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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뫼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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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5일 05시 32분 등록

길은 여기에 

  

L12.jpg

*이미지출처 www.yes24.com 

 

지난 토요일에 결혼식 사회를 부탁 받았습니다. 피아니스트인 후배가 동료 피아니스트와 결혼에 골인한 것입니. 우스갯소리로주례를 볼 나이에사회를 부탁받으니,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쑥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오랜만에 사회를 보니, 중간에 약간의 실수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즐겁고 유쾌한 결혼식이었습니다.

 

피아니스트인 신랑이 독주회를 하면, 매번 그의 연주를 경의에 찬 모습으로 바라만 보았던 저는, 그의 결혼에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었습니다. 결혼 전, 그 커플과 저녁을 함께 나누며, 둘은 참, 어울리는 한 쌍이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음악으로 하나 된 이 커플에게 왠지 어려움과 시련’, ‘아픔등은 어울리지 않고, 대신, 명랑’, ‘발랄함’, ‘쾌활함 어울렸습니다. 결국엔, 어떤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아 결혼식 사회를 멋지게 보아주는 것으로 마음을 전달해야겠다 싶었죠.

 

신부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 보통눈부신다는 상투적인 표현 이외에 저의 언어적 한계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결혼을 진심으로 바라는 신부의 환한 미소가 걸작이었습니다. 아주 어렵게 제게 사회를 부탁하던 그 신부의 모습이 아닌, 기쁨과 활기로 가득찬 신부의 모습은 사회를 준비하고 있던 저에게도 커다란 힘을 주었습니다.

 

사회 중간중간에 결혼식이 있던 호텔에서 나누어진 일반적인 순서지와 멘트를 좀 변형하여, 신랑과 신부에 대한 멘트들을 좀 더 생생히 넣어보았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동시에 입장을 할 때에는,

신부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이 결혼식에서만 이 모습을 보는 것이 좀 아쉽습니다.’

라는 멘트를,

그리고 축가를 마쳤을 때는,

이 아름다운 축가가 울려퍼지는 이 아름다운 홀을 제 스튜디오로 옮겨놓고 싶습니다.

또한,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커플을 이룬 신랑신부의 모습이 이 세상의 모든희망은 다 짊어 진 것 같습니다.’

라는 추임새를 넣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결혼식은 제 기억 속에 좀 오랫동안 자리잡을 것 같습니다. 주례가 없는 결혼식으로 진행이되었기 때문입니다. 결혼식의 순서지를 미리 받아서 읽어보니, 주례없는 예식이 진행한다고 되어있었습니다. 주례 대신에 덕담 겸, 축사를 해 주시는 것으로 대체되었고, 신랑과 신부도 동시에 입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순서지를 읽으며, 처음엔 좀 특이하다, 신선하다, 고 생각했으나, 이내 왜 그렇게 진행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결혼식 전, 양가 부모님께

"안녕하세요. 부모님. 오늘 사회를 맡게 된 선배입니다"

라고 인사를 드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신부의 아버님께서는,

", 그러세요. 오늘 잘 부탁 드립니다."

라며 인사를 하셨는데, 제가 서 있는 곳과는 다른 방향으로 인사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신부 아버님께서 앞을 보지 못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몇 초 걸리지 않았습니다. 신부의 아버님께서는 다른 분들을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 앉으셨고, 친척과 친구분들로 추정되는 분들께서 직접 아버님이 앉아계신 자리로 오셔서 손을 잡으며 인사를 나누며, 목소리로 확인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음악을 전공한 이 커플은 결혼식을 하나의 커다란 음악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결혼식 연주는 호른, 트럼펫, 트럼본, 튜바가 함께 한 '금관 오중주'로 진행되었고, 음악이 주는 황홀함이 홀 전체를 빛나게 했습니다. 호른으로 연주한 L.O.V.E., '천사의 날개 위에', 그리고 축가로 부르던 메조 소프라노의 그대 있음에’는 감동을 더해주었습니다.  축가의 하일라이트는. 3명의 동료 피아니스트들이 한 피아노에 앉아 연주한 모짜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서곡이었습니다. 결혼식은 완전히 하나의 독립된 콘서트처럼 진행되어, 나 또한 콘서콘서 진행하는 것 마냥 흥분되고 즐거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결혼식의 막바지. 신랑과 신부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는 순간, 나는 신부가 혹시 눈물을 왈칵 쏟아내지 않을까 염려되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시는 아버지를 보면 혹시 결혼한 딸의 심정이 절절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내 생각은 기류였습니다. 신부는 너무나도 당당하게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고, 아름다운 미소를 식이 마칠 때까지 잃지 않았습니다. 눈물 한 방울 없이 음악과 한데 버무려진 아름다운 콘서트 같은 결혼식이었습니다. 이내, 나 자신도 시각장애인과의 삶이 무조건 힘들고 고될 것이라는 선입견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랑과 신부를 보니 소설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꼬가 쓴 자전적인 소설 <이 질그릇에도>가 생각났습니다.  <이 질그릇에도>는 지어낸 소설이라기 보다 미우라 아야꼬 자신이 결혼하게 되기까지 그리고, 결혼한 이후의 본인의 삶을 자전적으로 담담하게 적고 있는 그녀의 자서전과 같은 책입니다.

