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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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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1일 17시 14분 등록

이 글은 6기 연구원 김연주님의 글입니다.

 

아침 자율학습 시간에 다른 반 학생이 다급하게 날 부른다. 선생님반 애가 화장실에서 쓰러져있어요. 달려 가보니 순종이가 괴로운 표정으로 쓰러져있는데 성준이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순종이는 오른쪽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진다며 숨을 쉴 수가 없다고 한다. 겁이 덜컥난다. 순종이를 일으켜 세워 보건실로 갔다. 보건선생님은 다행히 심장 쪽의 이상은 아닌 것 같다며 부모님에게 연락을 해서 빨리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한다. 순종이 어머니에게 연락을 하고 기다리는데 빨리 오시지 않으니 보건선생님은 더는 기다릴 수 없겠다며 119 구급차를 불렀다. 10-15분정도가 지나자 구급차가 오고 나는 보호자 자격으로 함께 119를 탔다.

괴로운 표정으로 누워있는 순종이에게 119 구급요원이 언제부터 아프기 시작했냐고 물으니 7시30분 등교전에 담배를 피울 때 가슴이 따끔하더니 아침에 생활지도를 받고 8시30분 화장실에 갔을 때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아파졌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순종이는 중학교 3학년이고 10일전에 교내흡연과 학교주변 골목에서 교복을 입고 흡연을 하고 교내에서 상습 도박을 해서 흔히 징계라고 하는 생활지도를 받는 중이었다. 오늘도 징계를 받느라 다른 학생들 보다 30분 일찍 나와서 청소봉사활동을 했다. 열흘 전에 선도위원회가 열릴 때 순종이는 엄마 앞에서 우리 앞에서 다시는 흡연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그런 다짐과 지도가 무색하게 매일 같이 등하교를 할 때마다 담배를 피워온 것이다.

 

구급요원은 늑골쪽에 통증을 호소하는데 지금 상황으로는 그리 심각해 보이지는 않는다고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더 자세하게 할 수 있겠다고 하며 중앙병원 응급실로 순종이를 옮겨주었다. 순종이 어머니가 도착을 해서 다급하게 순종이를 살핀다. 응급실 직원들이 달려와 순종이의 상태를 체크하더니 의사선생님은 담임선생님이시냐며 언제부터 아파했는지 이것저것을 묻는다. 그리고는 지금 보여지는 것으로는 특별한 외상이 없어 보이고 단순히 근육에 경련이 온 것 같다며 응급실에 있을 필요 없이 소아과 진료를 받고 돌아가면 되겠다고 한다. 순종이는 소아과 진료에서 원래 몸이 마른 아이들이 특별한 원인이 없이 이렇게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고 밥 잘 먹고 편하게 쉬라는 처방이 내려졌다. 약 4일치를 지어주시고는 4일 뒤에 약을 끊고 통증이 생기면 그때 진료를 받으러 다시 오면 된다고 하셨다.

순종이에게 집에 가서 푹 쉬라고 돌려보내고 나는 학교로 왔다. 학교에 도착하니 전화가 빗발친다. 순종이의 상태가 어떤지 궁금해 하시는 학년부장님, 생활지도 선생님, 보건선생님까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의사선생님께 들은 대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흔히 성장기 아이들에게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는데 부장님께서는 걱정 안 하게 생겼냐며 순종이가 쓴 반성문을 보면 알 것이라고 하신다. 순종이가 생활지도를 받으면서 쓴 반성문을 보여주신다.

 

“ …이제는 담배를 진짜 안 필 것이다. 절대로 학교에서는 안 핀다. 학교에 8시에 도착인데 어쩔 땐 너무 졸려서 더 자고 싶은 데도 겨우겨우 학교에 간다. 학교가 끝나면 봉사를 하는데 허리가 아파 죽겠다. 뭔 봉사가 사람 잡겠다. 그동안 학교 다니기 참 쉬웠다고 3학년이 되니 느낀다. 담배 안 걸린 녀석들 학교 참 쉽게 다니는 거다. 담배 때매 사람 한명 죽겠다. 그래도 끝까지 참고 징계 빨리 끝내고 싸돌아 다니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겠다. 쉬는 시간에도 졸린데 잠도 못자고 독서를 한다. 힘들다. 진짜 그놈의 담배 때매 이렇게 고생을 한다. 다시는 안 필 것이다. 도박도 안 할 것이다. 오늘 어떤 애들이 담배 걸려서 교무실에 왔다. 저놈들은 징계 받아서 정신차려야 한다. 학교에서 담배 피워서 죄송합니다. 어디 가서 학교교복 입고 담배 피우는 짓 하지 않겠습니다. …”

반성문을 읽는데 난 피식 웃음이 난다. 순종이 답다. 많은 아이들이 교칙을 위반해서 벌을 받으면서도 벌을 받는 것이 억울하고 이전에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부장님은 ‘죽겠다, 사람 잡겠다’는 순종이의 반성문이 걱정스럽다고 하시지만 난 순종이가 어쨌거나 다시는 담배 피지 않고 도박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기 초에 순종이를 보면서 아예 ‘이 녀석에게 도덕성이라는 것이 있나, 뇌라는 것이 존재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반성문을 보니 순종이가 그래도 조금은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상식이란 것이 녀석의 머리에 자리잡기 까지는 시간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10일 동안 생활지도가 진행되는 동안 순종이는 정해진 등교시간 8시를 절반도 못 지켰고 청소봉사도 성실하게 하지 못하여 정해진 날 보다 며칠이 더 늘어났다. 그래도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무단 결석을 하지 않고 학교를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그래도 희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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