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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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0일 10시 00분 등록

나는 서치펌에서 컨설턴트로 일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리쿠르팅 컨설턴트다. 기업 인사팀에서 인재 채용을 의뢰하면 채용 전략을 수립해 후보자를 찾아내 추천하는 것이 내 일의 핵심이다.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헤드헌터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것은 기업의 시각이다. 구직자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커리어 컨설턴트다. 포지션을 제안하기 위해서는 그 자리가 구직자의 경력에 어떤 도움이 되며 이후 어떤 경로의 경력계발이 가능할지 설득해야 한다. 그러니 순서는 선 커리어 컨설팅, 후 헤드헌팅이다. 현장에서 구직자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커리어 컨설팅이 아니라 라이프 컨설팅이 필요한 사람들을 자주 마주치곤 한다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다.

 

동원씨는 외국에서 대학을 나와 회계 경력을 쌓은 건실한 젊은이다. 내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아버지에게 간이식을 해주고 회복을 위한 휴식 기간을 마치고 구직 중이었다. 인터뷰 룸에서 마주한 그는 다소 비관적이고 소심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전문성과 경력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는 내가 진행하는 외국회사의 회계 포지션에 지원해 합격했다. 전 직장 동료에게 평판조회를 해보니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활달한 성격은 아닌 듯 했다. 하지만 회계 담당자에게 꼭 필요한 성실성과 세심함은 합격점이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입사가 2주 남은 시점이었다. 이른 아침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가족 여행 중 교통사고를 당해 입사가 어렵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턱과 흉부 쪽에 큰 부상을 당해 통화가 어렵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회복 기간이 어느 정도 걸릴지 알 수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겠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연결 되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드물지 않다. 정말 큰 일을 당한 경우도 있지만 거짓말이나 핑계인 경우도 많다.)

 

나는 고객사에 양해를 구하고 다른 후보자를 찾아 추천했다. 그런데 얼마 후 그에게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 2주 정도 치료를 마치고 퇴원했는데 좋은 자리를 너무 성급하게 포기한 것 같아 후회가 된다고 했다. 다행히 아직 포지션이 진행 중이라 고객사에 재진행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객사 인사담당자는 그를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전화를 걸어 그 사실을 알렸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이 제 잘못입니다. 제가 원래 운이 없어요. 제 인생을 돌아보면 후회되는 일이 너무 많아요. 어쩔 수 없지요.’ 그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었다. 외국에서 대학을 다녔고 훌륭한 경력을 쌓았지만 자신은 항상 운이 없고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생각과 태도가 일에도 반영되고 있으니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혜원씨도 동원씨와 비슷한 상황이다. 그녀는 어릴 적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단둘이 어렵게 살아 왔다. 착한 딸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고 이후 취업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어렵게 입사한 직장에서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현재는 퇴사 후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녀는 결혼 후 남편과 1년 정도 외국에 있을 예정인데 이후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결혼 후 남편의 직장 문제로 지방에서 살아야 하고 출산과 육아의 과정을 거쳐야 하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30대 초반인 그녀는 아직 이렇다 할 전문성을 만들지 못한 상황이었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많이 부족했다. 또한 그녀는 어머니에 대해서 심각한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 혼자 자신을 어렵게 키웠으니 그녀의 노후는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나는 그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인생이라고 조언했다. 어머니나 남편을 위해 살지는 말라고 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또한 도와 달라 손을 내밀면 외면할 사람들도 아니라고 했다. 지레 겁먹어 이러면 어머니에게 부담이 되고 이러면 남편에서 미안할 것 같다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출산과 육아 때문에 어려울 것 같다고 벌써부터 겁을 낼 필요도 없다고 했다. 아이 또한 자신의 인생이 있고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한 법이라고 했다. 이기적이라 욕을 먹으면 어떤가? 단 한 번뿐인 내 인생인데.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는다면 일이 아니라 일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태도는 삶 전반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나온다. 그러니 커리어가 아니라 라이프에서 출발해 고민해야 한다.

