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연구원의

변화경영연구소의

  • 진철
  • 조회 수 3583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4년 10월 24일 20시 27분 등록

연어, 강물 냄새가 난다.

-안도현의 <연어>, 1996

 

가을비가 지나간 산들은 빠르게 붉어갔다. 열정의 계절 끝에서 죽음을 감지한 빛깔은 원색의 ‘유혹’이었다. 시월도 가파른 중순의 고비를 넘어서자, 머리부터 시작된 불길은 순식간에 산자락 아래까지 삼켰다. 본능, 본능에 의해 이끌리는 힘이 아니라면, 살아있는 것들이 저 향연 너머에서 기다리는 죽음을 향해 이렇게 무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노랗고 붉은 주검들을 머금은 강물은 골짜기 상류부터 흔들렸다. 때가 된 것이다. 강은 이제 기억의 저편에서 건져 올린 숭엄한 의식을 준비하고 있다. 떠남과 돌아옴, 그리고 사랑의 절정에서 맛본 희열과 맞바꾼 죽음과 잉태, 그들의 부모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강은 되풀이 되는 운명의 순간을 맞고 있다. 연어들이 돌아오고 있다. 급한 여울목에서 강물은 요란스럽게 들뜨기 시작했다.

 

청어목 연어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 연어. 민물에서 태어난 뒤 바다로 나가 일생의 대부분을 보내고, 모천회귀성이 있어서 반드시 부화되어 자라던 하천으로 돌아옴. 다 자라면 어른의 팔뚝보다 더 큼. 바다에서는 몸빛이 등은 암청색, 옆은 은백색이지만, 산란기에 하천을 거슬러 올라오면 몸 전체가 거무스름해지며 검정·노랑·분홍·보라가 섞인 불규칙한 줄무늬가 나타남. 특히 수컷 주둥이의 끝은 아래쪽으로 아래턱은 위쪽으로 굽고 양턱의 이가 강해지며 예민해짐. 수심이 얕고 잔잔한 강 상류 쪽에 터를 잡아 산란하는데, 오렌지색을 띄는 알은 한 배에 약 3천개 정도, 암수 모두는 산란 직후 죽음. 세찬 물살과 소용돌이를 거슬러 오르며 때로 3미터정도 되는 폭포를 넘기도 함. 강을 거슬러 오르는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음. 일본 열도에서 캘리포니아까지 북태평양과 북아메리카에 걸쳐 널리 분포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동해로 흐르는 하천으로 회귀함.

 

나는 연어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냈지만, 단 한 줄의 글도 쓸 수가 없었다. 상상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지식이란 참으로 허망한 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우연하게 한 장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거대한 보잉 747 여객기가 물속에 잠겨 있는, 좀 슬픈 사진이었다. …… 아아, 그런데 그것은 추락한 비행기가 아니라 강물을 힘차게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무리였다. 연어 떼, 수백 마리의 연어가 하나의 편대를 이루어, 알을 낳기 위해 상류로, 상류로 진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1)

 

작가 안도현은 1996년 어른들을 위한 동화, <연어>를 발표했다. 이름이 알려진 시인이기도 했지만, 맑은 시의 언어가 흐르는 초록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는 지난 2007년 이미 100쇄를 넘겼고, 지금까지 약 120만부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낚싯대 한 번 잡지 않고, 연어 한 마리 죽이지 않고서도 이만한 장사를 할 수 있다면, 어느 어부인들 시인이 부럽지 않겠는가. 이런 성과에 놀란 것은 출판사만이 아니었다. 때 마침 불어 닥친 경제 한파는 다 자란 어른들에게도 동화가 필요한 세상임을 일깨워줬다. 그러나 <연어>는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듣던 귀신도, 침대 머리맡에서 아빠가 들려주던 왕자님과의 결혼으로 행복해지는 공주 이야기도 아니다. <연어>의 주인공들은 연어다. ‘별종’으로 태어나 유달리 남다른 몸빛을 지니고 살아가는 ‘은빛연어’와 그를 사랑하는 ‘눈맑은연어’ 그리고 강을 거슬러 오르는 그들의 무리에 관한 이야기다. 그들은 알라스카의 먼 바다를 헤엄쳐 왔고, 이제 눈앞의 초록강을 거슬러 오르기 위해 하구로 모여들었다.

