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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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6일 09시 52분 등록

겨울비 내리는 어느 오후, 나는 모 글로벌 비정부기구(NGO)의 인턴사원 채용을 위한 면접관으로 초빙되어 대학 캠퍼스에 있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이 NGO의 인턴사원 채용에는 9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 이번 채용은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스펙 파괴 채용의 일환으로 학력과 경력을 철저히 배제하고 논술과 인적성 검사, 그룹토론과 영어 프리젠테이션, 심층면접을 통해 인재를 선발한다. 합격자는 1년간 근무 후 평가를 통해 정식 채용되는데 그 경쟁률이 무려 100 1이나 된다.

 

나는 영어 프리젠테이션 면접관으로 지원자의 분석적 사고력과 영어 구사력을 평가하는 일을 맡았다. 지원자에게는 PT 30분 전에 특정 주제에 대한 영어 자료가 주어지는데, 그 내용을 이해하고 요구되는 과제를 10분간 영어로 발표한다. 이어 10분간 한국어 질의응답이, 나머지 10분간 영어 인터뷰가 진행되는 순서다. (대부분 대학 졸업예정자인 지원자들에게는 절대 쉽지 않은 전형이다. 영어 자료 또한 그 핵심을 짚어 내기 쉽지 않은 내용이었다.) 오후 내내 쉴 틈도 없이 30분 단위로 새로운 지원자가 투입되었는데 어느 순간 지원자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 몇 가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평가한 8명의 지원자 중 두 명은 아버지가 목사여서 어려서부터 다양한 자원봉사 활동을 해온 이들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아 왔고 교회에서는 어린이 성경학교 교사로 활동해온 이들은 지구촌 곳곳에 좋은 영향을 미쳐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고 했다. 어떤 지원자는 모 정부단체 소속으로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서 재능기부 활동을 2년간 했다고 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너무 큰 보람을 느꼈는데 이번에는 글로벌 NGO에서 일해보고 싶어 지원했다고 했다. 지원자들의 공통된 바람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순수한 마음이 얼마나 예쁜가! 대부분의 취업준비생들이 고액연봉을 제공하는 유명한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공모전에 응모하고 영어 연수를 다녀오는 등 스펙 쌓기에 골몰하고 있을 이 때에!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이들은 봉사활동과 직업의 차이점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막연히 사람들을 돕겠다는 선한 마음만 가지고 있었다. 봉사활동과 직업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봉사활동은 참여로 충분하지만 직업은 성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인턴사원들은 현업에 투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이 얼마나 순진무구했는지 빛의 속도로 깨닫게 될 것이다. 봉사활동을 할 때는 참여 자체만으로도 존재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직원이 되면 자신이 맡은 업무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그 의미를 찾기가 어렵다. 목표한 후원금을 마련하고, 후원자들을 확보하고, 현실에 맞는 전략을 세워 효과적인 후원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후원자들을 위한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야 성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지원자들의 대다수가 자신의 일에 대해서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한 지원자는 입사 후 계획에 대해서 말해달라는 요청을 받자, 돈을 모아 해외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박봉으로 유명한 NGO에서 일해 해외 여행을 가고 싶다니! 그런 계획이라면 높은 연봉으로 소문난 회사의 면접 자리에 가 있어야 한다. 또 다른 지원자는 지방에 있는 가족을 모두 서울로 이사시키고 싶다고 했다. , 순진무구한 아가씨여! 아마도 지방의 집을 팔아도 서울에서는 전세집 구하기도 벅찰 텐데! 당신이 받는 월급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저축한다고 해도 서울에서 집을 사기 위해서는 수십 년이 걸릴 텐데!

 

모 정부부처 산하 공공기관의 신입사원 채용을 위한 그룹 토론 현장에서도 그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정확한 처우는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그 자리가 공무원 비슷한 대우를 해주는 곳으로 생각하고 왔을 것이다. 요즘 같은 고용 불안의 시대에 공공기관의 신입사원이라면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그룹토론은 해당 주제에 대해서 여러 명이 토론을 하는 것으로 참여하는 지원자들의 성향을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평가 방법이다. 면접관들이 참관하고 있어 지원자들이 실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까 의구심이 들겠지만 30분 정도 참관하다 보면 각자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지금도 생각이 나는 아주 인상적인 후보자도 있었다.

 

그녀는 옷차림부터 남달랐다. 흰 셔츠에 검은 정장을 입은 지원자들 속에서 그녀는 한눈에 보기에도 개성 있고 자유로운 의상으로 돋보였다. 토론이 시작되자 대부분의 지원자들을 말 한 마디도 조심하면서 사려 깊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인재로 보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거침없이 말하고 거침없이 웃었다. 그녀가 내는 아이디어들은 정말 참신했다. 여러 그룹의 토론을 들었지만 그녀의 것만큼 새롭고 혁신적인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자리에 어울릴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정부부처 산하의 공공기관에서 원하는 인재상은 내부 규율에 따라 맡은 바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녀는 광고 회사 같은 곳에서 자신의 개성과 끼를 마음껏 발산해야 할 인재였다.

 

사회 초년생들이 취업을 할 때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이 자리가 정말 나에게 맞는 자리인가?’를 여러 가지 면에서 검증하는 일이다막연한 환상이나 기대를 가지고 일과 일터를 대한다면 이내 실망감과 당혹감을 감추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검증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곳에서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또는 직간접적으로 일과 일터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눈높이를 맞추어 가다 보면 그 일이 자신에게 맞는 일인지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인턴사원으로 채용된 직원 중 다수가 수습기간을 채우기도 전에 그 자리를 떠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 속에서 혹시 마음 고생을 하지는 않을까? 더 좋은 보수를 제공하는 더 안정적인 곳에서 손을 내민다면 그들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까?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한 곡 있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1난 알아요에 수록된 환상 속의 그대. 벌써 20년 전에 발표된 노래 속의 환상 속의 그대가 혹시 그들이 아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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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시간이 멈추어 질순 없다 yo~!
무엇을 망설이나 되는 것은 단지 하나 뿐인데

바로 지금이 그대에게 유일한 순간이며
바로 여기가 단지 그대에게 유일한 장소이다

환상 속에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에 아직 그대가 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단지 그것 뿐인가 그대가 바라는 그것은
아무도 그대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나 둘 셋 let`s go~!
그대는 새로워야 한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고
새롭게 도전하자

그대의 환상 그대는 마음만 대단하다
그 마음은 위험하다
자신은 오직 꼭 잘 될 거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그대가 살고 있는 모습은 무엇 일까

환상 속에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에 아직 그대가 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세상은 yo~!빨리 돌아가고 있다
시간은 그대를 위해 멈추어 기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대의 머리 위로 뛰어 다니고
그대는 방 한구석에 앉아 쉽게 인생을 얘기하려 한다


환상 속에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에 아직 그대가 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필자 재키제동은 15년간의 직장 경력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경력 계발에 대해서 조언하는 커리어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재클린 캐네디의 삶의 주도성을 기반으로 김제동식 유머를 곁들인 글을 쓰고 싶은 소망을 담아 재키제동이란 필명으로 활동 중입니다. 블로그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꿈, 나의 인생 http://blog.naver.com/jackie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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