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연구원의

변화경영연구소의

  • 승완
  • 조회 수 3466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2년 4월 23일 00시 05분 등록

* 본 칼럼은 변화경영연구소 1기 연구원 오병곤 님의 글입니다

 

"따르릉~"

"여보세요."

"저는 OOO 상담원 OOO입니다. 오병곤 고객님 되시죠? 다름이 아니라 저희 회사에서 고객님에게 딱 맞는 신상품이 나와서 안내 드리고자 전화 드렸습니다. 통화 괜찮으시겠습니까?"

 

보통 이런 전화가 오면 내가 자주 써먹는 수법이 있다.

", 화장실에 있는데요."

"네에~~~끄응^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백발백중으로 전화를 끊게 되어 있는 나만의 필살기다.

 

, 그런데, 이 상담원은 전화를 끊기는커녕 부탁을 한다.

", 오늘 너무 힘들어서 그런데 그냥 제 얘기 좀 들어주면 안될까요? 절대 광고 안 할게요."

"네에?"

마침 시간이 약간 여유가 있어서 나도 모르게 ""하고 대답해버렸다.

 

"저는요, 상담일 한지 6개월됐구요. 제 고향은 OO인데 20살에 서울로 올라왔어요......"

 

그녀는 약 20분 가량을 이야기했고 나는 중간중간 간간히 ""라고 대답했었던 거 같다.

 

전화 속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오늘 그녀가 실적이 나쁘다고 상사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었을 것이고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도 없는 일인지라 할 수 없이 전화통을 붙잡았지만 도무지 일을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추론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죽 힘들었으면 생면부지의 낯선 남자에게 미주알고주알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을까?

 

"제 얘기를 들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순간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은행 창구 젊은 여직원이 한 고객에게 응대를 하던 중에 심한 말을 들었다. “아니, 뭐 이렇게 꾸물거려? X같은 년, 횟칼로 확 떠버리겠다.’고 소란을 피웠다. 그런데 여직원에게 지점장은 오히려 손님께 사과를 드리라고 명령을 한다. 이럴 때 여직원의 심정은 어떨까? 억울함을 넘어서 죽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지 모른다. 나도 예전에 고객과 일을 하던 중 말다툼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분명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고객의 실수인데 내 상사는 고객에게 사과를 하라고 단호하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그 해 고과는 최하위 점수를 받았다. 이런 일은 일회성의 해프닝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백화점 판매사원, 항공사 승무원, 콜센터 직원 등 일선 서비스 부서는 위에서 말한 일이 일상다반사다.

 

지금부터 약 8년 전 내가 일하던 사무실 근처에는 OO통신회사의 콜센터가 있었다. 나는 회사 동료들과 근처에 있는 주점에 가끔 가곤 했는데 그 곳에는 콜센터 여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그 날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다. 소주병이 수북이 깔려 있었고 담배 연기도 자욱했다. 이렇게라도 풀어야 그들의 하루는 이상 없이 지나갔다.

 

산업화 시대 이후에 자신이 만든 물건을 자신이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일이 자신을 위한 것이기보다 남을 위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인간의 감정이 일로부터 분리되고 소외되기 시작했다. 즉 일을 하는 동안 자신의 감정을 다스려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특히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서비스를 제공할 때 자신의 실제 감정을 다 드러내서 표현할 수 없기에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로부터 소외감을 느낀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와 아무 상관도 없는 무언가를 마지못해 제공하고 있다고 느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제일 먼저 배우는 것 중의 하나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라는 것이다. 조직 생활하면서 어떻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표현하고 지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있는 그대로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은 자신에게나 남들에게나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감정을 통제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이 바람직한 행동이기 때문이 아니라 조직에서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어느 정도 숨기며 생활한다. 상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하라고 해서 그 말을 그대로 믿어서는 곤란하다. 내 경험상 그대로 이야기해서 좋은 결과가 있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상사에게 마음에도 없는 아부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안 그런 척 위선적인 모습을 보인다.

 

더욱이 오늘날 회사는 '고객만족'이라는 지상명제 아래 직원들에게 어떤 경우에도 고객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화내지도 말라고 주입을 한다. 수익을 가져다 주는 고객을 위해 직원들의 감정은 희생을 당하고 있다. 나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항상 의문이 드는 게 있다. "저 상냥한 승무원들은 화날 일이 없을까? 어떤 경우에도 탑승객들에게 친절한 미소로 대하자면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는 게 인지상정인데 투철한 사명감으로 뭉쳐서 그런가, 아니면 무감각해져 그런가?" 그녀들의 속마음은 이럴 지도 모른다. ‘고객님, 제가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닙니다.’

