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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뫼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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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9일 10시 06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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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병문안 소식을 전해들은 것은 어제였습니다.

 

회사 대표가 보낸 이메일에는 두 차례에 한해 병문안이 가능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메일을 보고는 당신의 상태가 생각보다 많이 안 좋은것을 알고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저 같은 경우에는 처음부터 병문안을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당신께서는 늘 청년처럼 푸르고 싱싱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습니다.  

 

늘 책을 통해 힘을 받고, 에너지를 생산 할 것을 당부하셨던 당신. 전 이 칼럼을 쓰면서 잠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런 시점에 가장 어울리는 작품이 무엇일까, 하고요. 저는 최인호 작가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라는 작품이 생각 났습니다.

 

최인호 작가는 2008년 암이 발견되었고, 2009년에 암이 재발하여, 1975년부터 34 6개월 동안 월간 <샘터>에 연재해온 소설 <가족>의 집필을 중단해야만 했습니다. 그런, 작가는, 2011,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라는 책으로 다시 독자들에게 다가왔습니다. 사실, 이 소설이 생각 난 것은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책의 맨 앞부분에 있는작가의 말부분이 강하게 제 기억 속에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최인호 작가는 380페이지 정도 되는 이 장편소설을 정확히 두 달 만에 탈고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2010 10 27일에 시작하여 같은 해 1226일에 끝난 작품이다. 정확히 두 달 만에 쓴 장편소설이다.

두 달 동안 나는 계속 항암치료를 받았고, 그 후유증으로 손톱 한 개와 발톱 두 개가 빠졌다. 아직도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원고지에 만년필로 소설을 쓰는 수작업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빠진 오른손 가운데 손톱의 통증을 참기 위해 약방에서 고무골무를 사와 손가락에 끼우고 20매에서 30매 분량의 원고를 매일 같이 작업실에 출근해서 집필하였다.  

 

저는 이 책의 내용은 어쩌면 잊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문학은 텍스트만으로 판단해야 한다, 는 대학시절 교수님의 강의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야속하게 느껴지는 지요. 아무래도 전, 그 강의의 내용에 절대로 동의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찌 문학이 주는 즐거움을 텍스트 내의 논리로만으로 설명할 것인지요.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 깊이 스며들어있는 문학의 향기를 어찌 글자의 조합만으로 확인 할 수 있단 말인지요.  

 

이 책의작가의 말부분을 읽고 있을 무렵, 당신의 병문안 내용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이 이메일로 전달되었습니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당신의 모습을 보자, 저도 모르게 울컥거립니다. 억지로 웃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보였습니다. 아마 마음 속으로는 모두들 울고 있었을테지만요.

 

작년 가을부터 당신께서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셨지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저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청취자 게스트로 참석했던 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출판 마감과 회사일 때문에 매주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당신과 함께 라디오 생방송을 한다는 생각에 라디오 스튜디오가 있는 곳으로 가는 날이면, 설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당신께서는 방송 내용들을 참고하여, ‘새로운 읽기의 장을 제시할 수 있는 책을 한번 내보자는 제안을 해주시기도 하셨지요. 저는 얼른 병상에서 털고 일어나셔서 제안해 주신 책을 저와 함께 집필할 즐거운 상상을 해 봅니다.    

 

다시 저는 <낯익은 타인의 도시>의 작가의 말에 주목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나의 십자가인 원고지 위에 못 박고 스러지게 할 것임을 나는 굳게 믿는다.

 

지난 주, 부활절을 맞아 성당에서 부활 계란을 나누어 먹었는데, 그 계란을 먹으며, 잠시 동안 부활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그리움의 대상의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진정한 부활의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요.

이미 그 의미를 지닌 많은 이들이 당신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이미지 출처 www.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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