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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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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3일 20시 23분 등록

어딘가에 무엇이 감추어져 있다면, 가서 찾아라.

가서, 그 경계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살펴라.

경계의 밖에 무엇인가 감춰진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떠나라.

- 루디야드 키플링 <탐험가, The explorer>

 

1925년 5월 어느 날이었다. 포셋은 싱구 강이 바라다 보이는 지점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날씨가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야영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막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원시의 강은 무거웠다. 강은 어두운 녹색의 저편에서 굽어져 흘러와서 아나콘다의 허리같이 미끄러져 다시 밀림 속으로 사라졌다.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저 강을 따라가면 아마존의 본류와 닿을 것이다. 그리고 대서양으로 이어진 뱃길을 따라가면 영국의 리버풀로 돌아갈 수 있었다. 문명의 세계는 바다 건너편에 있었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잠시 두고 온 아내 생각을 했다. 반드시 돌아가겠다는 호언장담을 하고 큰아들 잭까지 동행하고 나선 탐험이었다. 그렇지만 아마존의 밀림 속에서 자신의 운명은 이미 신의 손에 맡겨져 있었다. 성공이든 실패든 도전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당신은 전설의 그 도시를 찾을 겁니다.”

 

언젠가 만났던 인디오 주술사의 말이었다. 주술사는 포셋이 전설의 도시를 찾는 대신 결국 원주민들의 포로가 될 것이라고 했다. 포셋은 그의 예언을 믿었다. 자신이 포로가 되어 문명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할지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과도 바꿀만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자신은 아마존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몰랐다. 그의 눈이 싱구 강 너머 상류의 밀림을 응시했다. 강 건너편으로 야생포도나무 숲이 늘어서 있었다. 우기가 지났지만 싱구 강 지류의 강물은 아직 깊고, 흐름이 빨랐다. 내일 아침이면 일행은 저 포도나무 숲을 지나 원주민들이 ‘빡빡한 밀림’이라 부르는 마투그로수의 심장으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포셋은 잭과 롤리에게 야영준비를 시키고, 모닥불을 준비했다. 이제 곧 아마존에 어둠이 내릴 것이다.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갇히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갑자기 밀림 저편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날아들었다. 높게 갈라진 음산한 소리는 밀림 속에서 이미 익숙해진 소리였다. 해질녘이면 아마존 밀림의 ‘짖는 원숭이’들은 신음소리에 가까운 울음소리를 냈다. 그것들은 마치 악령들이 내는 울음소리처럼 기분 나쁘게 다가들곤 했다. 포셋은 그 소리가 마치 아마존의 물길을 따라 들어갔다 살아 돌아오지 못한 자들의 영혼같이 느껴졌다. 얼마나 많은 문명의 발길들이 아마존 강을 따라 들어갔던가. 살아 돌아온 목숨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사지에서 돌아온 자들은 자신들이 본 것과 들은 것들을 잘 구분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눈으로 세상을 봤고, 자신들이 믿고 싶은 대로 믿었다.

 

