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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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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일 15시 40분 등록

이 글은 6기 연구원 박미옥님의 글입니다.

 

첫 숙소였던 칼람바카의 안토니아디스(antoniadis) 호텔에 도착한 것은 8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점심때 먹은 그리스음식탓인지 무리한 비행탓인지 도저히 저녁식사를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힘들었다. 얼른 씻고 자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서둘러 열쇠를 받아 방에 들어왔다.

 

정신없이 옷을 벗어던지고 욕실로 들어가 따뜻한 물에 몸을 맡겼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피로와 긴장이 더운 물줄기와 함께 배수구로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피로가 가시자 이제 가슴이 찌릿거렸다. 떼어 놓고 온 아이가 엄마를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제서야 알아 차렸다. 컨디션 난조의 원인은 다름 아닌 젖몸살이었던 것이다. 갑자기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박미옥,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니? 여기가 정말 네가 있어야할 곳이 맞기는 한거니? 뭐가 그렇게나 절실해서 젖먹이 아이까지 내팽게치고 여기에 와 있는 거니? 세상의 기쁨이 되고 싶다고 했지만, 정작 너를 정말 기쁨으로 느껴줄 존재에게는 왜 이렇게나 인색한거니? 결국 너는 그냥 스스로의 기쁨에 취하고 싶은 거 아니니?’ 다시 더운 물을 맞으며 그렇게 또 한참을 있었다.

 

겨우 눈물을 닦고 침대에 막 몸을 뉘이려는데 인기척이 들렸다. 선형언니였다. 수영장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이런.. 오늘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하지만 그건 안 될 일이었다. 제멋대로 굴 생각이었으면 아이까지 떼어놓고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애써 마음을 다스리며 선형언니에게 물었다.

 

근데, 첫날부터 왠 수영장이에요?

몰라.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 은주언니랑 사부님께서 그렇게 정하셨어.

첫날부터 수영복은 좀 부담스러운데.....웨버언니 날씬한 것도 이런 부작용이 있네.

뭘 그렇게 중얼거리니? 얼른 올라가자!

 

물은 생각보다 엄청 찼지만, 기분은 괜찮았다. 터키어로 좋은 망대라는 뜻이라는 칼람바카. 수도원을 이고 있는 바위산이 병풍처럼 이 도시를 에워싸고 있었다. 10시를 넘긴 밤, 호텔 옥상 수영장에서 바라보는 푸른 바위산은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호텔방안에서의 꿀꿀한 기분은 어디론가 다 휘발해버리고, 머나먼 이국 그리스에 있다는 실감이 설레임으로 바뀌어 온몸으로 스며들어오기 시작했다. 칼람바카의 바람속에 작은 연회가 열리던 그 밤, 나는 낯선 사람들의 살갗위에 따듯하게 녹아 흐르는 유끼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밤의 첫눈, 쑥스럽게 꺼내입은 수영복처럼 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안다. 그건 분명 눈이었다.

 

언니, 좋지?

힘들다고 투덜댄지 몇시간도 안지났네요!!

그래도 좋은 걸 어떻게! 역시 어른 말씀은 무조건 들어야 한다니까..^^*

. 나도 좋아. 자자!

 

하루종일 몸속에서 또 마음속에서 치른 전쟁의 흔적으로 잇몸엔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내가 이 순간 이 침대에 누워있는 것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일거야. 그렇게 그리스에서의 첫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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