 

‘고객은 왕이다는 모토를 무조건 고객이 옳다는 고객 지상주의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원들은 고객에 종속되거나 하층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갑과 을이라는 계약관계는 단지 비즈니스 관계에서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누구와의 관계에서도 갑과 갑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조조정을 겪은 후 회사에 남아남은 사람들의 특성은 어떤 반응에도 무감각해지는 쪽으로 변해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처음에는 자기만 살아 남은 것에 대한 미안함, 일에 대한 압박감 등을 느끼지만 차츰 억울한 일에도 화를 내지 않고, 슬픈 일이 있어도 그러려니 하고, 기쁜 일이 있어도 무덤덤하게 변해간다고 한다. 무감각은 정신 질환에 가깝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남자들에게서 두드러진다.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남성들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면 나약한 사람이거나 적어도 점잖지 못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만화영화캔디노래 가사처럼 참아낼 뿐이다.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그렇지만 이제는 남자들도 방전된 감성을 충전해야 한다. 남자들은 자신이 감성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좋은 징조로 받아들여야 한다.

 

감정은 이제 무조건 억압해야 할 그 무엇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감정은 이성으로 통제 받아야 하는 원시적인 충동이 아니다. 인간의 의식을 높은 수준에 이르게 하는 뇌 기능의 중요한 부분이다. 감정을 억압하면 그 감정은 우리 내면에 숨겨져 있으면서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왜곡되어 표출될 수 있다. 억눌린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고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나는 믿는다.

 

현대 사회에서 감정을 온전히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지만 자신만의 감성 충전법을 개발해야 한다. 어찌 보면 우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감성 또는 기분을 관리하는 일이다. 휴식을 갖거나 책이나 영화를 보거나 친구들을 만나거나 혼자 명상의 시간을 갖거나 글을 쓰는 일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 나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꽤 사교적인 스타일로 보이지만 사실은 사람을 가리는 편이다. 술자리는 마음이 통하지 않는 사람하고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마음 놓고 감성을 표현하는 매개는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자신만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기쁨과 슬픔, 분노 등의 감정을 표현하고 느끼는 것은 마음을 치유하는 첫 걸음이다.

 

감정은 생명을 지닌 존재만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자,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도우미다. 때로는 외롭거나 슬프더라도 우리는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고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감성을 자유케하라. 내 감성에 날개를 달아주자. 우리 자신을 달래는 기술이 기본적인 삶의 기술이다. 순간순간 건강하게 감정을 느끼고 소통시키면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 글쓴이 : 오병곤, kksobg@naver.com, 변화경영연구소 1기 연구원

 

 

IP *.122.237.16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96 여행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 (1) 최코치 2012.04.05 3095
595 말바위로 가는 숲길에서 승완 2012.04.09 3733
594 내 일상은 왜 이렇게 칙칙해? - 좋아하는 색깔 바지 입기... 경빈 2012.04.10 3892
593 영혼이 있는 공무원 - 최영훈 옹박 2012.04.11 3854
592 은남 언니에게 승완 2012.04.16 3420
591 일상에 스민 문학- 이동 축제일 (정재엽) file [14] 경빈 2012.04.17 5673
590 자신의 미래를 보는 사람 - 한정화 [1] 옹박 2012.04.18 6044
589 쌍코피 르네상스 (by 좌경숙) 희산 2012.04.20 3529
588 그는 과연 변할 것인가 (by 선형) 은주 2012.04.20 7428
» 그 여자는 왜 나에게 전화를 했을까? (by 오병곤) 승완 2012.04.23 3466
586 몰입 : 창조적 인재의 핵심키워드 (도명수) 경빈 2012.04.24 4245
585 내 삶의 거울 - 송창용 옹박 2012.04.26 3323
584 Oh! my GOD, Oh! my DOG (by 춘향이) [8] [1] 은주 2012.04.27 3929
583 가족이라는 이름의 사람 - 김민선 옹박 2012.05.02 3487
582 먼 길 (by 이선이) 승완 2012.05.07 3662
581 고양이에게 먼저 고백하다 - 이은남 옹박 2012.05.09 3315
580 4차원 성철이 (by 김연주) 은주 2012.05.12 3319
579 [오리날다] 뒤뚱거려도 눈부시다 (by 김미영) [1] [3] 승완 2012.05.14 3404
578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을 읽고 (한명석) 경빈 2012.05.15 6980
577 나의 아멘호테프 - 최정희 옹박 2012.05.16 3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