포셋은 런던의 왕립지리학회의 서고와 브라질의 국립박물관을 오가며 일찍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탐험가들과 선교사들이 남겨둔 기록들을 찾아 읽었었다. 1492년 콜럼버스가 미지의 대륙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그는 그 땅이 인도라고 믿었다. 그 후로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인디오라고 불렸다. 아마존도 그랬다. 1500년 콜럼버스와 함께 탐험에 나섰던 산타 마리아호의 선장 핀 존은 브라질 해협근처에서 아마존의 하구를 처음 보았다. 아마도 그는 강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넓은 이 강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고민했던 모양이다. ‘단맛이 나는 바다’(Mar Dulce, 마르 둘세)라고 불렀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 이름은 오래가지 못했다. 1542년 6월 도미니크의 수도사인 카르바할은 아마존 여전사들을 직접 보았다고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녀들은 거의 나체였고, 은밀한 부분은 활과 손에 든 화살로 겨우 가리고 있었다고 했으며, 인디오 남자 10명보다도 잘 싸웠다고 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아마존 여전사들과의 격렬한 전투에서 그녀들이 쏜 화살에 한쪽 눈을 잃었다고까지 했다. 바다 건너 사람들은 그 말을 가감 없이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곧 바로 먼 옛날 헤라클레스가 무찔렀다는 ‘젖이 없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떠올렸고, 나그네들의 입에서 떠돌던 소문을 기억해냈다. 그들은 이 땅이 세상의 끄트머리에 존재한다던 여인들의 왕국, 아마존이라고 믿었다. 믿음은 실제와 상관없이 사실로 굳어졌고, 사람들은 그 밀림속의 강을 아마존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한참동안 아마존 땅을 찾아 헤매던 이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본 원주민 여인들의 모습에서 아마존의 자취를 찾으려했다. 아마존은 그렇게 문명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전설은 종종 현실이 되기도 했다. ‘엘도라도’ 또한 그렇게 태어났다. 스페인 궁정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부둣가의 선술집에서 밤새 부풀려졌다. 술꾼들의 입에서 창녀들의 귀로 흘러간 소문들이 다음 날이면 또 다른 사내들의 입을 통해 떠벌려졌다. 왕은 소위 탐험가들이라 자칭하는 자들의 말을 고지대로 믿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미지의 대륙에 자신들의 욕망을 더하고 상상을 보태는 것조차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미 좁아져 버린 대륙의 나라들 간의 경쟁이 사내들을 부추겼다. 마력 같은 아마존에 이끌린 그들은 대서양을 건너는 배로 몰려들었다.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는 아마존의 지류 오리노코 강 어디쯤에 있을 거라 여겨졌다. 그 도시의 사람들은 태양을 숭배했다고 했다. 도시에는 황금이 넘쳐났으며 그들의 왕은 발가벗은 몸에 황금가루를 바르고 태양을 맞았다. 의식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왕은 ‘구아타비타’라고 불리는 호수 가운데에서 몸을 씻었다. 원주민들은 온갖 보석과 금으로 만든 귀한 물건들을 호수에 던졌다. 그런 일들이 매일 반복된다고 했다. 얼마나 많은 황금이 있고, 또 얼마나 많은 보석들이 호수 밑바닥에 잠겨있을까. 황금에 굶주린 자들에게 엘도라도는 기회의 땅이었다.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이런 소문을 이미 알고 있었다. 1539년 그의 이복동생 곤살로 피사로는 엘도라도를 찾아 페루의 키토에서 안데스 산맥을 넘었고, 그 이듬해에는 그의 부하들이 아마존 강을 따라가기도 했다. 행렬의 선두에는 350명의 병사들이 섰고, 2천 마리의 사냥개들이 뒤따랐다. 사나운 개들은 원주민들을 공격하기 위한 특별훈련을 받은 사냥개들이었다. 그 뒤를 4천명의 원주민들이 짐을 졌고, 2천 마리의 돼지들이 끌려갔다. 그리고 몇몇의 선교사들이 동행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엘도라도를 찾을 수 없었다. 풍요를 찾아 탐욕에 눈 먼 자들은 황금의 도시 대신 지옥의 문턱을 밟아야 했다. 부하들의 최후는 잔인했다. 어두운 밀림 속에서 소리도 없이 날아든 독화살에 허망하게 죽어갔고, 밤이면 밀림의 온갖 벌레들이 그들의 땀 냄새를 쫒아 피를 빨았다. 굶주린 육체에서는 구더기들이 들끓었고, 상처에서 흐르는 피 냄새를 맡은 피라니아의 이빨 속에서 그들의 영혼은 갈기갈기 찢겨졌다. 두려움이 악마를 불렀고, 분노는 또 다른 희생을 불러왔다. 길 안내와 짐을 나르던 원주민들은 이미 절반이 목숨을 잃었지만 남겨진 이들조차 개의 먹이로 던져졌고, 산채로 불태워졌다. 그들의 죽음에 신의 가호가 함께 했다. 그런데도 욕망의 불길은 꺼지지 않았고, 발길은 계속 이어졌다. 수세기가 지날 때까지 지도에는 여전히 엘도라도와 구아타비타 호수가 남겨져 있었다. 그리고 전설 속의 황금의 도시는 여전히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을 불러 들러 들였다. 아마존은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처럼 입을 벌렸고, 그 물길을 거슬러 온 수많은 욕망들을 삼켰다. 그들 대부분이 사라지고 말았다.

