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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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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6일 20시 40분 등록

Moon river, wider than a mile                 달빛이 흐르는 드넓은 강

I'm crossing you in style some day         언젠가는 멋지게 그대를 건널겁니다

Oh, dream maker, you heart breaker      꿈을 꾸게 하는 그대, 무심한 그대

Wherever you're going,                         그대가 어디를 가든

I'm going your way                                난 그대를 따를겁니다

Two drifters, off to see the world           세상구경을 나선 두 나그네

There's such a lot of world to see          볼 것 많은 세상이지요

We're after the same rainbow's end,      우린 같은 무지개의 끝을 쫓고 있지요

waiting, round the bend                         미친 듯이 기다리며

My Huckleberry Friend,                          내 친구 허클베리

Moon River, and me                              달빛이 흐르는 강 그리고 나

 

노래처럼 달빛이 가득 찬 미시시피 강, 그 위로 뗏목 하나가 떠 있다. 그리고 뗏목 위로 달빛에 비친 검은 그림자는 둘이다. 허클베리 핀(허크)과 짐이었다. 짐은 도망친 검둥이 노예였다. 주인인 미스 왓슨이 그를 팔아버리겠다는 말만 하지 않았어도 짐은 도망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그녀의 성화가 견디기 힘들었어도 아내와 자식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노예상인이 다녀갔다. 차마 그 말을 엿듣지 말았어야 했다. 짐을 팔면 800달러 정도는 받을 것이라는 미스 왓슨의 말을 훔쳐듣고 짐은 더 이상 그 집에 머물 수 없었다. 미시시피 강 아래에서 흑인 노예는 사람이 아니었다. 필요하면 살 수 있고, 어려우면 팔려지는 쉬운 삶들일 뿐이었다.

 

짐의 탈출을 돕는 것처럼 보이는 허크도 사실은 도망자였다. 담배를 피우며 숲에서 지내던 시절은 행복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더 이상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아직 열 네 살이었던 허크는 더글라스 부인 댁에 입양되었다. 부인은 마음씨 좋은 사람이었고 늘 그를 위해 기도를 했다. 진심으로 허크를 훌륭하고 진실만을 말하는 예의바른 소년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허크는 이제 학교에 가야했고 책도 읽어야 했다. 주말마다 교회에 나가야 했고 찬송가도 불러야 했다. 목까지 채워지는 단추가 달린 셔츠와 딱딱한 구두는 답답했다. 하지만 그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돌아온 것이다. 그는 허크가 큰돈을 벌었다는 소문을 듣고, 아들이랍시고 찾아와 허크를 유괴했다. 아버지의 은신처는 미시시피 강의 가장자리 숲 어디쯤에 있었다. 허크는 더글라스 부인의 잔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되었지만 대신 아버지의 욕설과 매질을 참아내야 했다. 아버지는 양육권을 다시 찾기 위해서 싸우겠다며 늘 세상을 향해 고함을 지르고 분통을 터뜨렸다. 아버지는 거의 맨 정신일 때가 없었다. 가끔씩 총질과 낚시로 잡은 것들이 생기는 날이면 쪽배를 타고 마을로 나갔고, 그런 날엔 언제나 술에 취해 밤이 깊어서야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없는 사이 오두막은 밖에서 잠겨 있었다. 허크는 아버지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

 

때마침 유월이었다. 해마다 유월이면 미시시피의 강물이 불었다. 강물이 불어나면 평소에도 1마일은 족히 될 듯한 강폭은 수 마일도 더 넓게 보였다. 그날은 달빛이 유난히 좋았다. 달빛이 밝은 밤에 강은 대낮처럼 밝았다. 몇 백 미터 쯤 떨어져 상류로부터 떠내려 오는 유목들이며, 뿌리 채 뽑힌 나무들이 흘러가는 모습들이 고스란히 비쳤다. 허크와 짐은 불어난 강물 위로 떠내려 온 뗏목을 붙잡았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에는 강을 따라 내려갔고, 낮에는 강 가운데 숲에서 지냈다. 미시시피 강에는 그들을 숨겨줄만한 섬들이 숱하게 널려 있었다. 그들은 하루 종일 숨어서 뗏목과 거룻배가 미주리 강둑을 스치며 내려가고, 커다란 증기선이 강물과 씨름하며 상류로 거슬러 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떤 날에는 일곱 시간 내지 여덟 시간을 떠내려가기도 했다. 고기를 낚고, 이야기를 하며, 때로는 졸음을 쫓으려고 헤엄을 치기도 했다. 짐은 낮게 나는 새를 보고 폭우가 쏟아질 것을 알았고, 허크는 미시시피 강의 메기를 잘 낚았다. 어쩌다 별이 좋은 밤이면 뗏목 위에 반듯이 드러누워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기기도 했다. 그런 날은 왠지 농담도 할 수 없었고, 소리도 크게 지르지 못하였다.

