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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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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31일 01시 44분 등록

 

슬픔이란, 더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다.

 

월요일부터 한잔했다. 이유는 오만가지다. 일주일이 이제 겨우 시작되었고 하루가 너무 길었고 월말이고 마감이고 개학이고 시간표는 엉망진창이고 그래서 늦도록 스트레스 받아 피곤했고 풀린다는 날씨는 춥고 배가 고팠고 밥통은 텅 비어 훌러덩 열려 있고 냉장고엔 삼겹살이 예쁘게 누워있고 소주도 있고 순간, 살맛이 났기 때문이다.

 

일요일 오후에 기분전환 하자며 웃자고 본 영화 ‘7번방의 비밀’부터 슬펐다. 예고편은 분명 코믹이었는데 그래서 막 웃어보자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영화관에서 나와 냉면이나 먹자고 찾아간 집은 불이 꺼져 있었고 그다음으로 떠오른 메뉴인 해물 찜은 식당이 보이질 않았고 동네를 돌다 돌다 결국엔 마트에서 일주일치 장을 봐서 집으로 왔다.

 

일요일이 가는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소주병을 땄다. 돼지고기 김치찌개에 말랑말랑 두부 넣고 보글보글 끓여서 생마늘이랑 청양고추를 노란 배추쌈에 싸서 아, 행복하다며 와구와구 씹어댔다. 알딸딸한 기분에 친구와 전화통화를 했다. 송년회도 못했으니 신년회를 하자고 남편도 지방에 있으니 우리끼리만 만나자고 명절 지나면 보자고.

 

그러다가 통화하다가 결국 만났다. 배는 부르니까 간단히 생맥주나 한 잔씩 하자 했고 그래도 안주는 골뱅이를 먹자 했고 안주가 남았으니 술을 좀 더 하자고 했고 그래도 서비스 안주가 남았으니 좀 더 마시자 했고 친구는 이제야 발동이 걸렸다 했고 치킨이 땅긴다며 먹다 남으면 싸가자 했다. 그나마 담날 출근 걱정에 3차는 피했다.

 

거의 기절 상태로 뻗어서 맞이한 월요일 아침, 화장은 언제 지우고 잤나 싶게 뽀얀 피부를 확인하고 화장품 대충 바르고 밥은 거르고 씩씩하게 출근했다. 교육, 회의, 미팅, 전화통화로 정신이 잠깐 돌아오는 듯했으나 점심으로 국물도 없는 돈가스를 고른 건 혈중 알코올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속도 좋다며 꾸역꾸역 먹다가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괜찮으냐고 물었다. 그리고 말했다. 만날 때부터 이미 취했더라고. 남편과 떨어져 지내는 게 생각보다 힘들고 술친구 남편이 없어서 외롭다며 남편을 정말 사랑한다고 많이 그립고 보고 싶다고 했단다. 그것도 울면서 그랬단다. 애인 소개해달라고 할 땐 언제고 입만 열면 남편 남편 하더니 만나줘서 고맙다며 계산하는 모습이 짠했단다. 진실은 어디까지인가.

 

카드승인내용은 진실이었다. 술에 취해 사랑을 떠들며 결국엔 기억도 못 할 일요일 밤 찰나의 시간, 출혈이 심했다. 눈물로 화장을 지웠다니 뭐하는 짓인가 필름 끊어져 가며 왜 이러고 사나 나이는 어디로 먹나 가지가지 하는구나. 진짜 슬펐다. 슬퍼서 펑펑 울고 싶었다. 수업이고 뭐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서 이불 뒤집어쓰고 어제로 돌아가고 싶었다.

 

술 취한 게 부끄럽고 창피해서 또 취했다는 얘기다.

딱, 슬프다.

 

***

 

언젠가부터 선생님께 1년에 한 번 문자를 드린다.

희한하게 바로 그날, 생신날 문득 생각이 난다.

선생님은 글을 가까이하라고 답을 주신다. 잘하는 것이라고.

내 글을 읽지 않으시는 게 분명하다. 이 글도 그랬으면 좋겠다.

갈수록 창피해 죽겠다.

 

이번 주말에도 한잔할까 보다.

낮술 땡기는 분들, 카페로 오시라.

 

 

 

IP *.114.2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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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31 06:20:30 *.216.38.13

푸하하하하하하하!

 

글을 읽으니, 술 땡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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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1 17:08:01 *.11.178.163
우윳빛깔 그대와 한잔 해야는데~^^

난 요즘 주식이 술인가 봐.
별핑계 달핑계 만들어서 마셔대고 있어.
덕분에 올록뽈록 엠보싱 뱃살 대박!
입도 살찌나? 막 씹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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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31 13:27:07 *.34.180.245

푸하하하하하!2

 

소주도 좋고 슬픔도 소주만큼 좋아 보이네.

구경꾼이라서 그런가.

글은 더 재밌는 듯.

누나를 좋아하는 독자라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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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1 17:00:53 *.11.178.163
어젯밤에 한남동 갔었는데..
새벽까지 있었다우^^

뭐, 당연히 맛집에서 한잔했지!
고마워, 독자~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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