 작가 미우라 아야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일본의 패망하면서 국가에 대한 고뇌와 실존적인 고민에 휩싸여 교사직을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척추 카리에스라는 병을 얻게 되었죠. 이후, 폐결핵과 카리에스의 합병증으로, 병원에 입원, 누워서 대소변을 받아내는 고통스러운 생활을 13년간 지속하게 됩니다. 그녀의 나이 23살때였습니다.  

감동적인 것은, 그녀가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절대로 현실을 비관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그녀의 병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합니다. 다른 환자와 공동으로 쓰는 병실에서 프라이버시가 전혀 허용이 되지 않는 병실에서도 그녀는,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마음을 담아 글을 써서 잡지에 송부하고, 잡지를 통해 함께 고통을 나누는 문인들과 지인들을 조금씩 알게 됩니다. 병실을 벗어나, ‘을 통해 희망을 전달하고, 세상과의 소통을 시작하게 됩니다.

새벽 한시.. 미우라 아야꼬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문득, 그녀가 병실에서 마음을 터놓으며 시작해서, 결국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지게 했던 마에까와 다다시와 함께 했던 시간이 주마등 처럼 스쳐지나갔다고 합니다. 자신이 죽는 순간이 닥치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에 지난 시간들이 영화 필름처럼 지나간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런 경험을 새벽 한 시에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자가 죽어가는 순간에도, 그녀는 똥오줌을 받아내며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고, 달려가지 못하는 그녀의 심정이 고스란히 이 책에 나타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한없이 무력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이 그녀는 후에 그녀가 투고한 시를 잡지에서 읽고 병실을 찾아 온 미우라 미쯔요를 알게되고, 그는 그 둘의 순결하고도 숭고했던 사랑을 알게 되면서 미우라 아야꼬에게 청혼하게 됩니다.

당신이 나을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기도하며당신이 나으면, 우리는 결혼하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병원에 있던 저자가 완쾌되기까지 5년 동안이나 기다려온 남편, 미우라 미쓰요와 결혼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린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자, 결혼 이후 그녀가 <빙점>을 통해 소설가로 우뚝 서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처절한 삶의 기록입니다. 작가는 어렵지만 부부 간의 지극한 사랑과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며 살아오다 잡화점을 경영하면서 쓴 소설 <빙점>이 아사히신문 천만 엔 현상모집에 1등으로 당선되기까지 묵직하게 그려냅니다. 여자의 눈으로 바라본 결혼의 모습을 적고 있지만, 읽다 보면,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의 삶을 그려볼 수 있는 귀한 책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 나는 어떤 믿음의 가장이 될 것인가, 가정에서의 신앙과 종교의 의미는 무엇이며, 믿음의 가정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둘 다 건강상의 조건이 그리 좋지 않은 부부가 서로를 사랑으로 보듬어 주며 살아가는 모습을 읽어 내려가며, 나의 지난 10년 결혼생활을 돌이켜 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아내에게 큰 상처를 주었었던 적도 있고... 훌륭한 결혼생활을 해 왔노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더군다나, 새로 결혼하게 된 피아니스트 부부도 서로의 아픔을 극복하고 아름답게 살아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아야꼬, 하나님은 우리가 잘 나서 써 주시는 게 아니야. 성경에도 있는 것처럼 우리는 흙으로 만들어진 질그릇에 지나지 않아. 이런 질그릇이라도 하나님이 쓰시려 할 때는 반드시 써주신다. 앞으로 자기가 질그릇임을 결코 잊지 않도록.”

                                                                                                -- 미우라 아야꼬 <이 질그릇에도>

IP *.216.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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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5 07:13:32 *.108.99.138

아내에게 큰 상처를 준 적이 있다고 하면, 다들 화려한 편력을 상상하게 된다네. ㅎㅎ

 

우리 세대에게는 너무 익숙한 작가지만,  재엽씨가 소개해 주니 신선하네.

그대의 독서세계가 얼마나 폭넓은지를 새삼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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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5 08:36:02 *.216.38.13

푸하하하.. 이 책을 읽으며 잠시나마 화려(?)했던 제 자신을 반성하며...

 

학생 때는 비현실적이라고 느꼈던 미우라 아야꼬의 묵직함과 진지함이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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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7 02:18:23 *.114.232.44

글이 아닌 목소리로 읽히네. ㅎ,ㅎ

좋은 글, 잘 읽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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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7 07:59:33 *.216.38.13

재잘재잘... ㅋㅋㅋ

아저씨의 수다를 들어보세염~~^^

고맙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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