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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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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31일 21시 31분 등록

양수리 가는 길

- 김인숙 <양수리 가는 길>, 1993

 

달력을 넘기자, 잔뜩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다. ‘뱀섬’이라고 했던가. 11월은 붉은 기운을 머금어 몽롱한 안개 속에서 섬 하나로 떠오르고 있었다. 마치 괴수의 뿔처럼 일찍 메마른 나무 가지들 끝에서 점점이 날아오르는 새들의 윤곽만 또렷할 뿐, 빛과 어둠이 갈라지는 틈은 수면과 대기의 경계가 모호했다. 차가운 공기를 들이려고 창문을 열자, 두 장 밖에 남지 않은 달력의 무게는 헐겁게 들춰졌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늦가을이 깊어 아침기온이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맑은 날이면 물안개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고 꼭 양수리에 다녀와야겠다고 다짐하며 시계를 들여다봤다. 서둘러야 했다.

 

사내는 양수리로 가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늦었다. 사실 아내가 단번에 운전면허에 합격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오전에 일찌감치 떨어지고 나면, 그는 바람이나 쐬러 가자며 아내와의 시간을 가질 생각이었다. 면허시험날짜에 맞춰 일부러 월차를 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차분히 이야기를 꺼낼 생각이었다. 아내의 반응이 어떨지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살아왔고, 굳이 따로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 어색할 만치 낡은 부부였지만, 사내는 계속 망설여 왔던 것이다. 그런데 예상이 빗나가 버렸다. 코스를 합격한 아내가 주행시험까지 붙는 바람에 그는 이미 반나절을 면허시험장에서 보내야 했다. 아내는 합격할 것이다. 그리고 차도 아내의 차지가 될 것이다. 그 순간 사내는 ‘아- 아직 양수리도 가보지 못했는데……’라는 말을 무심히 뱉어냈다.

 

단편 소설 <양수리 가는 길>은 1993년에 발표되었다. 소련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던 시절이었고, 한국에서는 소위 말하는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평화로운 정권교체(?)가 있었다. 그리고 3저 호황과 올림픽 특수로 대기업들의 문턱이 낮아지고, 자동차 내수시장이 확장되면서 ‘마이카 시대’가 도래하던 때였다. 이제 중산층의 생활모습도 다시 그려지고 있었다. 작가 김인숙의 일상 가까이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을 것 같은 주인공 사내, ‘오대리’도 그 한 가운데서 물살을 타고 있었다. 세상이 가져다주는 편리와 안락함에 익숙해져가야 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젊은 한때를 치열하게 살았던 사내에게 ‘지금’은 뭔가에 쫓기듯 불안하고 불편했다. 작가는 이 젊지 않은 부부의 대화와 심리묘사를 통해 그 불편함의 뿌리를 추적해간다. 평범한 일상의 수면 깊숙이 잠겨 있는 기억들을 따라가는데, ‘양수리 물안개’는 부표처럼 물 위에 띄어져 있다. 사내의 기억은 물살에도 떠내려가지 않고 흔들리는 그 기표를 따라 대학시절까지 내려간다. 아마도 80년대 초반 즈음으로 짐작된다.

 

사내는 도망치듯 무작정 속초행 버스를 탔었다. 새벽 첫 차를 타려고 서둘렀던 탓에 버스가 서울을 빠져나가기 전부터 그는 곯아 떨어졌다. 어쩌다 눈을 떴을 때, 차창 밖으로 가득 차오르던 물안개의 호수, 그 새벽녘의 풍경에 사내는 압도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가두시위로 보름간 구류를 살았던 직후, 그때 사내는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다. 구류 다음에 이어질 연행과 징역, 눈물로 범벅된 어머니의 얼굴은 그에게 두려움을 가르쳤다. 시위대열에 더 이상 끼지 못하는 자신을 부정할 수 없었다. 술에 취해 속초 밤바다에 몸을 던져버리면 씻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사내에게 남겨진 것은 그를 건져낸 군바리들에게 받은 얼차려와 그때 새겨진 손의 흉터뿐이었다. 두려움 앞에서 용기를 잃었고, 미래에 대한 환상을 저버리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눈물과 분노를 외면하는 대신 안락과 평화를 얻었다. 속초를 다녀온 이후 그는 자원입대를 해버렸다. 그리고 그 후로 지금껏 양수리 물안개는 사내의 기억 저편에만 머물러 있었다.