 

강은 몸살을 앓고 있었다. 낙동강 페놀 사고로 시작한 90년대, 구미공단에서 흘러든 독극물 페놀 때문에 대구와 부산지역 수돗물 공급이 중단됐다. 93년 광주천이 흘러드는 지점에서 수질기준 5등급을 넘겨 영산강의 수질은 전국에서 최악2)이었고, 시화공단의 하류에서 공장폐수로 오염된 시화호는 일찌감치 썩어갔다. 중랑천에서는 잉어들이 죽었고, 태화강에서는 숭어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언론사들의 보도가 나면, 정부가 해명과 개선 대책을 발표했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물고기들의 죽음은 반복됐다. 강은 더 이상 ‘풍요를 주고 기적을 낳던 젖줄’이 아니었다. 울산의 태화강도 마찬가지였다.

 

4천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숙원의 부귀를 마련하기 위해 우리는 이곳 울산을 찾아 여기에 산업도시를 건설하기로 했다. …… 제2차 산업의 우렁찬 수레소리가 동해를 진동하고 공업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나갈 때……

 

울산은 공업도시다. 1962년 2월 3일,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었던 육군대장 박정희,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을 찾아 남긴 치사처럼 그의 목소리는 황무지 같던 땅에 카랑카랑하게 울려 퍼졌다. 바람은 수 십 년을 흐르며 세상을 바꿔 놓았다. 그의 말처럼 울산은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사업을 아우르며 대한민국 굴지의 중공업 산업도시로 군림했고, 대한민국을 수출강국으로 성장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인구 8만 5천의 작은 어촌이 현재는 110만 명을 넘어선 광역도시로 성장했다. 가히 놀라운 신화라 불릴 만했다. 그러나 잃어야 할 것도 있었다. 공장의 굴뚝에서 쏟아지던 연기들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시가지로 숨어들었고, 숨이 막히는 울산의 공기는 악명이 높았다. 태화강도 마찬가지였다. 수달이 사라졌고, 연어와 은어는 돌아오지 않았다.

 

여태껏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아주 이상한 냄새가 난다. 그 새로운 냄새는 웬일인지 낯설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언젠가 몸속을 적시고 간 아련한 추억의 냄새, 그런 게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일까?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의 속살 깊은 곳에 숨어 있었을 것 같은 냄새. 아니면 아버지의 냄새가 이런 것일까? 연어들은 조금씩 흥분을 하기 시작한다. 비로소 초록강이 가까워졌다는 뜻인가? 3)

 

연어들이 강을 거슬러 올랐다. 아무 것도 먹지 않았고, 뒤돌아 볼 여유도 없었다. 자신들이 태어난 상류로 거슬러 올라 짝을 짓고, 오로지 알을 낳을 생각뿐이었다. 그런 연어 무리들 속에서 은빛연어는 확실히 별종이었다. 몸의 빛깔 때문에 그의 무리는 쉽게 적들의 표적이 되었다. 늘 조심해야 했지만 빛나는 색깔을 바꿀 수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연어가 왜 물 속에서만 살아야 하고’, ‘왜 강을 거슬러 올라야 하는지.’ 알을 낳거나 먹고 사는 것 말고도 살아야 할 다른 이유를 묻고 생각했다. 그런 은빛연어에게 돌아올 것은 뻔했다. 동료들은 은빛연어를 비난하고 조롱했다. 그러던 그에게 눈맑은연어의 사랑과 초록강의 가르침은 ‘연어의 길’을 찾아가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눈맑은연어는 불곰의 공격을 받았을 때, 그를 대신해서 상처를 입었다. 초록강은 때때로 가슴을 열어 하늘의 별을 보여주었고,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갑자기 회의가 소집되었다. 초록강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무리의 전체회의였다. 은빛연어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던 거대한 물줄기 속에서 찬란한 무지개를 본 직후의 일이었다. 신비로운 장관이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연어 무리에게 커다란 위협이기도 했다. 턱큰연어의 사회로 진행된 회의에서는 다양한 발언들이 쏟아졌다. 빼빼마른연어는 폭포라고 불리는 장애물의 상태와 연어 무리의 현황을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며 분석했다. 그러나 폭포를 오를 방법을 묻는 질문에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면서 자리를 피했다. 주둥이큰연어의 장황한 연설은 눈앞에 닥친 시련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지만 연어들의 마음을 울리지는 못했다. 수많은 지식을 자랑하는 지느러미긴연어도 연단에 올랐다. 바다에서 강으로 이동해오던 연어들을 가르쳤던 그는 등이굽은연어를 지적했다. 자신의 삶을 지키지 못한 나약함을 극복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연어가 되어야 한다며 목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쪽집게연어가 앞으로 나섰다. 앞날을 내다보는 힘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그는 이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라고 설명했다. 연어들이 알을 낳을 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있어서 턱큰연어는 구체적인 해답을 원했지만, 쪽집게연어는 눈을 지그시 감고 말았다. 그때 빼빼마른연어가 돌아왔다. 그는 연어들을 위해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쉬운 길을 찾아냈다. 자신이 직접 그 길을 다녀옴으로써 그 길의 안전을 입증했으나, 안타깝게도 그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선택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은월봉 발치 아래서 태화강은 크게 굽이쳤다. 건너편 강물이 닿는 언저리를 따라 대숲은 십리를 뻗어나갔다. 바다냄새를 품은 바람이 대숲에서 길을 잃곤 했다. 잎새에서 갈라진 소리가 파도마냥 일어섰다 가라앉으면서, 대숲은 마치 바다인 것처럼 크게 출렁거렸다. 물길은 이제 거칠 것이 없었다. 삼호교가 놓인 상류부터 공단들이 자리한 하류까지, 지난 십여 년 동안 많은 일들을 겪어낸 태화강이었다. 언양과 방어진 그리고 굴화, 세 곳에 하수처리장이 새로 들어섰고, 백리 태화강 물길보다 열배나 되는 하수관들이 시가지 구석구석까지 연결되었다. 강바닥에 수십 년간 쌓였던 체증 같던 오염된 펄 흙과 쓰레기들이 걷혀졌다. 9천억에 가까운 예산과 울산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제 더 이상 강에는 더러운 물이 흘러들지 않았다. 그리고 태화강 하류에 19년 동안 물길을 막아왔던 방사보가 헐렸다. 울산항으로 흘러드는 모래를 막기 위해 설치했던 보는 수질악화와 홍수위험 그리고 물고기들의 이동을 막고 있어 줄곧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었다. 생활하수를 잡고, 바닥의 쓰레기들을 치워내자 강이 숨을 쉬기 시작했다. 더 많은 산소를 들여 마신 물빛은 맑고 푸른색을 되찾아갔다.

