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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뫼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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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6일 02시 25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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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일요일, 아마 많은 분들께서 TV를 통해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를 시청하셨을 겁니다.

저 역시,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중계 도중, 역시 김연아 선수 잘하네, 를 외치며 온 가족 모두가 함께 시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경기를 생방송으로 보지 않고 끝나고 난 후 재방송으로 보았다는 것이죠. 결과를 알고 재방송인 줄 알고 나서 본 것이라 마음 편하게 보았지, 안 그랬으면 김연아 선수가 점프를 할 때 마다 모세혈관이 터져버리는 고통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생방송으로 경기를 실시간으로 보시는 분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사실, 제가 피겨스케이팅의 오래된 팬인 것을 여기에 조심스럽게 고백합니다. 어렸을 적, 동네 교회누나가 피겨스케이팅 선수였는데, 그 누나를 말없이 쳐다보았던 롯데 아이스링크에서부터 아마도 피겨스케이팅의 매력에 빠진 것 같습니다. 후에 그 누나가 피겨스케이트를 벗고 미국으로 유학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TV에서 피겨 경기를 중계할때면 그 '교회누나'가 생각납니다. 아마 그 누나도 이번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보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피겨스케이팅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아마도 그 ‘예술성’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음악과 동작, 그리고 기술이 일치 될 때 주는 짜릿한 감동은 한편의 예술 작품을 보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경기를 볼 때 마다 점프가 신경 쓰이긴 하지만, 점프의 기술력을 극복한 선수들이 마지막 동작과 함께 음악이 멈출 때, 바로 그 표정을 저는 유심히 관찰하곤 합니다. 그 표정 속에는 예술과 기술에 대한 오묘한 조합이 모두 드러나 보이거든요. 비록 점프나 스텝에서 완벽했다 하더라도 음악과 일치되는 집중력을 발휘했는지의 여부는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본인의 연기가 어느 정도나 되었는지에 대한 평가는 '키스 앤 크라이 존’에서 받게 되는 점수와 일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벤쿠버 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푸른색 드레스를 입고 거슈인 피아노 협주곡에 맞춰 했던 프리 스케이팅은 저와 제 딸이 함께 앉아 100번도 넘게 동영상을 돌려보았을 정도입니다. 이제는 점프와 스텝, 그리고 기술의 순서는 물론, 아나운서가 했던 말까지 전부다 외울 정도 입니다. 게다가, 다른 나라에서 생중계했던 동영상들을 유투브에서 검색하여 외국어로 시청을 하기도하여 덕분에 외국어 실력을 늘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김연아 선수는 우리나라에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피겨스케이팅에 나타난 '수퍼스타'임에 분명하지만, 타고난 재능과 성실함과 스타성을 어느 곳에 집중해야 하는지 잘 아는 영리한 선수이기도 합니다. 벤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해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모습 뒤로,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은 그녀가 이제 빙판에서 사라지나 보다, 하고 생각했을 겁니다. ‘금메달 획득’ 이라는 목표 달성 이후에 많은 스타 선수들이 그러하니까요. 그런데, 그녀는 여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갑니다. 과감하게 다시 올림픽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죠. 그리고, 다음 올림픽 메달 뿐 아니라, IOC 선수위원으로 출마 할 것이라는 당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다음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출전 안하니만 못할 것을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 것입니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다시 스케이트를 신도록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저는 그녀가 다시 '도전'하려고 마음 먹었다는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녀는 세계선수권 대회 복귀무대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에는 다른 선수들과 비교를 하면서 연습을 했는데, 이제는 제가 할 수 있는 것만을 하면 된다는 마음을 먹으니 더 편안하게 스케이트를 타는 것 같고, 결과도 더 좋은 것 같다.”

 

이제 그녀의 비교 대상은 다른 나라 선수들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인 셈이죠.

 

저는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시가 있습니다. 바로, 제가 아끼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인데요, 제목도 <김연아에게> 입니다. 이 시는 제 칼럼 마지막에 전문을 소개해 드릴텐데요, 그 전에 간단하게 이 시가 있는 <희망은 깨어있네>라는 책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해인 수녀님께서는 항암치료중인 2010년에 이 책을 출간하셨습니다.