 

모닥불이 피어올랐다. 어둠이 한 걸음 밀려나면서 두려움도 멀어졌다. 두려움은 늘 그렇게 어둠 속에서 시작됐다. 불길은 따뜻했다. 이제 막 옮겨 붙은 불길이 검붉은 혓바닥처럼 나무토막을 핥아 오르고 있었다. 탐욕스러웠다. 포셋은 지도를 꺼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자신의 탐험은 정당한가. 콜럼버스 이래로 벌써 수 세기를 거치면서 문명은 이 처녀림을 탐해왔다.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자신의 모국이기도 한 영국까지도. 나라의 이름을 달리했지만 쇠락한 노인 같은 유럽은 자신의 젊음을 원시의 신대륙에서 채우려 했다. 그 욕망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 이르러 극에 달했고, 왕립지리학회가 그 선봉에 있었다. 포셋 역시도 지리학회의 회원이었다. 왕립 지리학회가 파견한 탐험대들은 세계 각지의 오지를 찾아다녔다. 탐험대들은 유물들을 수집했고, 표본들을 채집했으며, 매장된 지하자원들이 찾아 지도를 그렸다. 그리고 그 땅에 영국 깃발을 꽂는 일도 잊지 않았다. 아프리카에서 중앙아시아로 때론 갈라파고스 섬에서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 정상에 이르기까지 탐험대들의 발길은 20세기에 들어서도 멈추지 않았고, 자신도 그들 중 하나였다. 젖은 종려나무 잎에서 풍겨 나온 연기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 허공 속으로 흩어졌다. 포셋의 눈길이 연기를 쫓아갔다.

 

포병장교 출신이었던 포셋이 런던에 있던 왕립 지리학회를 찾은 건 1900년 2월이었다. 가난 때문에 사관학교를 진학했지만 군인의 삶은 지루했다. 포셋은 늘 새로운 무엇인가를 찾아 떠나는 꿈을 꾸곤 했었다. 그 꿈이 젊은 포셋으로 하여금 왕립 지리학회를 찾아가게 했다. 당시 세상은 미지의 세계를 찾아 떠나려는 젊은이들을 필요로 했다. 포셋은 그곳에서 탐험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배웠다. 기본적인 식물학, 지질학, 기상학과 인류학에 관한 것들부터 독초와 약초를 구분하고, 짐승들의 습격을 피하는 법과 위기의 순간에 대원들을 용의주도하게 통솔하는 법까지. 이미 70년의 세월을 통해 왕립지리학회가 가진 경험은 무궁무진했다. 1년의 과정을 마치고 처음 임무를 맡은 곳은 모로코였다. 그 때의 모로코는 영국과 러시아가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던 지역이었다. 포셋은 모로코의 정세와 수도로 통하는 주요 사막의 경로들을 정밀하게 탐색했다. 포셋이 작성한 보고서는 모로코 지배를 꿈꾸던 영국 정부의 입맛에 딱 들어맞았고, 호시탐탐 아마존 유역으로 진출을 노리던 영국정부는 너무도 당연하게 포셋을 선택했다. 포셋은 누구보다 적임자였다. 이정표 하나 없는 사막의 지리를 손바닥처럼 그려낸 자라면 밀림의 숲에서도 해낼 수 있을 것이었다. 포셋에게는 둘째 아이를 임신한 아내와 이제 겨우 세 살이 된 아들 잭이 있었지만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심장이 먼저 알았다. 그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다. 1906년, 아마존과의 인연이 그렇게 시작됐다.

 