 

양수리로 오시게1)

가슴에 응어리진 일 있거든

미사리 지나 양수리로 오시게……

 

양수역 개찰구를 빠져나오자 시인의 인사가 마중을 나왔다. 정겨운 시어詩語들이 가을하늘빛 같이 따뜻했다. 시인의 말마따나 모든 근심 털어놓고 행복한 노후를 보내자면 양수리만한 땅도 없을 거 같다. 하지만 부동산 중계인의 말은 달랐다. 몇 년 사이 천정부지로 오른 땅값 때문에 집짓고 텃밭 마련할 땅 구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 양수리였다. 젊은 시절 벌어놓은 돈도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도 없는 처지로서는 쉽게 전원일기를 써갈 엄두내기조차 없었다. 뿐만 아니다. 73년에 팔당댐이 들어선 이후,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팔당특별대책지역에 개발제한지역, 그린벨트, 심지어 군사시설보호구역까지 첩첩으로 묶인 집들은 화장실 개축공사 하나에도 복잡을 떨어야 했다. 40년 가까이 숨통을 조여 온 규제들 때문에 동네 인심도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어쩌다 사진을 찍으러 오거나 드라이브를 즐기러 오는 눈길이야 물안개는 호사였지만, 막상 지역 주민이 되어보면 지긋지긋해지는 것이 또한 안개일거라는 귀뜸에 반쯤 수긍이 갔다. 마을을 지나면서 세미원으로 이어진 길을 잡았다. 부쩍 짧아진 해걸음이 운길산 쪽으로 겨우 한 뼘이나 남겨놓고 있었지만, 바쁠 것은 없었다. 어차피 물안개는 내일 새벽에나 볼 수 있을 테니, 남은 시간동안 적당히 주변이나 둘러보며 한 끼 때우면 될 일이었다.

 

대기업의 대리로 서울 근교에 사는 사내는 이제 두어 달 후면 동남아 오지로 파견근무를 가야한다. 회사를 때려치우지 않은 한, 사내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곳에서의 생활이 어떨지는 이미 조대리의 허풍 가까운 큰 소리 밑에 울리던 공허 속에서 지레 가늠이 되었지만, 막상 자신의 일로 닥치고 나니 이래저래 고민이 많아졌다. 삼십 대 중반, 생활의 무게가 어깨에 내려앉기 시작할 나이다. 이제 곧 유치원에 다니게 될 딸 아이, 서울로 이사를 나가는 것이 꿈이라는 아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얻기 위해 빌린 대출 원금과 이자 그리고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수품이 되어버린 자동차와 온갖 보험들. 사내의 아내는 사내보다 훨씬 더 잘 적응해가고 있었다. 일찌감치 뛰어든 경제전선에서 나름 승전보를 울리고 있었고, 가게 문을 닫는 시간이 자꾸만 늦어지는 바람에 차가 필요해진 것이다. 그녀가 운전면허를 따려는 생활적인 이유도 거기 있었다. 파견근무를 가게 되면 굳이 차가 필요 없어지겠지만, 사내는 아직도 종잡을 수 없는 거부감 속에서 불현 듯 양수리 물안개만을 떠올리곤 하는 것이었다. 스스로도 짜증이 일었다.