 

마침내 연어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2003년 발견된 다섯 마리는 열다섯 마리, 예순일곱 마리로 해마다 늘어나더니, 2013년 가을에는 1788마리가 확인되었다. 상류 쪽 삼호교에서는 2000년부터 매년 봄 새끼 연어를 방류했고, 연어들은 이제 ‘연어의 길’을 잃지 않고 찾아왔다. 생명력을 다시 얻은 강, 연어와 은어가 돌아오고 수달을 다시 품어 안은 태화강. 시인이 꿈꾸던 세상에는 십년이 지나고 강산이 또 한 번 바뀌는 시간이 흘러 그림 같은 강이 흘렀다. 시인은 묻는다. 잔잔한 목소리를 가진 작가는 초록강의 입을 빌어 사춘기 이후로 잊고 지내온 질문들을 던진다. 돌덩이처럼 던져진 물음들이 파동을 일으킬 때마다 강물이 들썩거렸고, 수면위로 지느러미를 드러낸 연어들이 요동을 쳤다. 지금 태화강 상류 삼호교에서는 돌아오는 연어를 맞이하는 행사가 한창이다.

 

“왜 우리는 거슬러 오르는 거지요?”

“거슬러 오른다는 것은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간다는 뜻이지. 꿈이랄까, 희망 같은 거 말이야. 힘겹지만 아름다운 일이란다.”

은빛연어는 초록강의 말을 한 마디도 빼놓지 않고 듣겠다는 듯이 꼼짝도 하지 않고 귀를 기울인다.

“강물이 왜 하류로 흐르는지, 너는 아니?”

“그건 거슬러오를 줄 모르기 때문인가요?” ……

“강이 하류로 흐르는 건 연어들을 거슬러 오르게 하기 위해서야.”

“그럼 우리는 강물 때문에 거슬러 오르는 것이군요.”

“그래. 강물은 아래로 흐르면서 연어들을 가르친단다.”

“가르친다구요?”

“강물은 아래로 흐르면서 자신의 물살과 체온을 연어들에게 가르친단다. 그리고 길을 가르쳐주지. 연어들이 반드시 강을 거슬러 올라야 한다는 것을, 또한 거슬러 올라야 하는 이유를 말이야.” 4)

 

연어…….

그들의 죽음은 그저 ‘통과의례’일 뿐이었다. 육신을 빌고 있는 하나의 존재가 그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생명은 비로소 영원할 수 있었다. 가을이 저물어가는 강은 그들의 향연으로 풍요로웠다. 연어들은 그 강을 믿었다. 제 자신의 모든 것을 얻었던 강이었고, 길을 열어 생명을 품어주던 강물이었다. 이제 죽음을 넘어 또 다른 자기에게로 돌아가는 연어, 그 몸에서 강물 냄새가 깊다.

 

 

    

 

 

 

1) 안도현, <연어> 중에서    

2) 환경처, <환경백서> 1993년

3) 안도현, <연어> 중에서

4) 같은 책

 

    

IP *.186.58.134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