 

정확하게는 암 수술 이후 방사선 치료 28번, 항암치료 30번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모진 암 투병 속에서 수녀님께서는, ‘오늘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이라고 생각하며 지낸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이 시집에 담겨있는 100여편의 시집은 그러한 ‘삶의 기적과 희망’에 대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의 제목만 보아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유리창 위의 새’, ‘행복한 풍경’, ‘작은 위로’, ‘상처의 교훈’,’ 위로자의 기도’,’ 위로의 방법’… 자, 어떠세요. 그 제목만으로도 벌써 우리는 위로를 받고, 행복해짐이 느껴지지 않으세요?

 

이 시집을 읽으면 가슴 찡해오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바로, 먼저 저 세상으로 먼저 간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덤덤하게 써 내려간 시들을 읽을 때가 그렇습니다. 서강대학교 영문과 교수이자, 수필문학가인 고 장영희 교수와 한국화가 김점선 선생을 그리며 쓴 시 <김전선에게>를 읽으면, 장영희 교수님의 글들과 김점선 화백의 그림들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김점선에게>

장영희 김점선 이해인
셋이 다 암에 걸린 건
어쩌면 축복이라 말했던 점선

하늘나라에서도
나란히 한 반 하자더니
이제는 둘 다 떠나고
나만 남았네요

그대가 그려준
말도 웃고
꽃도 웃는 나의 방에서
문득 보고 싶은 마음에
눈을 감으면
히히 하고 웃는
그 음성이
당장이라도
들려올 것만 같네요

 

 

 

언제나 ‘명랑’, ‘순수’, ‘파릇파릇함’이 늘 묻어 나오던 이해인 수녀님의 시가 이제는 삶의 고통과 아픔을 통해 기쁨과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수녀님께서는 책 머리에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덮친 암이라는 파도를 타고 다녀온 ‘고통의 학교'에서 나는 새롭게 수련을 받고 나온 학생입니다. 세상을 좀 더 넓게 보는 여유, 힘든 중에도 남을 위로할 수 있는 여유, 자신의 약점이나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여유, 유머를 즐기는 여유, 천천히 생각할 줄 아는 여유, 사물을 건성으로 보지 않고 의미를 발견하며 보는 여유, 책을 단어 하나하나 음미하며 읽는 여유를 이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레 미제라블’을 연기하는 동영상을 딸과 함께 플레이 시키면서 이해인 수녀님의 시 <김연아에게>를 음미합니다.

 

 

<김연아에게>

 

 

이해인

 

 

 

네가 한번씩

얼음 위에서

높이 뛰어오를 적마다

우리의 꿈도 뛰어올랐지

온 국민의 희망도 춤을 추었지

 

맑고 밝고 고운 네 모습

보고 나면 다시 보고 싶어

많은 사람들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웃음 속에 말하네

 

"이 아인 계속 소녀로 남으면 좋겠다

세월 가도 변치 않는

희망의 요정으로 남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선율을 타고

나비가 되고 새가 되고 꽃이 되는

그 환상적인 동작 뒤에 가려진

고독의 땀과 눈물을 잠시 잊고

우리는 모두 동화의 주인공이 되었지

 

그 순간만은 모든 시름을 잊고

한마음으로 기뻐하며 응원하는

너의 가족이고 애인이 되었지

 

오른손에 낀 묵주 반지 위에서

보석보다 빛나는 너의 기도를 사랑한다

영혼의 진주가 된 너의 눈물을 고마워한다

 

때로는 얼음처럼 차갑게

불꽃처럼 뜨겁게

삶의 지혜를 갈고 닦으면서

늘 행복하라고

우리 모두 기도한다

 

우리도 일상의 빙판을

가볍게 뛰어오르는

희망의 사람이 되자고

푸른 하늘을 본다, 연아야

 

 

 
* 이미지 출처 www.yes24.com

IP *.48.47.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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