 

결국 사내가 아내와 드라이브를 나선 곳은 월미도 카페였다. 양수리와는 정반대의 방향이었다. 월미도로 가는 차안에서 그는 언젠가 회사를 그만두고 독립하겠다고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대리가 되고 과장이 되고 또 차장 부장을 거쳐 이사가 되기까지, 숨 막히는 약육강식의 경쟁 사회에서 그는 일찌감치 지쳐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의 인생과 미래를 스스로 선택하고 싶었었다. 그러나 임신 칠 개월이었던 아내의 반응은 현실적이었다.

 

“출세할 자신이 없으면 가정을 지킬 책임감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무책임한데다가 용기도 없어. 도대체 뭘 믿고 살라는 거지? 최소한 동거인으로서의 윤리는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최소한 동거인으로서의 윤리…… 아내의 그 말은 너무도 손쉽게 그의 손에 백기를 쥐어주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는 아내가 분노하고 있는 이유를, 그가 가장으로서 너무 경박하게 행동한다는 데에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 그런데 아내는 말했던 것이다. 최소한 동거인으로서의 윤리. 그 말을 통해 아내는 자신이 결코 그에게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혔던 것이다.2)

 

사내는 알고 있었다. 이제 아내에게 차를 넘겨줘야 할 것이다. 아내도 이미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녀가 막차 시간을 넘겨서야 가게 문을 닫고 총알택시로 귀가하는 사정을 모른척할 만한 염치나 딱히 반대할 어떤 명분도 그는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는 선뜻 그렇게 하자는 말을 먼저 하지 못했다. 사내는 주저하면서 또 무너지고 있었다. 스스로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치열한 삶’을 꿈꾸기에 이미 현실이 주는 편안함에 길들여져 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었다. ‘파견근무’가 자신의 선택이 아닌 줄 알면서도,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도 거부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아내는 이번에도 현실적인 선택을 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가게 일에 전념할 수도 있고, 남편의 부재를 핑계로 불편한 시댁과의 거리를 유지할 수도 있음을 계산할 것이다. 얼마만큼의 사랑과 또 얼마만큼의 필요 때문인지를 가릴 수는 없겠지만 그는 가정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정작 문제는 가정을 포기할 만큼의 그 무엇도 또 그만큼 무모한 열정이나 용기조차 그에게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입버릇처럼 ‘양수리 물안개’를 보러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위선적이란 말인가. 사내는 월미도 카페에 도착해서도 한참이 지나도록 ‘파견근무’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새벽의 빛깔은 암청색이다. 해가 오르기 직전, 어둠이 빛으로 이어지는 순간의 하늘은 서슬 푸르도록 차가운 색이다. 길은 축축하게 젖어 있다. 무거운 삼각대를 매고 삼삼오오 앞서가는 걸음들을 따라 길이 이어졌다. 간간이 밝혀 둔 불빛의 점들이 선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흐르지 않는 안개를 머금은 길은 앞서 간 만큼만 내어주고, 지나온 만큼씩 감추어 가곤했다. 흔들리는 물살들이 땅과 맞닿은 가장자리까지 밀려와 뱃몸에 부딪혀서 철벅댔다. 흔들리며 뜨거워지는 물살, 턱밑까지 숨이 차오를 때 마다 물에서는 뒤척이는 소리가 일었다. 보이지 않는 저편 어디쯤에서 강물이 몸을 섞고 있었다. 감추려는 몸짓과 훔쳐보려는 고집 사이에서 시간은 팽팽하게 당겨지며 천천히 흘렀다. 어렴풋이 느티나무 고목의 윤곽이 잡혀왔다. 길은 거기서 끝이었지만, 끝은 보이지 않았다. 흐르던 걸음을 멈추자 관성에 실린 기억들이 천천히 몰려왔다.

