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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9일 08시 40분 등록

굴절된 기억

 
 
   저에게는 두 친구가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 세 사람이 비슷한 일을 하기에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듯 교감이 됩니다. 몇 년 전에는 저녁을 먹다가 우울하다는 한 친구의 말에 그 길로 밤길을 운전해 동해안으로 내달렸던 기억도 있습니다. 마음이 적막강산일 때 눈빛만 봐도 심중을 헤아릴만큼 함께 건너 온 곰삭은 세월이 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식사자리에서 두 친구사이에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 다툼의 이유는 아주 소소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일을 회상하던 두 사람이 극과극으로 다른 표현을 하다 종내는 마음을 상하게 되고 만 것이었습니다.
곁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정을 지켜 보게 된 저는 사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슬며시 번지는 웃음을 참아야 했습니다.
그런 저를 바라보던 두 사람은 그 상황을 함께 겪은 제게 어떤 기억이 맞느냐고 묻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억하는 그날의 일은 두 사람의 의견처럼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기억상자에 담아 둘만큼 특별하지 않은 평이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웃었던 것은 세 사람이 같은 일에 대해 얼마나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발견한 흥미로움 때문이었습니다. 제 대답에 어이없어 하던 친구들은 폭소를 터트렸고, 그 자리는 잘 갈무리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며, 저는 왜 두 사람의 기억이 상반되는 것인지 내내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러다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 했습니다. 그 상황이 좋았다고 기억하는 친구는 낙관적인 표현을 잘 쓰며 후일을 자주 기약하는 미래지향형이었고, 그 상황이 나빴다고 기억하는 친구는 작은 실수에도 자주 의기소침해지는 과거지향형의 품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자칭 미래지향형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는 이야기를 할 때도 "무엇무엇을 했네" 라고 동의를 구하듯이 묻는데, 과거지향인 친구는 "무엇무엇을 했지?" 라고 따지듯이 분석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두 사람 사이에 사소한 다툼이 잦은 것도 그런 표현의 차이 때문이었던 거지요. 그럼에도 두 사람은 자주 만나 의견을 교환하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서로 다름에 이끌리는 모양입니다. 또 두사람은 저를 무채색이라고 놀리기도 합니다. 저 또한 그 말이 듣기에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두 사람이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상황에 대하여 특별한 기억이 없는 저는 누구일까요.  과거지향도, 미래지향도 아닌 현재지향형일까요. 말씀 드릴 수 있는 건 저는 늘 오늘을 우선으로 두고, 현재에 충실한 사람인 것만은 맞습니다.  

기억은 입장에 따라 굴절되고 때로 심하게 왜곡되기도 합니다.  이 편지를 읽는 그대는 어떤 기억을 간직하고 싶으신지요.
또, 과거 현재, 미래중 어느것에 더 비중을 두며 말씀하고 계신지요. 문득 궁금해지는 아침입니다.
무더위가 주춤한 수요일,  제주에서 씁니다.


http://cafe.naver.com/east47/3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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