지도는 어쩌면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는 위대한 산물인지도 몰랐다. 얼마나 많은 탐험가들의 희생이 담겨진 것이던가. 지금 포셋의 손에 들린 지도 한 장도 숱한 시행착오와 오류를 겪으며 그려진 것이었다. 포셋은 잘 알고 있었다. 한때 파라과이, 브라질, 볼리비아,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의 국경선을 구분 짓기 위해 자신도 직접 몸담았던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눈에 보이는 지도의 앞면에 불과했다. 문명의 저편에 남겨진 것들은 더욱 참혹했다. 그런 것들은 지도에 새겨지지 않았다. 아마존 유역의 국가들이 1864년 국경분쟁을 벌였다. 단순한 국가의 경계를 구분 지으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고무나무를 둘러싼 갈등이었다. 그 추악한 전쟁에서 파라과이의 인구 절반이 희생되었다. 뿐만 아니었다. 아마존의 열대우림은 굶주린 고무사업가들에 의해 유린당했다. 고무는 ‘검은 금’이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고무나무를 찾아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 지구의 허리띠라 불리는 아마존의 중류까지 뱃길이 이어졌고, 고무처럼 검은 빛깔을 띤 네그루 강과 아마존 본류가 만나는 곳으로 사람들이 파리처럼 끓었다. 마을은 도시로 커져갔다. 마나우스는 풍요를 지닌 원시 밀림으로 들어가는 전초기지로 변해갔고, 아마존 밀림에서 얻어진 고무를 싣고 바다를 건넌 배들은 여자와 은행가들을 싣고 돌아왔다. 한때 마나우스에는 오페라하우스가 지어지기도 했다. 지도상에는 남아 있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왕립 지리학회는 이번 탐사에 소극적이었다. 미국의 북아메리카신문연합과 지리학회의 후원 소식에 놀라 비록 뒤늦게 지원을 약속했지만, 또 다른 이유들이 있었다. 겉으로는 1차 대전 이후 재정형편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포셋은 왕립지리학회가 말하지 못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아마존에는 돈이 되어줄만한 것들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찾으려는 고대문명의 도시는 더는 궁핍해진 영국정부의 입맛을 채워주지 못했다. 그동안 막대한 이득을 가져가 주었던 브라질의 고무 산업은 이미 사향 길에 접어든지 오래였고, 아마존의 밀림은 황폐화 된 채로 남겨졌다. 영국은 이미 1800년대 중반부터 아마존 유역에서 번성하고 있던 고무나무를 주목해왔다. 그래서 아마존 유역의 지도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왕립 지리학회를 앞세워 밀림 속을 헤집고 다녔고, 탐사대들은 영국으로 돌아올 때마다 고무나무 종자를 밀반출했다. 고무나무 종자들은 영국의 또 다른 식민지에 보급됐다. 혹독한 기후환경에 맞서야 하는 아마존 밀림에서보다 말레이시아에서 재배되는 고무는 생산량도 많고 투자비도 적게 들었다. 욕망을 채워주지 못하는 땅에 더는 관심은 머물지 않았다. 문명의 사랑과 관심은 그렇게 허기지고, 추한 것이었다.

 

버려진 아마존은 비참했다. 뱃길은 뜸해졌고, 밀림 한 복판을 꿰뚫겠다고 시작한 철도는 더는 뻗어 나가지 못했다. 사람이 떠난 도시들은 유령들의 차지가 되었다. 떠들썩했던 술꾼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자리엔 굶주린 원주민들의 쾌쾌한 눈빛이 대신 머물렀다. 한 눈에 봐도 병색이 완연했다. 그들 대부분은 밀림 이곳저곳을 헤집고 돌아다니던 노예사냥꾼들에 의해 끌려온 이들이었다. 고무 사업이 한창이었던 시절, 그들은 하루 종일 굶주린 채로 일했다. 저녁이 되어 지친 몸으로 돌아오면 겨우 허기를 채우고 화로가에 앉을 수 있었다. 채취한 고무액을 부어가며 고무 꼬챙이를 만들며 밤늦게까지 독한 연기를 마셔야 했다. 대부분이 반년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반항하거나 도망치다 잡힌 자들에게는 더 잔인한 대가가 주어졌다. 몸에 기름을 부어 화형을 시키거나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아 손과 발에 못을 박기도 했다. 심지어는 원주민 여인들을 집단으로 가두어 두고 낯선 손님들을 받게 했다. 그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자라는 대로 고무농장에서 일하게 했다. 그것이 포셋이 아마존에서 본 문명이었다. 포셋은 아마존 탐사 내내 그런 흔적들과 너무 자주 부딪쳐왔다. 밀림 속에서는 양심도 존재하지 않았고, 신도 눈을 감고 외면했다. 법은 멀었고, 채찍과 가슴을 겨눈 총구는 늘 가까이에 있었다. 아마존을 지키던 여전사들도 진즉에 사라진 땅에서 더는 원주민들을 지켜주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포셋은 그 눈빛들을 잊을 수 없었다. 부끄러웠다. 자신으로 하여금 문명에 대한 회의가 들게 했던 순간들이었다.

