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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옹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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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4일 08시 50분 등록

이 글은 3기 연구원 김도윤(인센토)님의 글입니다.

 

새벽에 눈을 뜨곤 곁에 누워 있는 아내를 어둠 속에서 바라본다. 어제 읽었던 어머니의 글을 가슴 속에서 떠올려 본다. 시간이 가는구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물 한잔 마시고, 책상 앞에 앉는다. 무엇을 위해 일어나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 편안함을 버리고 여기에 앉았는가?

새벽에 책상에 앉아 오늘 제출할 기획서를 마무리하고, 잔뜩 김 서린 창 밖을 바라본다. 창엔 흐린 가로등 불빛 하나 어려 있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안개 속 같은 창 밖 풍경을 잠시 걸어본다. 감색 가로등 불빛을 별빛 삼아 마음 속을 서성여 본다.

"세상살이 한 덩어리 속에 인간이 자연에 순응 하듯 내 앞에 놓인 환경에 적응 하면서 그저 그렇게 살아 왔다. 지난 일도 지금도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무디어지고, 길들여진 내 일상의 표면일 뿐이다. 마음속에선 무한한 자유로움을 꿈꾸고 하고픈 일도 많았다. 벽을 보고 치는 스쿼시처럼  치고 되돌아 받아 쳐야 하는 수고로움과 힘겨움에 포기하고, 벽에 부딪쳐 깨어지는 아픔이 두려워 손에 들고도 던져 보지 못한 야구공 같은 내 삶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제 쉰이 넘으신 어머니의 글에서 지난 삶에 대한 회환을 읽는다. 가슴이 먹먹해져 다시 한참을 서성인다. 아직 주무시고 계시겠지. 요즘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 통화를 하면서도 따뜻한 말 한마디 해드리지 못하고, 급히 끊은 것이 마음에 걸린다. 또 한 편을 읽어본다.

"바다 물결을 멍하니 바라보면
그냥 무아지경 속으로 들어간다
햇볕에 반짝 거리는 작은 은파(銀波)는
내 마음의 안정을 찾아준다.
바다 가득 찬 물결의 일렁임은
무한한 자유의 꿈을 준다.
비바람에 출렁거리는 파도는
화났던 미운 마음 깨끗이 씻어 가버린다
야경 속 배 스크류 소용돌이는
오색찬란한 희망이 되살아남을 일러준다.
오늘 넌 내 참 친구임을
또 한번 일러준다."

그렇게 반짝이는 은빛 파도를 친구 삼아 외로움을 달래고 계실 어머니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나도 마음 속의 은빛 바다를 꺼내어 본다. 어린 시절, 은빛 파도의 기억들…


#1. 다리를 건너다

내 생애 첫번째 기억. 이사를 하는 날이었다. 나는 파란 트럭의 앞 좌석, 아버지의 무릎 위에 앉아 있다. 넓은 창문으로 햇살이 뽀얗게 번져 들어온다. 엉덩이는 따뜻하고, 작은 가슴은 왠지 모를 흥분에 콩닥거린다.

늘 바라보기만 하던 바다를 건너, 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 위를 지나는 그 짧은 순간, 햇살에 부딪혀 반짝이는 바다가 눈부시다. 눈을 가늘게 뜨면 작은 얼굴을 비추는 희부윰한 햇살이 출렁이는 바다 물결처럼 얼굴을 간지럽힌다. '지금 난, 어딘가 새로운 곳을 향해 가고 있다.'


#2. 은빛으로 일어선 바다

5살 쯤이었던가? 햇살이 따스한 어느 봄날, 외삼촌의 손을 잡고 산책을 나섰다. 바다를 따라 걸었다. 오전 11시 쯤의 바다는 마치 파란 밤하늘에 눈부신 은빛 별들을 가득 쏟아 놓은 듯 눈부셨다. 바다가 온통 은빛으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갓 잡아 올린 은빛 갈치처럼 몸을 뒤척였다. 그 반짝이는 햇살 조각들은 나의 어린 영혼에 알알이 들어와 박혔다. 오전의 햇살과 물결의 반짝이는 만남은 내가 지칠 때, 흔들릴 때, 슬플 때, 답답할 때마다 나를 차분히 가라앉힌다. 내 마음을 다독여 준다.


#3. 돌고래를 따라서

어느 오후, 동네 친구와 함께 집 옆 공터에서 바다를 보고 있다. 그 때, 잔잔한 수면 위로 무언가가 뛰어올랐다. 깜짝 놀라, 서로를 바라는 그 순간, 다시 한번 더 뛰어오른다. 돌고래다! ‘아마 길을 잘못 들었나 보다.’ 돌고래는 꿈처럼 뛰어오르며 우리 앞의 바다를 헤엄쳐갔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우린 언덕을 뛰어내려가 돌고래를 따라 마구 달렸다. 반짝이는 회색 빛 돌고래는 점점 우리들에게서 멀어져 넓은 바다를 향해 간다. 우리가 갈 수 있는 땅 끝까지 달린 뒤, 먼 바다의 돌고래를 바라보았다. 돌고래는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하는 듯 마지막으로 한번을 더 뛰어오른 뒤,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우린 돌고래가 사라진 곳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정신 없이 내달려간 바닷가 길을 토닥토닥 걸어서 돌아왔다. 늦은 오후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가 마치 꿈결처럼 일렁인다.


어디로 가는가. 어디로 가는가? 다시 한번 일렁이는 내 맘 속 은빛 바다에게 물어본다. 어린 시절 나를 보살펴주고, 다독여주던 어머니는 이제 작은 등으로, 작은 손으로 다가온다. 저만치 앞서 걸어가시는 어머니를 뒤따라가 반짝이는 바다를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싶다. 햇살 가득한 오후를 마음껏 즐기고 싶다.

어머니의 삶이 내게 묻는다.
"도윤아,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싶으냐?"

힘을 내어 한걸음 더 내딛는다. 그렇게 또 한 번의 하루가 시작된다.

 

 

                                                                                               김도윤 변화경영연구소 3기 연구원(har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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