? 여행을 싫어하여 죽을 때까지 딱 한번을 제외하고는 고향인 퀘니히스베르그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딱 한번도 본인이 가고 싶어 간 것이 아니라 가정교사 시절 그 귀족의 식구들과 함께 그들의 별장에 다녀온 것이라 하니 그가 얼마나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지 알만하다. 

이런 사항들을 종합해 볼 때 아무리 1,700년대라 하더라도 여성들의 눈은 그를 멋진 남자로 보기는 아주 많이 곤란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하나 더 추가하여 그의 소심함(어쩌면 신중함?)은 어떠한가. 그의 연애사 중에 아주 유명한 에피소드 하나가 전해 내려온다. 이 이야기를 듣게 되면 칸트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평소 칸트란 인물의 학식과 그 깊이를 알 정도로 직관력(칸트는 환갑이 넘어서야 유명해졌지 젊은 시절에는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암먼, 그렇지! 두 말하면 소심하지!)이 뛰어난 아름다운 여인이 한명 있었는데, 칸트를 옆에서 쭉 지켜본 결과, 칸트는 죽을 때 죽더라도 결코 먼저 자신에게 대시하지 않을 것임을 깨닫게 된 후, 과감하게(세상에나~ 그때는 1,700년대였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여성으로서는 감히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했겠는가! 지금도 그녀의 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아려옴과 동시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_-;;) 그에게 프로포즈를 했다고 한다. 

그 고백에 소심한 면에 있어서는 절대 남 부럽지 않았던 칸트는 속으로 상당히 기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가! 세상의 고뇌와 고민을 싸안고 가야하는 전 세계적 철학자 칸트 아닌가! 그는 솟구치는 사랑의 감정을 자신의 높고 냉철한 이성으로 누른 후 냉정하게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상황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미묘한 감정에 대해 이성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으로 접근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왜 자신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왜 그녀와 결혼해야 하는지 철학적 방법을 통해 연구 분석을 시작하였다. 

그 연구는 무려 7년이나 계속 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사랑이란 감정은 철학으로도 파헤치기 어려운 논제였나 보다. 결국 칸트는 그녀와 결혼해도 좋다는 만족스러운 결론을 가지고 그녀의 집을 찾아 갔다고 한다. 세상에... 하지만 역시나였다. 그녀의 집을 찾아갔을 때, 그녀는 기다리다 지쳐(아니면 칸트가 연구를 시작함과 동시에 마음을 접었는 지도 모른다) 이미 딴 남자에게 시집가서 두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칸트는 일생에 한번 찾아온 절호의 찬스를 스스로 걷어차 버리고 만 것이다. 

칸트의 사후에 가서 그의 일기장을 통해 밝혀진 일이지만, 그는 그 당시 사랑에 대한 철학적 연구분석을 하면서 자신이 결혼을 해야하는 이유와 결혼을 해서는 안된다는 이유를 연구했다고 한다. 그 결과 해야하는 이유가 354가지, 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350가지로 해야하는 이유가 4가지 더 많았기 때문에 기쁜 맘으로 그녀의 집을 찾았던 것이라고 한다! 정말 대단한 칸트였음을 실감할 수 있다. 사랑에 대해 알 만큼 알았다고 자부한 순간, 그녀는 저멀리 다른 남자 품으로 날아가버린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칸트가 한 명언이 있다고 한다. 

 "여자는 참을성이 있어야 하며, 남자는 너그러워야 한다" 

이토록 소심하고 진중하며, 엄청나게 답답한 칸트였지만 우리는 그를 철학의 역사에 대단한 한 획을 그은 근대사의 위인으로 기억한다. 왜 일까? 어째서 칸트는 결혼도 못할 정도의 소심함을 지녔지만 그렇게 큰 인물이 될 수 있었을까? 그는 자신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성격을 절대로 고칠 수 없음을 본인 스스로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 자신 안으로 더욱 들어갔다. 그의 하루 일과를 보면 더욱 확실히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칸트는 매일 새벽 5시면 규칙적으로 일어나 아침 식사로 차 한잔과 파이프 담배 한대를 피웠다. 그리고 나서는 바로 오전 강의를 준비하고 일주일에 다섯 번은 아침 7시에 강의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면 홀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저녁식사를 할 때까지 자신의 인생, 철학, 과제에 대해 고민하고 사색하였으며 그 내용을 글로 쓰거나 했다고 한다. 저녁 5시가 되면 산책을 시작했는데, 이 시간이 워낙 정확하여 퀘니히스베르그의 주부들이 자신의 집 앞을 지나는 칸트를 보고 시간을 알았다고 한다. 아마도 이 규칙적이다 못해 철저한 산책시간 또한 칸트 자신의 생활과 건강을 종합적으로 철저하게 분석한 결과에 의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지나친걸까? 

그는 자신의 내면 속 탐구를 위해 하루의 시간 중 많은 시간을 자신에게 부여했다. 인생에 대해, 삶에 대해, 사랑에 대해, 인간에 대해, 이성에 대해, 자아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사색하였다. 그 결과의 산물이 1781년, 그의 나이 57세에 출간한 <순수이성비판>이다. 그는 이 저서로 인해 유명세를 탈 수 있었고(실제로는 몇 년이 더 지나고 였다), 그 후 <실천이성비판>과 <판단력 비판>의 비판 시리즈를 내면서 결국 대기만성의 전형적 인물이 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소심함이나 대범함이 아니다. 진실로 스스로에게 귀중한 것은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다. 표면적인 내가 아니라 내면 속의 나와 얼마나 조우할 수 있느냐이다. 외면적 성격은 사회적 교육, 본인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변형하거나 전환할 수 있다. 하지만 긴급한 상황이나 매우 어려운 일이 자신에게 닥치면 일시적 변화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잘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본질적인 자신을 잘 알아야만이 자신의 근원, 욕망에 맞추어 스스로를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진정 행복한 삶이란 자신이 원하는 데로 사는 삶이다. 우리는 내면 속의 내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윽하고 조용하게 말하고 있는 소리를 사회의 시끄럽고 복잡하며 어지러운 잡음 속에서도 구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 소리를 제대로 알아 듣고 행할 수 있는 자만이 가장 잘 자신답게 그리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칸트는 그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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