 

불길에 속까지 벌겋게 타오른 종려나무가 무너져 내리며, 붉은 별빛들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피곤한 듯 잭과 롤리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이 벌써 바케리 포스트에서 동쪽으로 칼라파로 족 사람들을 떠나 온지 닷새 째였다. 이제 며칠 후면 ‘잃어버린 도시 Z’에 닿을 것이다. 얼마나 기다려왔던 순간이던가. 반년의 시간을 들여 자신이 브라질 국립박물관의 지하서고에서 찾아냈던 보고서. 반데리 란테의 보고서대로라면, 그곳은 폭이 10마일에 이르는 계곡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계곡의 중앙 약간 높은 둔덕 위에 자리 잡은 도시는 돌로 포장된 길로 연결되어 있고, 길을 따라 낮은 가옥들이 이어져 있으며, 도시의 한 가운데는 하늘에 닿을 듯 높은 피라미드 모양의 사원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고대 문명의 흔적은 그리스의 신전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들에 버금가는 그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맨허튼을 떠나오면서 호보켄의 부둣가에서 ‘반드시 돌아 오겠다’는 다짐과 함께 기자들에게 남겼던 말이기도 했다. 세상의 질문에 모든 것을 다 답할 수는 없었지만, 거대한 발견을 목전에 둔 포셋은 지금 이 순간, 스스로에게 수많은 질문들을 쏟아놓고 있었다. 그것들은 지난 20년 내내 자신에게 물어왔던 질문들이기도 했다. 만약 내일이라도 ‘잃어버린 도시’를 찾아낸다면, 그것이 이 대륙에 대한 유럽인들의 오만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 지금껏 자신이 아마존의 곳곳에서 보아왔던 문명이라는 이름의 끝없는 욕망을 끝낼 수 있을까. 최소한 인종적 우월감에 빠져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노예사냥을 하고, 신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은 더 이상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포셋은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다만 아직도 모를 질문 하나가 고개를 수그릴 줄 몰랐다. 나는 왜 여기에 왔는가. 아마존은 왜 나를 선택했을까.

 

갑자기 밀림 저편에서 바람이 불었다. 어두운 숲속 너머에서 무언가 조심스러운 움직임이 느껴졌다. 짐승의 발자국은 아닌 듯싶었다. 곁에 둔 총을 잡아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어둠을 가르고 지나갔다.  놀란 모닥불이 움츠러드는 듯싶더니 이내 사그러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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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셋(Percy H. Fawcett)이 찾아 나섰던 ‘잃어버린 도시 Z’는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해도 포셋은 아마존의 어두운 밀림 저편에 ‘잃어버린 도시’의 존재를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그것을 찾았을까. 그건 모를 일이다. 포셋 일행이 아마존 밀림에서 실종된 이후로 또 다른 수많은 탐험대들이 그를 찾아 혹은 그가 찾던 ‘잃어버린 도시’를 좇아 아마존으로 향했다. 그러나 대부분이 돌아오지 못했다. 다만 수많은 소문들이 나돌았다. 포셋 일행이 인질로 잡혀 있는 걸 목격했다는 말도 있었고, 포셋의 아들로 보이는 백인 소년을 봤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더러 어떤 이들은 포셋이 문명으로 되돌아가길 거부하고 은둔생활을 한다고도 했다. 그렇지만 아무 것도 사실로 확인된 것은 없었다. 포셋의 둘째 아들 브라이언은 경비행기를 타고 아마존 밀림위로 수천 장의 전단지를 뿌려보기도 했지만 아무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실종이 길어지고 실종된 포셋을 찾아내려는 사람들의 사망과 실종이 뒤따를수록 세상의 이목은 더 쏠렸다. 어떤 자들은 그 틈을 타고 소설 같은 이야기를 지어내거나 영화로 만들어 인기를 누리고 돈벌이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실종처럼 그가 자신에게 던졌던 의문들은 여전히 남았다.

원시의 강은 풍요로웠지만, 문명의 허기를 채우기에는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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