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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0일 21시 37분 등록

이 글은 6기 연구원 박상현님의 글입니다.

 
2010년 7월 13일 08시 41분 등록

1. 그대가 자서전을 쓰게 된다면 그대가 겪은 삶의 크고 작은 일들이 기술되겠지 ?
지금 까지 나를 만들어 온 가장 중요한 경험은 어떤 것일까
?
'3
가지의 큰 경험' 이 무엇인지 골라 신문기사처럼 기술하라.

#1.군대시절-가치관과 직업관의 충돌

국방부장관이 재단이사장인 대학교가 있다. 엄밀히 얘기하면 2년제 전문대학이다. 등록금을 받지 않는 대신 라면 한 박스 정도를 살 수 있는 월급을 지급한다. 군대다. 박 모 상병(24)의 사례를 통해 군대가 제공하는 특별한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잠입 취재했다.

군대 와서 내 안의 놀라운 잠재력을 발견했다며 웃는 박 상병에게 분야를 물었다. “절도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박 상병의 내무반 직책은 식기당번이다. 식기당번은 내무반 사병들의 군기를 책임지고 훈련ㆍ근로활동 시 실무를 총괄하는 일을 한다. 그는 얼마 전 한달 간의 하계 진지공사에 투입됐다. 공사 후 보름쯤 지났을 때 삽, 곡갱이, 낫 등 작업도구를 점검한 결과 당초 물량에서 삼분의일이 분실되었음을 알게 됐다. “이럴 때 방법은 알아서 채우는 것이라는 그는 결국 단신으로 인근 부대의 작업 지역에 숨어 들어가 벙커에 보관되어 있던 작업도구들을 챙겼다.

두 개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맞섰다.” ‘남의 것을 탐내지 않는다는 가치관과 주어진 책임을 다한다는 직업관의 충돌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박 상병의 경우처럼 한국 사회의 젊은이들은 군대에서 쉽지 않은 논술 주제들을 몸으로 풀고 있다.

#2. 첫사랑-내가 누구인지 알게 해 준 은인

첫사랑은 열병처럼 찾아오곤 한다. 스물 한 살에 그 병에 걸린 박 모씨는 지하철 2호선에서 스물 한 장의 편지를 썼다 찢었다. 뒤늦은 열병의 대상은 두 학년 위의 선배. 그는 1학년 첫 수업에 인사차 들른 학회장에게 첫 눈에 반했다. 낯선 감정을 편지지에 옮길 뿐 몇 개월을 억눌렀던 그는 그러다 말거라 생각했단다. 여름방학이 가까운 어느 날 화산이 터지기 직전의 압박감을 느낀 그는 술자리에 있던 선배에게 기어이 편지를 전해주고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일주일 후 생맥주 한 잔씩을 앞에 두고 둘은 마주 앉았다. “나를 남자로 생각해 본 적은?”에 그녀는 아끼는 후배일 뿐이라고 했다.

그 후 박 모씨는 군대를 갔고 선배인 박 모양이 남친의 부대를 찾아가 이별을 알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날 밤 남친의 내무반에는 파란이 일었다는 소문이 있다. 아무튼 그 후로 박 모씨는 박 모양을 만나지 못했다. 첫사랑의 추억은 희미해졌지만 박 모씨는 또렷이 기억하는 게 있다. 그는 자신을 몰랐다. 홀로 수줍게 피웠다가 사그라지는 촛불이라고 여겨 애써 감정을 억눌렀다. 그러나 심지에 불을 댕기자 그 아래 예상하지 못한 거대한 감정의 유전이 자리잡고 있었다. 쉽게 점화되지 않지만 제대로 불을 붙이면 오래오래 진득히 자신을 태울 벙커C유 같은 기질이 거기에 있었다.

#3. 광고 패러디 제작-창조와 소통의 가능성을 보다

2008 12 OO OO본부 송년 장기자랑 대상은 광고 패러디를 출품한 박 모씨(41)에게 돌아갔다. 사무실 주변의 얘기들을 이 회사의 대표 광고인 ‘OOOOT’ 형식에 맞춰 패러디한 이 동영상은 보편적인 유머코드와 형식미를 갖춰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는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았다. 박 씨는 팀원들의 개별 성향과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있었고 팀원들 스스로 배역에 몰입할 수 있도록 즐거운 촬영 분위기를 만든 것을 대상 수상의 배경으로 자평했다.

박 씨는 중학교 때 소설가, 대학교 때 드라마 PD 등 일찍이 대중과 소통하는 일을 장래직업으로 고려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며 부단한 수련을 통해 대중과의 소통역량을 개발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또 예술한다는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오류가 뭔지 아냐?”대중과의 소통에 앞서 가족 등 주변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이 원활해야 할 것 같다”고 알 듯 모를듯한 자문자답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2.'3 가지의 큰 경험'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하나를 골라 자세히 해석하라

송년회는 한 해 동안 회사를 위해 수고한 구성원들을 위로하는 자리이다. 그런데 이 자리를 위해 등 떠밀린 주니어 직원들을 중심으로 팀별 장기자랑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하는 게 흔한 연말의 풍속도다. 워크샵 자료를 동영상으로 제작한 경험에 코가 꿰여 2008년 그렇게 우리팀의 장기자랑거리를 준비하게 되었다. 주제는 팀장의 제안으로 우리회사의 광고를 패러디하는 것으로 결정된 상태였고, 내용을 채우는 일이 남았다. 강성고객의 황당 상담사례를 정리한 너 댓 편이 수집되어 있긴 했지만 이걸 어떻게 요리하느냐가 문제였다. 이것들로는 부족하다 싶어 월별로 12개의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로 하고 모자란 이야기는 동료들의 캐릭터를 살려 지어냈다. 전체적인 양식은 팀장이 달력을 넘기며 지난 1년을 회고하는 것으로 가기로 했다. 제목은 고객채널팀의 四季로 정했다.

