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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13일 08시 02분 등록

범해 좋은 사람들 7.

햇빛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햇빛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나의 유년시절 여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장마가 지나고 나면 햇빛이 쨍쨍해졌다. 어른들은 7월의 장마를 겪느라 눅눅해진 옷가지와 이불들을 내다 말렸다. 방안에서만 노느라 많이 심심했던 우리들은 널어놓은 이불사이를 뛰어다니며 신나게 놀다가 어머니와 일을 도와주던 분들의 걱정을 들었다  

 

그러다가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해수욕을 위한 준비물을 챙겨들고 아버지께로 가서 함께 택시를 타고 광안리나 해운대로 갔다. 이시간이 되면 바다는 조금 한적해지고 강한 햇빛은 누그러져서 수영을 하기에 참 좋았다. 튜브를 타고 누워서 하늘을 보면 온갖 구름이 흘러가고 토끼구름 사이로 햇님이 방긋 웃으며 숨바꼭질하자고도 했다. 아버지가 모래 위에서 야구공처럼 던져주던 사과를 바닷물에서 꺼내 한입 베어 물면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했다.  

 

 어릴 때 나의 별명은울보였다. 위로 오빠가 둘 있고 내가 큰 딸이기에 관심도 많이 받았고 놀림도 많이 받았다. 타고난 심성이 여리고 겁이 많아서 누가 조금만 놀려도 금방 울어버렸다. 그리고 한번 울면 해가 질 때까지 울었다. 내 동생이 크고 난 후에 그 애가 더 고집스럽게 울기 시작하자 내가 그 장기전 울음의 바통을 넘겨줬다. 우리 집안과 매우 가까이 지내던 높은 계급장을 단 군인이었던 고모부는 나를 울게 만드는 걸 무척 즐겼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잘 우는데 고모부는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내가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라고 놀렸다. 울다가 웃다가 어느 날은 실제로 나를 낳은 엄마가 있다는 부산 영도다리 밑까지 가 보았다. 진짜 우리 엄마는 그곳에 없었다. 고모부의 각본은 그렇게 짓궂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혁명을 일으켰다.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울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놀려도 울지 않고 손해를 봐도 울지 않기로 했다. 서서히 씩씩해져 갔다. 나는 엄마에게 매우 강한 애착을 갖고 있었다. 어릴 때 큰 병을 앓아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다 살아났기에 부모님께 고통과 기쁨을 함께 드렸었다. 그래서 늘 엄마를 찾았다. 남자인 오빠들보다 여자인 내가 말이 빨라서 일찍 유치원엘 갔었는데, 엄마만 돌아보고 울어서 엄마가 문 뒤에 숨어 있다가 할 수 없이 다시 나와서 나를 집으로 데리고 간 일이 있었다. 그래서 유치원에는 좀 더 큰 다음에 때가 되었을 때 다시 갔다  

 

 그리고 무엇이든 혼자서 해내지를 못했다. 화장실도 무섭다고 같이 가고 시장도 꼭 누군가와 같이 갔고, 학교도 교실 문 앞까지 친구와 같이 갔다. 늘 누구하고든 같이 있었다. 혼자 있는 것이 왜 그렇게 무서웠는지 모른다. 중학교 때는 친구하고 헤어지기 싫어서 친구 집과 우리 집 사이를 네다섯 번은 왔다 갔다 하다가 중간에서 겨우 헤어지고는 했다. 웃기는 일 하나는 음악시간에 가창 시험을 보는데 짝꿍에게 같이 나가자고 했다가 선생님한테 혼이 난적이 있다. 도대체 쌀 한가마를 20일 만에 먹는 손님 많은 집안에서 자랐으면 사람에 치일만도 한데 사람이 그렇게 좋았을까  

 

 어쨌든 그렇게 자라다가 객지로 공부하러 나가게 되었다. 기차역으로 오고 가고 환영과 환송이 이어지고 어느 날 달라진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친구를 보내려고 역에 가서는 기차가 떠나기도 전에 먼저 돌아서서 와버렸다. 목이 메고 눈물이 나서 가슴이 몹시 아팠기 때문에 내가 먼저 떠났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뒤도 안돌아보고 떠나가는 습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일은 왜 내가 과도하게 방어적인지, 다른 사람들을 한참 힘들게 한 후에야 겨우 깨닫게 된 감정 그림자였다. 그러다보니 차츰 눈물도 남 앞에서는 보이지 않게 되었고 , 우는 사람을 위로할 줄도 모르고 어딘지 모르게 의존적인 사람을 싫어하게 되었다. 언제나 먼저 손을 내밀어 친구를 잘 돕고 무엇이든지 잘 나누어 먹던 내가 감정의 교류를 피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한번은 버스 정류장에서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깔끔한 외모의 군인을 받쳐주다가 내게로 온몸으로 쏠려오는 바람에 진퇴양난 고생을 하고는 다시는 술 취한 사람 옆에 가지 않았다. 그렇게 살다보니 일생에 세 번 스쳐지나간다는 사랑도 결국 짝사랑 전공으로 가게 되었다. 동아리 방에서 늘 만나는 선배가 좋아 죽겠는데도 늘 중간에 사람들을 넣어 함께 다니면서도 마음을 전하지 못했다. 선배는 온갖 염문을 다 뿌리고 청춘을 구가하더니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흐른 후에야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그제야 오랜 짝사랑을 말했더니 왜 좀 더 일찍 그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되묻는다. 그는 선비처럼 섬세하고 무사처럼 선이 굵은 사람이 아니었던가 보다. 아니, 남자들은 말을 하지 않으면 모를까? 사실 여름방학에 학교에서 집으로 보내온 엽서 한장을 보고 또 보며 나의 짝사랑을 키워갔는데, 그 엽서에는 교정에 매미가 울고 있다는 말 밖에 없었다  

 

 어쨌든 감정에 직면하기를 두려워했더니 사람의 마음이 자라나지 않았다. 이해의 폭도 줄어들고 사람관계도 많이 미숙해졌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분별은커녕, 그저 비난을 피하려고 남에게 휘둘려 다니기만 했다. 오직 착한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을 뿐인데 결과는 당나귀를 타고 가는 아버지와 아들처럼 되고 말았다. 착하게 산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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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4 09:50:59 *.252.144.139

우리 둘째 나영이가 울보에요.

오늘 아침에도 늦게 일어나서 학교 늦을까봐 울고 갔어요.

어제는 받아쓰기 점수 낮다고 울었구요.

그래도 나중에 크면 좌샘처럼 인정 넘치는 사람이 되겠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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