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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8일 10시 46분 등록

범해 좋은 사람들 2.

한 줄도 너무 길다 ....류시화

 

 

   목소리가 변했다. 말도 잘 나오지 않는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단식 캠프를 마치면서 묵언수행을 계속하고 싶었다. 어디까지 이런 비움이 가능할지 가늠해보고 싶었다. 기회가 닿는데로 말을 삼갔다. 물론 평화로운 미소는 계속 얼굴에 담고 있었다. 어제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속 얘기를 하려고 했다. 목소리가 안 나온다. 오래 산사에서 수행을 한 스님들처럼 중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한참을 떠들고 났더니 다시 제 목소리로 돌아왔다.

    

 언제부턴가 말을 줄이고 살고 싶었다. 세상에 떠도는 많은 말들이 듣기 싫었다. 뿐만 아니라 길게 얘기하는 사람, 핵심 없이 에둘러 말하는 사람, 논리적 연결 구조를 갖지 못한 말들이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공공장소에서 여러 사람에게 들리게 개인적인 얘기들을 해대는 사람들이 한심하다 못해 화가 난다. 특히 핸드폰 혼잣말을 들을 때는 안하무인, 미친 사람이 떠들어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점점 더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기 싫어지나 보다. 외로워서 사람을 찾아 나서다가도 사람이 싫어서 무인도에서 살고 싶은 양가감정이 있다. 글에 몰두하고 있는 요즈음엔 어떻게 하면 간결체로 깔끔하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을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책을 읽을 때에도 화려한 수사체의 문장보다 간단명료한 글이 좋다. 짧은 한마디에 많은 감정이 담긴, 아니면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의 담백함이 울림이 크다. 나만 그런 것일까?

    

 140자 이내로 글을 쓰는 요즈음 세대는 글이 길어지면 아예 읽지를 않는단다. 어쩌면 깊고 섬세한 이야기에 집중할 여유가 없다는 말 같기도 하고 시선이 온통 자기자신에 가 있어서 남에게 긴 관심을 가지기 싫다는 뜻도 있을 것이다. 눈과 눈으로 , 가슴과 가슴으로 만나던 일은 이젠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시간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일까? 어쨌든 짧고 간결한 생각은 짧고 간결하게 씌여질 것 같다.

 

 

일본에는 하이쿠라는 시의 형식이 있다. 그야말로 짧은 글, 깊은 뜻이다. 하이쿠 작가는 말 한마디에 온 우주를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과 명상을 하는 사람들은 이 하이쿠를 즐겨 인용했다. 나도 말은 하기 싫고 마음은 전하고 싶을 때에 종종 하이쿠를 옮겨다 놓기도 했다. 류시화는 <한 줄도 너무 길다>라는 하이쿠를 모아놓은 시집에 짧은 시를 읽고 긴 글을 썼다. 작품에 대한 설명이다.

 

 

                 “길에서 검객을 만나거든 너의 검을 보여주고

             그가 시인이 아니거든 너의 시를 보이지 말라” -임제 선사

 

하이쿠는 한 줄의 운문으로 계절과 자연을 노래하면서도 인간의 실존에 가장 근접한 문학으로 평가받는다. 바쇼, 이싸, 부손이 삼대 하이쿠 작가라고 불리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체슬리브 밀로즈는 하이쿠 애독자였다. 윌리암 워즈워드의 다음 시는 하이쿠에 가깝다.

 

 

                   아홉 개의 눈 쌓인 산에

                   움직이는 거라곤

                   까마귀의 검은 눈동자

 

 

시인이자 명상가인 류시화는 계속 설명을 한다.

시는 압축이 생명이다. 이야기를 지어내거나 생각나는 대로 글을 풀어 나가는 다른 문학과의 차별성이 거기에 있다. 시는 압축하고 생략한다. 말을 하다가 마는 것, 그것이 시의 특성이다. 시는 하나의 말없음표...... 그 말없음표로 자신의 가장 내밀한 것을 표현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진실한 감정이나 깨달음 같은 것을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물의 본질을 자세히 보는 것, 거기에 시의 본질이 있고, 살아있음의 의미가 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말했다. “내가 신을 바라보는 그 눈을 통해서 신이 나를 바라보게되는 것이다. 하이쿠는 기본적으로 서정시다. 그러나 하이쿠는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하이쿠는 의미를 목표로 한다. 모든 존재의 본질은 그 스스로 시적이다. 하이쿠가 목표로 하는 것은 바로 모든 존재의 참 본질에 한 걸음 다가서는 일이다. 참 본질에 다가가려면 설명이 아니라 직관과 느낌이 필요하다. 시는 사물들로 하여금 말하게 해야 한다. 모든 존재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하이쿠의 정의를 간단히 말하면 5-7-5 의 음절로 이루어진 한 줄짜리 정형시이다. 수 백년 전 일본에서 시작되어 오늘날 일본에만 백만 명 정도 하이쿠 작가가 있다.

    

슬픈 생을 산 이싸의 작품이다.

 

 

                                    허수아비 뱃속에서

                                    귀뚜라미가

                                     울고 있네

    

바쇼는 파초를 좋아해서 자기 집 마당에 파초를 심고 자신의 이름도 바쇼(파초)라고 지었다.

            

                                    이 가을

                      나는 왜 이렇게 나이를 먹는 걸까

                              새는 구름 속으로 숨고

    

바쇼의 마지막 하이쿠다. 죽기 얼마 전에 부른 노래다.

    

하이쿠는 그 의미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것을 느끼고 깨닫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그러나 하이쿠 작가들은 스스로 선택한 고독한 삶을 살았고, 끝없이 방랑했다. 굳이 하이진(하이쿠를 쓰는 시인)들이 일깨워 주지 않아도 인생은 근원적으로 외로운 것이며, 온갖 부조리한 넌센스로 가득 차있다. 맥베드에서 말하고 있듯이 인생은 바보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같다 시끄럽고 소란스럽지만 의미는 별로 없다. 하이진들은 그러한 속물적인 삶을 멀리한다.

    

                         뻐꾸기가 밖에서 부르지만

                                       똥 누느라

                                 나갈 수가 없다.

 

정치인의 초대를 받고 답장으로 쓴 소세키의 .

 

  

                           울지 마라, 풀벌레야

                         사랑하는 이도 별들도

                      시간이 지나면 떠나는 것을!  

 

백편의 하이쿠에서 고른 이싸의 시, 지금 내마음 같다.

 

IP *.201.99.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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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9 11:10:43 *.252.144.139

내가 쓴 하이쿠

 

이틀을 굶었더니

한 발자국 떼기도 힘들어

올 가을은 자발적 빈곤과 친구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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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1 05:56:56 *.201.99.195

      한줄 더 붙여서...ㅋㅋ     

 

                               

                             재키야재동아

                  국이고 반찬이고 모든 곳에

                              벚꽃잎이

                        떨어져 내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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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1 15:09:45 *.217.129.105

좋아요. 선생님. 조용히 고즈넉히 꽃잎 떨어지는 곳에 앉아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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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5 00:41:49 *.201.99.195

효우,

                사립문에

             자물쇠 대신

       달팽이를 얹어 놓았다  

 

나는 아무래도 이싸의 하이쿠가  맘에 들어요.  그림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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