송년회 3일 전에 콘티를 짜고 캐논 익서스 디카로 촬영에 들어갔다. 이렇게 시간 여유 없이 업무를 해야 했다면 꽤 스트레스를 받았을 텐데 동영상을 찍는 일은 오히려 설레기까지 했다. 제작에 참여한 팀원들도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과묵하기 이를 데 없는 여직원조차 자발적으로 소품을 챙기며 흥겨워하는 걸 보고 절반의 성공을 예감했다. 밤샘 작업 끝에 송년회 날짜에 맞춰 동영상이 완성되고 드디어 100여명의 본부 구성원들 앞에서 상영이 시작됐다. 숨죽이고 주위를 둘러봤다. 시사회장의 감독이 이런 느낌일까. 의도하지 않은 부분에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관객의 웃음코드를 제대로 짚은 것은 확실했다. 예상대로 대상을 받았다. 난생 처음 장기자랑에서 입상한 것도 기분 좋았지만 대중과의 소통 체험은 그 이상의 짜릿한 쾌감을 주었다. 대중과의 교감 체험은 반복될수록 오히려 쾌감이 증폭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동영상에는 배역에만 스무 명이 넘는 팀원들이 참여했다. 그들이 무엇에 열광하고 마음을 여는지를 보면서 리더십에 대한 단초를 얻은 것도 수확이었다. 구성원은 명확한 비전과 그것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명료하게 이해하고 있는 리더를 신뢰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살려 주는 리더에게 마음을 연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했다.

3. 이 경험을 통해 그대는 그대라는 세계에 대하여 무엇을 알게 되었는가 ? (그대의 기질, 취향, 재능, 가치관, 믿음, 선호 등등.... )

그간 살아온 경험이나 스트렝스파인더, 다중지능 등 재능검사의 결과를 보면 작가란 미래의 직업은 나에게 적합한 분야라고 생각된다. 소설을 쓴다고 끄적거리던 중학교 시절, 대학교 때 과 연례행사로 연극무대에 섰을 때의 설렘, 드라마 PD를 지망한 취업생 시절, 시나리오학원을 수강했던 30대 중반, 돌잔치 성장동영상 만드느라 밤 샜던 기억-거기에는 나의 세계를 창조하고 표현하고자 했던 내가 일관되게 있었다.

마흔이 넘어 우연히 만들게 된 광고 패러디가 어린 시절부터 일관되게 나를 지배해온 표현과 의사소통에 대한 욕구를 명료하게 드러내 주었다. 상영 내내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느끼는지를 지켜보는 일은 흥미진진하고 짜릿했다. 그 작은 이벤트 하나를 통해 작가며, 영화감독들이 신작을 내놓고 얼마나 마음을 졸이는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일에 대한 태도는 관계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 평상 시 나는 카라스마살가운 표현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동영상을 찍을 때는 참여한 팀원들과 훨씬 친밀하고 허물없이 지냈다. 나도 재밌었지만 참여자들이 작업에 상당한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일이 아니라 놀이였기에 마음이 느긋했고, 동료들은 카메라의 중심에 단 몇 초라도 주인공으로 설 수 있었기에 더 신이 났다. 인생의 주인공으로 산다는 느낌 만큼 마음을 들뜨게 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반대로 사소한 일에 짜증이 나고 의욕이 떨어진다는 건 자기답게 살고 있지 못 하다는 반증이다.

나의 강점 테마는 탐구심, 학습자, 착상, 사고, 공감이다. 창조와 의사소통에 대한 욕구는 이런 강점 테마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는다. 나는 그간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고 배웠다. 그리고 그것들을 나의 느낌대로 직조하고 주변사람들에게 전달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과정들이 시너지를 일으키며 단계적으로 발전되지는 못했다. 가끔은 현실과의 불일치로 인해 똘창에 빠지기도 했다. 전략과 초점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최적코스로 목적지를 짚어줄 네비게이션과 각 스위치의 ON-OFF를 결정하는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것이다.

이 장면은 또한 단기 프로젝트에는 강하지만 장기 프로젝트에는 취약한 내 기질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짧은 기간에 에너지를 쏟는 일에는 비교적 좋은 성과물을 냈지만, 소설 쓰기나 시나리오 같은 작업은 끝을 보지 못했다. 책 쓰기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일관된 관점을 가지고 장기간 힘을 집중하는 일이다. 장기간 힘을 발휘하려면 전체 과정에 대해 세밀한 밑그림을 그리고, 용의주도하게 자원을 분배하고 조절하는 성실함이 필요하다. 그래서 매일매일 반복하는 습관이 나에게는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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