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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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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21일 07시 24분 등록

* 이 글은 5기 연구원 장성우의 글입니다.

 

 

나의 회사 책상 옆에는 아끼는 난초 하나가 있다. 2년 전 승진 때 아는 분께서 보내 주신 것인데 생전 처음 받은 것이기도 하거니와 척박한(회사 내는 생각보다 건조하고 볕도 많이 들지 않는다) 환경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대견해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잘 돌보고 있다. 뭐 잘 키운다고 하는 것이래야 일주일에 한 번씩 흠뻑 젖도록 물을 부어 주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식물용 영양 앰플 하나를 꽂아 주는 정도가 고작이지만. 그래도 물을 줄 때 마다 ‘사랑한다, 잘 자라라’ 라고 마음의 인사를 건네고는 한다. 그래서일까? 시들시들한 다른 책상의 난초들과는 달리 새로운 잎줄기가 계속 나면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렇지 못했다. 똑 같은 방법으로 일주일 마다 물을 흠뻑 주었는데도 이상하게 시간이 갈수록 한 잎씩 말라 죽어가는 것이었다. 처음 올 때에는 잎이 20개 가까이 되었었는데 하나 둘 말라 떨어지더니 10개 미만이 되어 버렸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방법을 몰라 고민하던 중 어느 전무님 방에 들어가서 대화를 할 일이 있었는데 방에 난초들이 너무 잘 자라는 것을 보고 방법을 물었더니 혹시 난초 포장을 그대로 놔두고 있냐고 물으시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난을 보낼 때 두꺼운 포장지로 싸고 거기에 이름을 쓴 리본을 붙이는데 나는 보낸 분의 정성을 생각해서 그냥 놔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더니 당장 포장부터 뜯으라고 하셨다. 난초들도 숨을 쉬어야 하는데 그 포장지 때문에 숨을 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장 포장지를 뜯었더니 신기하게도 그 다음부터 난초가 마르지 않고 일정기간 그 상태를 유지하더니 어느 날부터 새로운 잎들이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다. ‘아, 난초들도 숨을 쉴 통로가 필요하구나’. 누구나 살기 위해서는 성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숨을 쉴 수 있어야 하는 법인 것이다. 난초도, 사람도…

 

그런데 이렇게 해서 새로 나온 잎들이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하더니 지금처럼 처음의 모습 아니 그 이상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혹시 난초가 성장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 먼저 난초의 뿌리 부분에서 껍질처럼 새로운 잎이 삐쭉 얼굴을 내민다. 이 새순이 자라다가 15~20센티미터 정도 자라면 줄기 가운데에 2,3군데 정도가 쭈글쭈글 구부러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이 구겨진 부분이 쭉 펴지면서 하나의 줄기가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바로 여기가 하나의 잎줄기가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한 성장점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가만히 보면 구부러짐과 뒤틀림은 퇴행이 아니다. 도리어 성장을 위한 생장점의 생성이자 확대이다. 단위 면적에 많은 생장 세포를 함유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 것이다.

 

올 상반기 연구원 수업을 통해 살펴본 나의 내적인 모습은 평화롭지 못했다. 돌아보니 지난 기억에 집착하고 있었고 그래서 외로웠다. 하지만 그 지독한 외로움에서 빠져 나오고 싶었고, 그래서인지 나는 미망에 빠졌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꿈꾸고 현실을 외면했다. 많은 시간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나를 관찰하고 그 심연을 파악하는 대신, 내 자신은 꽁꽁 싸서 감추어 둔 채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구원자가 나타나서 나를 매혹시키고 그 결과 그 달콤함에 빠져 일상을 잊어 버린 채 나만의 파라다이스에 빠져 사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영원히 꿈을 꿀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깨어나야만 했다. 현실을 직시해야만 했다.

 

돌아보면 나의 최근의 정신적 뒤틀림도 성장통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는 들었으되 정신 속에 아직 걸러내지 못한 미숙한 감정과 앙금이 남아 있고, 불필요한 집착과 현실의 도피를 일삼는 어린 마음이 들어있으니 이를 떨쳐 버리고 정신적인 어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는 미망에서 빠져 나와 현실을 직시하고자 한다. 이제 과거는 과거로 추억하고, 현재는 현재로 직시하고, 미래는 현재처럼 계획을 세워야 한다. 내가 계속 붙잡고 있던 과거의 기억은 ‘보석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추억’으로서 ‘내 인생 최고의 시간’으로서 마음에 곱게 묻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 의식 속에 조용히 묻어야 한다. 현재는 모든 문제들을 낱낱이 끄집어 내어 이슈화 하고, 대화하고 풀고 품고 그리하여 녹여내야 한다. 마치 새로운 주물을 만들기 위해 용광로 안에 고철을 넣어 녹여내듯이. 그리고 선생님 말씀처럼 ‘미래를 가장 잘 예측하기 위하여’ 나의 멋진 미래를 설계하고 실행해야 한다.

 

성장을 위해서는 구부러짐과 뒤틀림을 피할 수 없다. 번민과 일탈과 반항과 절규의 괴로움으로 구부러지고 뒤틀리는 괴로움 속에서 우리는 성장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 괴로움 속에서 많은 사유가 생겨나고 그 사유의 세포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재정렬되고 자라날 때 우리는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조금 더 고독해야 한다. 외로움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성장을 위해 도리어 고독 속으로 나를 묻어야 한다. 나를 성찰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당연한 책임을 완수하면서 그 고행을 통해 나의 미망의 껍질을 깨뜨릴 내적인 힘, 나만의 성장 세포들을 키워야 한다. 그런 후 나의 내적 의지를 생장점으로 삼아 힘들어도 꼭 만들고 이룩해야 할 나의 미래의 꿈을 그리고, 그 세부 구현 방안을 하루 일과 중에서 꾸준히 실행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중년의 성장통. 힘들지만 반갑게 맞아 들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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