 

짐은 카이로까지 갈 계획이었다. 카이로는 미주리 강이 미시시피 강을 만나고 다시 한참을 더 흘러서 오하이오 강과 하나 되는 곳에 있었다. 짐은 카이로에서 북동부에 있는 자유 주로 거슬러 오르는 증기선을 탈 생각이었다. 카이로에서는 도망친 노예 하나쯤 눈 여겨 보지 않을 것이라 들었고, 오하이오 강을 따라 올라가면 그곳 세상에서는 흑인들도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짐은 아직 젊고 건강했다. 공장에서 일자리 하나 얻은 일이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열심히 일하면 얼마쯤 돈을 모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아내와 자식을 돈을 주고 살 생각이었다. 아마 미스 왓슨이라면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혹시라도 이미 다른 사람에게 팔려갔거나 새로운 주인이 팔지 않겠다고 거절한다면 어찌할까. 짐은 그것도 생각해두었다. 밤에 노예를 구출해내는 일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다. 얼마쯤 돈이 생기면 그렇게라도 할 작정이었다. 미주리를 포함한 미시시피 강의 하류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일리노이 주까지만 잡히지 않고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면. 미시시피 강을 따라 오하이오 강을 거슬러 자유 주에 닿을 수 있다면... 다시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면... 담배 농장으로, 면화 농장으로 팔려갈 걱정 없이 함께 살 수만 있다면... 어느새 짐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가족이라곤 지겨운 술주정뱅이 아버지뿐인 허크의 눈에 짐의 눈물이 비쳤다. 열네 살 소년 허크의 눈에 비친 검둥이 짐의 눈물은 강물보다 더 깊게 흘러들었다.

‘아... 검둥이에게도 그리움이 있구나. 검둥이에게도 보고 싶은 자식이 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구나. 눈물을 흘리는 가슴이 있구나.’

그 순간 소년 허크의 마음이 흔들렸다. 허크에게 가족이란 등짝에 멍이 들도록 맞았던 채찍질로 새겨져 있었고, 언제든 떨쳐버리고 싶은 족쇄일 뿐이었다. 매일 아침 마을 앞 광장에서 사고 팔리던 노예들의 모습은 지금껏 허크에겐 그저 익숙하게 시작되던 하루풍경에 지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그들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또 다른 짐이라고 여겨본 적이 없었다. 노예의 자식은 당연히 노예가 되는 것이었고, 노예는 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었고, 사기도 팔기도 하는 것이었다. 자기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그래왔었고, 그것이 백인인 허크에게는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짐의 가족이라면... 아니 바로 짐이라면... 흔들리는 미시시피 강의 뗏목 위에서 허크는 자신이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생각했다.

 

그것이 불행이었는지 행운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세인트루이스를 지난 지 한참 시간이 흘렀으니 분명 카이로가 보여야 했다. 그런데 지독한 안개 속에서 지금껏 뗏목에 매어 있던 쪽배의 끈이 풀려지고 말았다. 모래사주의 버드나무 숲이 우거진 근처에서 허크를 실었던 쪽배가 안개 속으로 사라졌고, 뗏목 위에 남겨졌던 짐은 미시시피 강의 빠른 물살 속으로 빨려 들었다. 허크는 짐을 소리쳐 불렀다. 소리는 안개 속에 갇혀서 방향을 잃었다. 잠시 전 앞쪽에서 들리던 소리는 이제 뒤쪽에서 들렸고, 금방이라도 닿을 듯 했던 소리가 잠시 후에는 멀리서 희미해졌다. 분명 짐의 대답 같기도 하고, 짐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 같았지만 자욱한 안개 속에서 분간할 수 없었다. 짐이 아닌 다른 뗏목의 사공일지도 몰랐다. 안개 속에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고함소리 중간 중간에 이어지는 침묵이 허크를 괴롭혔다. 마침내 그 침묵이 소리보다 길게 이어졌고, 두려움의 사이사이를 끊던 허크의 고함소리도 잠겨들고 말았다.

 

