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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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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7일 21시 02분 등록


***


“지금까지 배운 것들 모두 다 잊어버리십시오.”

서울대를 떠나며 한 교수가 남긴 말이라고 한다.

경제학부 유명한 노교수의 마지막 강의였다.

어라, 이거 내가 하고 싶은 건데?


“여러분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꾸는 것은, 절대 경제학적 선택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어떤 여성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기회비용이 얼마나 크던 상관없이 그 여성을 선택하세요. 학점 따위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미치도록 소설이 쓰고 싶다면, 계획 조금 빗나가는 것은 그냥 넘기십시오. 그 시간에 꼭 쓰고 싶은 이야기를 완성시키세요. 여러분의 삶을 진정으로 이끌어주는 것은 완전히 탈-경제적인 선택입니다. 우둔해지세요.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세요. 잠에 들다가도 떠올리면 괜스레 좋아지는 것, 그것을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나는 누구를, 무엇을, 사.랑.하는가?

정.말.로 사랑하는가?

나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기회비용이 얼마나 크던 상관없이 나를 선택할 수 있는가?

나의 역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가?


갱년기, 나의 사랑은 어떠한가?

갱년기를 뜻하는 단어인 ‘Climacterium(독일어:Klimakterium)은 고대 그리스의 ’Klimakter'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는데, ‘계단’ 또는 ‘사다리의 발판’이라는 뜻이다.

갱년기는 ‘사다리를 오르는 것’이란다.

어디로 향하는 무슨 사다리일까?


**


『장자』 필사를 하고 있다.

작년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고른 것 중 하나다.

니체와 장자를 만나서 놀았다.

왜 자꾸만 끌리는지 묻고, 묻고, 또 물었다.


두 남자가 필요했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와 사랑이 궁금해서 한바탕 뒹굴어야 했다.

얼마나 더 커야 할지, 더 깊어야 할지, 더 가벼워야 할지 물었다.

쉽지 않았다.


어떻게 큰 그릇이 될 수 있는지 몰랐다.

어떻게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지 몰랐다.

어떻게 자유롭게 사랑하는지 몰랐다.

진심으로 간절하게 알고 싶었다.


그러다 털썩 주저앉았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산다는 게 한없이 무의미하고 아무것도 마땅치 않았다.

외로웠나보다. 갱년기의 쓸쓸함은 몹시 낯선 감정이다.

두 남자를 찾아서 뜨겁게 시작했지만,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 채 권태기가 왔다.


이놈의 사랑, 귀찮다.


*


12:30 토마토, 바나나, 포도, 당근, 가지. (아몬드, 호두)


얘네들을 죄다 갈아버렸다. 미니 믹서기의 위력은 대단하다. 부실한 이로 어설프게 씹어댄 게 한없이 후회스러웠다. 믹서기가 아니었다면 제대로 씹지도 못하고 대충 연명하다가 굶어 죽었을 것이다. 믹서기 덕분에 장수하게 생겼다. 높은 곳에 올려놓고 절이라도 해야겠다.


아이들도 한 컵씩 갈아줬다. 과채 중에서 고르라고 했더니 두 따님께서 토마토를 선택했다. 물을 좀 부어서 갈아달란다. 먹어본 솜씨다. 아니나 다를까, 해장용이다. 그리곤 콩나물과 청양고추를 넣어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외롭고 쓸쓸하고 나발이고 진심 혼자 살고 싶다.


7:00 오이, 피망, 현미밥, 나또, 상추, 양파, 마늘, 된장국. (버섯, 콩나물, 다시마)


나또, 얘는 정말 진짜 시간이 필요한 아이다. 친해 보려고 참기름을 둘러보았다. 실 같은 건 코에도 머리카락에도 볼에도 턱에도 달라붙어서 손으로 닦는데 잘 보이지도 않는다. 젓가락이랑 친한지 떨어지질 않는다. 더럽게 먹는 거 말고 깔끔하게 먹는 방법을 알아봐야겠다.


운동도 일이다.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보건소에서 받아온 기구로 팔을 올렸다 내렸다 접었다 폈다 하는데 팔뚝이 후들거려서 진땀이 난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제대로 알고 배웠으면 싶다. 해본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는 운동이라는 세상도 기웃거려봐야겠다. 모르는 거 투성이다.


아, 일찍 잠에 들어봐야겠다. 괜스레 좋아지는 게 뭔지 떠올려봐야지.

혹시 나타나면 잽싸게 잡아서 사랑해야지.

아직 열정이 남아있다면 하얗게 불태워도 좋겠다.

술 마시면서 날 새는 거 말고 사랑하면서 말이다.


봄이고, 배도 부르고, 온몸이 나른하고, 절로 졸음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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