 

서로 다른 세상을 흘러온 강물들이다. 운명이었을까. 그렇게 만나고 또 그렇게 헤어져야 했던 것들이. 세상의 눈길이 두려웠던 것일까. 안개는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해가 오르는지 붉은 기운이 퍼져들면서 강물은 심하게 뒤척거렸다. 새벽의 교접이 시작되고 있었다. 열정을 품은 빛의 오묘한 향연은, 수면 위를 모호하게 넘나들며 현실과 꿈의 경계를 허물어 가고 있었다.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들이 처음으로 돌아가려는지 뜨거워진 몸은 떨어질 줄 몰랐다. 가슴이 아려왔다. 탄성도 잊은 채 한동안 멍하니 서 있던 가슴이 기억의 저편에서 따뜻했던 키스를 불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긋이 감은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 꼬옥 껴안았던 품안에서 가녀린 몸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오래 전에 끝났던 소설 같은 이야기였다. <양수리 가는 길>은 끝을 맺어 가는데, 사내는 여전히 결론을 못 짓고 있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도 삶은 찬란하고 찬란한 만큼 절박한 것이라고 외칠 수 있을까. 그 절박함으로 당신을 사랑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자신이 결코 양수리에는 갈 수 없을 것임을 확신처럼 짐작하고 있었다. 아내가 그에게서 뺏아간 차는 결코 양수리로 달려가지 않을 것이며, 세상은 고요히 그를, 지도상에 양수리라는 지명이 적혀져 있지 않은 나라로 데려갈 것이다. 그리하여 그에게는 양수리의 물안개만이 기억에 남을 것이고 그 물안개를 뿜어낸 그 속살 같은 수면의 정체는 결단코 바라볼 수 없게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오직, 그가 연극처럼 꿈꿔온 ‘양수리’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3)

 

안개를 잃고, 그 새벽의 정사情事가 신비감을 잃어갈 즈음, 하나둘씩 사람들이 짐을 챙겨들었다. 무수한 사연들을 품고 아픔으로 다져진 길이다. 사람들은 왜 두물머리에 오는 걸까. 무엇이 찾고 싶어서 또 무엇을 버리고 돌아가는 걸까. 사랑이 의무로만 남겨진 일상으로, 꿈을 버린 대가로 배불러 가는 세상으로 되돌아가며, 이곳에 두고 간 ‘가슴 뛰는 설레임’을 두고두고 되새김질하려는 것일까. 다시 뜨거워질 수 있을까. 저 새벽 강물처럼.

 

 

 

 

1) 박문재의 시, <양수리로 오시게> 부분

2) 김인숙, <양수리 가는 길> 중에서

3)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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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3 15:01:40 *.236.10.20

좋은데 ^^'양수리 가는 길'을 읽지 않아 원문과 네 글이 잘 구분되지는 않지만,

텍스트를 충분히 소화한 느낌이 난다.

 

우리가 공감할만한 주제라 그런지 충분히 아프고 아련하네. 나만 그런가. ㅋㅋㅋ.

네 글을 읽으니 양수리가 새롭게 다가오네.  인생이 '새벽의 情事'라는 기억 하나로

되새김질되는 시간이라면, 새벽 강가의 물안개 없이는  응시할 수 없는 일상이라면

 아....

 

읽어봐야겠다. '양수리 가는 길'을 읽고 양수리로 넘어가는 길을 고민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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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3 20:01:09 *.186.58.134

양수리로 오시게

가슴에 응어리진 일 있거든

미사리 지나 양수리로 오시게

……

마흔 해 떠돌이 생활

이제사 제 집 찾은 철없는 탕아같이

남한강과 북한강이 뜨겁게 속살섞는 두물머리로

갖은 오염과 배신의 거리를 지나

가슴 넉넉히 적셔줄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처용의 마을

 

이제는 아주

양수리로 오시게

 

- 상현아 거그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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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5 09:29:55 *.211.91.147

아 김인숙 작가 소설 좋아하는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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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6 22:13:23 *.186.58.134

ㅎ 고맙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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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5 13:29:04 *.42.252.225

나는 읽어내려가며 진철이가 감을 잡았구나! 좋아 딱 ! 네 글 스타일이구나 하는 순간 , 단편소설 양수리 가는 길이라는 것에

무너졌다.  너의 맛깔스럽고 구수한 입담은 다른 작가들의 책을 분석하고 설명해주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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