지겨웠던 고향을 도망쳐왔지만, 짐은 질긴 족쇄 같은 인연이었다. 뗏목을 타고 벌써 수 백 마일쯤을 내려왔지만 인연의 고리는 여전히 강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 비록 미스 왓슨에게 이르지 않겠다고 짐과 약속을 했지만, 도망친 노예를 돕는 일은 명백히 미주리의 법을 어기는 일이었다. 고향에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지만, 만에 하나라도 착하고 친절한 미스 왓슨을 다시 보게 된다면, 그녀가 자신에게 왜 귀뜸 한 마디 해주지 않았느냐고 따져 묻는다면 허크는 할 말이 없었다. 검둥이 노예와의 약속 따위도 중요했지만 고아나 다름없는 자신을 성심껏 돕던 미스 왓슨의 눈빛을 저버릴 수도 없었다. 아주 가끔씩은 차라리 자신마저도 어찌하지 못하는 상황이 닥쳐오기를 은근히 기대하기도 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금 자신의 불편한 마음이 조금은 나아질 것이고, 짐에게나 미스 왓슨에게나 변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짐은 어찌될까. 아무리 미스 왓슨이 친절한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세상은 한번 도망쳤다 붙잡혀 온 노예에게 결코 관대하지 않았다. 더러는 목을 매달아 교수형에 처하거나 심한 채찍질로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도망친 노예에게는 현상금이 붙었다. 그들을 붙잡아 한 몫 챙기려는 사냥꾼들은 세상 곳곳에 있었고 그들은 주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었다. 차라리 안개 속에서 짐을 잃어버린 일이 잘 된 일인지도 몰랐다. 이제 짐과 그의 가족들의 운명은 자신의 책임을 빗겨지나갔다. 어쩌면 이제 더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짐을 덜어버린 듯 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허크의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해졌다. 하지만 안개 속에서 헤매던 몸은 물을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잠시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눈을 뜨자 별이 보였고, 어느새 안개는 깨끗이 걷혀 있었다. 허크의 배는 고물을 앞으로 향한 채 여전히 떠내려가고 있었다. 멀리 하류 쪽에서 물 위에 뜬 검은 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놓쳐 버렸던 뗏목이었다. 노를 저어 가까이 다가가자 짐이 보였다. 짐은 오른 팔을 노에 얹은 채로 머리를 무릎 사이에 깊이 파묻고 졸고 있었다. 다른 노 하나는 부셔져 있었고, 뗏목은 이곳저곳 깊은 상처들이 남겨져 있었다. 허크는 다시 뗏목 위로 올라탔다. 짐을 더 이상 혼자 내버려둘 수 없었다.

 

날이 훤하게 밝아오자 시야가 트이고, 강물이 보였다. 둑 근처에는 오하이오 강의 맑은 물이 흐르고 있고, 건너편에는 미시시피 강의 탁류가 흘렀다. 우려했던 대로였다. 카이로는 오하이오 강과 미시시피 강이 만나는 곳에 있어야 했다. 허크가 안개 속에서 짐을 잃었을 때, 뗏목이 카이로를 지나쳤던 것이다.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얼마를 흘러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목적지였던 카이로를 지나친 것만은 분명했다. 어찌해야 할까. 난감했다. 그렇지만 허크와 짐은 당장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미시시피 강은 하류로 내려갈수록 남부의 노예 주들 속으로 점점 더 깊이 흘러들어 갔다. 뗏목으로는 강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었고, 대낮에 강둑으로 상륙해서 사람들의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기회를 보기로 했다.

 

미시시피의 강물을 따라가던 허크와 짐은 어찌되었을까. 합류지점을 한참 지나고도 오하이오의 강과 미시시피의 강은 쉽게 섞이지 못했다. 대륙이 생기던 처음부터 북부와 남부의 기질이 서로 달라 그런 것이라는 둥... 어쩌면 한판 큰 싸움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는 둥... 강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멕시코 만으로 흘러 마침내 대서양으로 이어지는 증기선을 몰았던 미시시피 강의 수로 안내인들은 알았다. 몸살을 치던 두 강줄기도 결국 어디쯤에서 하나로 섞이게 된다는 것을. 그들은 손바닥 들여다보듯 강을 잘 알았고, 달도 뜨지 않고 별빛조차 없는 어둠 속에서도 암초를 피해 배를 몰았다. 어쩌면 그들 중 누구 하나쯤은 허크와 짐의 뗏목이 어디까지 흘러가게 될지 그리고 그들의 여행이 어떻게 이어지게 될지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1861년 마침내 전쟁이 터졌다. 노예제 문제로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던 남부와 북부 사이에 고름이 터진 것이다. 목화와 담배를 주로 재배했던 남부의 대농장주들은 노예제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다. 남부의 주들은 노예폐지론을 주장했던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연방을 탈퇴하여 새로운 연대로 북부에 맞섰다. 1862년 9월 링컨이 노예해방선언을 선포했다. 반란상태에 있는 노예들이 모두 자유를 얻었고, 해방된 흑인들은 폭력대신 적절한 임금으로 성실히 일하는 시민이 될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연방의 군대에 들어갈 기회가 제공되었다. 18만 명의 흑인들이 북군에 가담하여 푸른 색 양키군복을 입고 손에 총을 들었다.

 

1864년 대통령 재선을 위한 선거운동에서 링컨은 노예제의 완전한 폐지를 위한 헌법 수정을 피력했다. 이듬 해 4월 14일 링컨은 암살당했지만, 수정법안은 의회를 통과했다. 그리고 연방의 각 주에서 수정안이 차례로 비준되었다. 그리고 12월 조지아 주가 노예제 폐지를 수락함으로써 헌법 수정에 필요한 4분의 3선을 넘기게 되었다. 36개 주중 27개 주가 비준을 마치게 된 것이다. 1865년 국무장관 윌리엄 헨리 수어드가 마침내 미국과 그 영토 내에서 노예제가 폐지되었음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4만 명의 노예들이 남아 있던 켄터키 주는 오랫동안 비준을 거부하다가 1976년에 이르러서야 허가하였다. 델라웨어 주는 1901년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시시피 주가 비준을 마친 것은 1995년이었다. 21세기가 시작되기 직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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