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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옹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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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26일 11시 47분 등록
젊었을 때 나는 감히 급진적이지 못했다. 그것이
늙었을 때 나를 보수적으로 만들까 두려워서였다.
- 로버트 프로스트, “신중(愼重)”

고양이를 안고 집 앞 마당에 앉아 있는데 집 주인이 언덕을 올라왔습니다. 그는 이야기하길 좋아합니다. 한참을 “이 사회가 부자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하다”고 한탄했습니다. 부유한 나라가 되려면 부자가 존경받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는 저를 만날 때마다 젊었을 때 열심히 돈부터 벌라는 충고를 하곤 합니다.

저는 그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대학 시절 학생 운동의 선봉이었습니다. 총학생회장으로 데모 행렬의 맨 앞에서 화염병을 던지며 노동운동을 했습니다. 결국 경찰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기업에 취직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의 방황 끝에 그는 조그마한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갖은 고생을 거쳐 이제는 제법 큰 회사를 차리고, 봉천동 일대의 원룸들을 점령하는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늘 “까놓고 솔직히 말해서 자본주의에서는...” 으로 결론짓는 그의 말은 거의 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도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면, 지금의 그는 돈의 노예는 아니지만 돈의 왕국에 갇혀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역경은 이겨내었지만, 성공은 이겨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노동운동을 주도하던 젊은이와 부자에 대한 존경을 강조하는 아저씨. 만약 30년의 세월을 넘어 둘이 만난다면 어떨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그는 그렇게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프로스트의 짧은 시에 비추어보니 그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카로스, 너무 낮게 날면 날개가 바닷물에 젖어서 무거워진다. 그렇다고 너무 높이 날면 뜨거운 태양이 날개의 밀랍을 녹일 거야. 그러니 아버지를 따라 중간으로 날아야 한다.”


상상해봅니다. 젊은 시절의 그는 태양을 동경하던 이카로스처럼 훨훨 하늘을 올랐을 것입니다. 높이 오르니 시야가 넓어지고 앞을 막는 장애물들을 넘어설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서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 땅으로 추락하고 맙니다. 많이 아팠겠지요. 한참을 울다 정신을 차려 날개가 힘없이 떨어져있는 땅을 보니 조그마한 금덩이들이 반짝입니다. 그리고는 햇빛을 버리고 금빛을 좇아 점점 더 지하의 동굴 속으로 몸을 밀어넣고는 하늘과 태양에게 욕을 해댔겠지요.

젊음의 극단을 경계해야겠습니다. 극은 언제건 다른 극으로 통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극단의 언저리를 빠져 나오지 못하면 인생은 추락하거나, 갇혀버리기 때문입니다. 양 극단의 역설과 이중성을 이해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살아가는 것의 정수이겠습니다. 젊음이 이상적이고 늙음이 현실적이라면, 청년을 현실적 이상주의자로서 그리고 노년을 이상적 현실주의자로서 살고 싶습니다. 지나친 넘침과 모자람의 중간에서 언제나 호연히 서 있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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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6 14:59:40 *.202.81.174

마음에 와 닿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두 다리는 땅에 굳건히 박고 두 눈은 하늘을 보라" 는 말이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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