 

앞의 두 젊은이와 같이 얽히고 설킨 마음 속 실타래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에게 편지를 써보는 것이 좋다. 심리에세이스트 김형경은 심리치유 에세이 천 개의 공감에서 정신분석가 수잔 포워드의 유독한 부모를 언급한다. ‘유독한 부모란 말 그대로 자녀에게 독이 되는 부모를 말한다. 부모의 의무를 다 하지 않는 부모, 신처럼 아이를 벌주고 지배하는 부모, 지나치게 통제하고 간섭하는 부모, 알코올 중독인 부모, 언어나 신체적으로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가 이에 해당된다. 이런 부모들은 자녀의 발달을 저해하고 자녀의 마음에 독성을 입힌다. 이런 자녀들이 심리적으로 유독한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가장 치료 방법은 가해자인 부모와 폭력의 문제를 놓고 대면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정도로 자아가 강하지 못하거나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경우에 포워드는 편지 쓰기를 권한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가해자인 부모에게, 도와주지 않고 방관한 다른 쪽 부모에게, 상처 입은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애인이나 배우자에게, 미래의 자식들에게 순서대로 편지를 쓰고 나서 얼마 후 같은 순서로 편지를 쓴다. 두 편지를 비교해 보고 마음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점검한 후 다시 똑 같은 순서로 편지를 쓴다. 마음이 풀릴 때까지 내면의 모든 감정을 편지에 쏟아내면서 자기 혐오를 없애고 치유의 힘을 길러 나가는 것이다.

 

마음 속 상처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인간은 연약한 존재지만 내면의 힘은 무한하다. 그 힘으로 그 상처를 딛고 일어설 수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 항상 남에게 미안한 사람은 자신의 커리어를 제대로 만들어갈 수 없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것은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강인한 자아를 만드는 일이다. 그러면 삶과 일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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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은 40대 중반에 중원 대륙을 유람할 절호의 찬스를 잡는다. 삼종형 박명원이 건륭 황제의 만수절(70세 생일) 축하 사절로 임명되면서 장작 6개월에 거친 대장정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일정 중 연암은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게 되는 경험을 하고 열하일기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라는 글을 남긴다. 글 중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 있어 옮겨 본다. (고미숙, 길진숙, 김풍기가 엮고 옮겨 북드라망에서 펴낸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에서 발췌함)

 

강물은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 집은 깊은 산속에 있다. 문 앞에 큰 시내가 있는데, 매번 여름철 큰 비가 한 번 지나고 나면 물이 급작스레 불어나 항상 수레와 기병, 대표와 북이 울리는 듯한 굉장한 소리를 듣게 되고 마침내 그것은 귀에 큰 재앙이 되어 버렸다.

내 일찍이 문을 닫고 가만히 이 소리들을 비교하며 들어본 적이 있었다. 깊은 소나무 숲이 퉁소 소리를 내는 듯한 건 청아한 마음으로 들은 탓이요, 산이 갈라지고 언덕이 무너지는 듯한 건 성난 마음으로 들은 탓이요, 개구리 떼가 다투어 우는 듯한 건 교만한 마음으로 들은 탓이다. 만 개의 축이 번갈아 소리를 내는 듯한 건 분노한 마음으로 들은 탓이요, 천둥과 우레가 마구 쳐대는 듯한 건 놀란 마음으로 들은 탓이요, 찻물이 보글보글 끓는 듯한 건 흥취 있는 마음으로 들은 탓이요, 거문고가 우조로 울리는 듯한 건 슬픈 마음으로 들은 탓이요, 한지를 바른 창에 바람이 우는 듯한 건 의심하는 마음으로 들은 탓이다. 이는 모두 바른 마음으로 듣지 못하고 이는 가슴속에 자신이 만들어 놓은 소리를 가지고 귀로 들은 것일 뿐이다.

 

필자 재키제동은 16년간의 직장 생활을 기반으로 직장인들의 경력 계발에 대해서 조언하는 커리어 컨설턴트이자 유수의 기업에 핵심인재를 추천하는 헤드헌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재클린 캐네디의 삶의 주도성을 기반으로 김제동식 유머를 곁들인 글을 쓰고 싶은 소망을 담아 재키제동이란 필명으로 활동 중입니다. 블로그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꿈, 나의 인생 http://blog.naver.com/jackie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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