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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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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8일 09시 00분 등록

 

 

하늘이 높아지고 바람이 선선해지니 잠을 이룰 수 없는 날이 많아집니다경천애인 (敬天愛人)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뜻의 고사도 자꾸 떠오릅니다.

  어느덧 그리운 사람은 모두 멀리 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행복한지 자꾸 안부를 묻고 싶어집니다.

요즘 자주 더 떠오르는 그리운 사람중, 한 사람. 그가 우리 곁을 떠났을때   썼던 글입니다.  

 

고향 봉하 마을에서 전, 대통령 할아버지로 살아가겠다는 노 대통령의 꿈은 고작 사 백여 일만에 무참히 깨져 버렸습니다.

제가 청년이었을 때, 라면박스를 들고 고무신을 신은 인권 변호사로 명동성당을 찾아 온 그를 처음 만났습니다. 라면을 끓여 함께 나누어 먹던 기억속의 그는 세월이 흘러 대선 후보 시절, 다시 만났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의원회관을 드나들면서 정치인과는 밥 한 끼도 나누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던 제가 그와 인터뷰를 마치고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제가 숟가락도 대지 않은 채 남긴 설렁탕을 망설임 없이 가져다 먹으며, 대선후보가 되니 예전보다 더 배가 고프다며 웃었습니다.

 

비주류로 오랫동안 살아온 그가 청와대에 입성하면 비주류 시절을 다 잊는 것은 아니냐는 질문에 자신은 이 땅에서 뼈속까지 비주류일 수밖에 없노라고 대답했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그 말이 내내 아프게 맺혀 왔습니다. 그와의 인연이 두 세 번의 만남으로 그치지 않고, 그가 권한대로 홍보실에서 일을 했었다면 오늘 어떤 심정이었을까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청와대에 입성한 후, 힘없는 사람이 대통령을 하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를 우리는 그를 통해 고스란히 볼 수 있었습니다. 학연에서 제외되고, 물질에서 제외되었던 그는 그럼에도 지역감정 타파를 주장했고, 당에서조차도 자유롭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때문에 언론에서 무차별 폭격을 받았으며, 권위 있는 대통령에 익숙해 있던 국민에게 푼수 대통령이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그러나 탈권위를 지향하던, 여느 대통령보다 몸을 낮춰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려 노력했던 그의 마음을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 귀하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노 대통령의 부음을 듣자마자 조기를 계양했습니다. 그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바람에 휘불리우는 국기마냥 마음이 마구 휘불렸습니다. 목숨과 맞바꾸고 싶을 만큼 지키고 싶은 가치가 저에게는 무엇이었던가를 내내 생각해 보는 지난 며칠 이었습니다. 이 땅에서의 소임을 위한 자신의 절대가치와 변환가치의 경계를 그는 알고 있었을까요. 그는 자신의 절대 가치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겠지요.

 

오욕과 능욕을 견디고, 다시 사람들이 그의 말에 귀기울이게 될 때까지 견디어 주기를 간절히 바랐던 마음을 전하려고, 저는 이 길로 기차를 타러 갑니다. 그의 빈소에 그가 변호사 시절 즐겨 신었던 고무신 한 켤레를 놓아드리고, 어렵겠지만 그를 잠시 놓을까 합니다.

그가 다하지 못한 일상을 무던히 살아내는 것, 그것이 그가 우리에게 당부하는 마지막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면서요. 서로를 지우면서 영역을 넓혀 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섞이면서 상호작용이 되는 세상이 되어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노 변호사님. 당신이 어디에 있든 행복한, 그 사심 없는 바보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늘 소외된 이들을 살피고자 했던 당신을 언제나 응원하고, 언제나 바라보고 있었던 우리들의 마음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역사가 당신을 제대로 알게 하리라는 희망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애도의 눈물이 당신에게까지 전해져 당신이 전처럼 뜨거워지면 좋겠습니다. 평안하시길 빕니다.

 

 

 

2009513일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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