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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9일 08시 15분 등록

화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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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기간 동안 쉬고 싶은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나, 직장을 다니나 마찬가지인가보다. 올해 설은 주말이 끼여있어서 연휴기간이 길지 않았다. 토요일, 일요일을 제외하면 월요일 하루만 보너스로 더 받았다. 회사를 경영하면서도 한편으로 연휴라는 공인된 휴식을 가지고 싶어하는 마음은 한가지 인 것 같다.

 

나는 본가와 처갓댁이 다 10분 안팎이라 새해 문안인사를 드리러 일찌감치 떠나지 않아도 되지만, 우리 직원들만해도 연휴 전날부터 날씨체크, 자동차 상태 점검에 부모님과 친지들 선물에 떡값을 챙기느라 분주하다. 연휴가 끝난 다음날이면, 연휴기간 동안 충분히 팔팔해진 나에 비해서 직원들은 다들 눈이 퀭해지고, 다크 서클에 점심을 거르고 잠을 청하기도 한다.

 

이번 설날은 모처럼 처갓댁에 모여서 화투를 치기로 했다. 사실, 나는 화투를 칠 줄을 모른다. 유학시절, 방학이 되면,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 남아있던 유학생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화투를 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나는 화투를 치는 방법을 적은 룰을 받아적고서 화투 치는 법을 익혔다. 그리고는 바로 실전에 돌입했으나, 화투장의 화려한 그림들이 다 비슷비슷해 보여서 결국에는 포기해버렸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의 기회가 있었으나 좀처럼 화투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화투를 치지 않기로 했던 이유는 소위 화투판이라고 하는 그 분위기에 있었다. 화투를 치는 사람들 특유의 왁자지껄. 커다란 목소리가 오가며 쌌다’, ‘광이다’ ‘할꺼야? 스톱할꺼야?’ 하는 소리에 나중에는 얼마씩 내라고 하는 명령까지.. 그 부산함 속에 끼여있지 않는 사람들은 당연히 소외 받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양반다리로 몇 시간씩 앉아있어야 하는 물리적인 고통까지 참아야 하는 것은 분명히 고역이다.

 

이번 처갓댁에서의 화투는 내 동서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연휴 몇 일 전부터 장인어른을 상대로 해서 판돈을 전부다 따겠다는 그의 다짐대로, 그는 의기양양했다. 화투를 치는 법을 모르는 나는, 사람들 틈에 끼여서 몇 번 하면서 배우면 될 텐데, 왠지 동서 주도로 한다는 것에 처음부터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게다가, 게임을 하는데, 자꾸 어떻게 하는 거야?’ 라고 물어보는 것도 왠지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처음부터 게임에서 빠졌다.  

 

게임에 빠지고 나니, 소외감은 더 커졌다. 그들이 ~’ 하고 지르는 소리하며, ‘ 1000원 땄다라고 소리치며 기쁨을 나누는 소리가 나에게는 의미 없는 괴성으로 느껴졌다. 그 소움은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는 정서방에게는 엄청난 폭력이었던 것이다. 화투 판이 벌어진 무리 뒤에서 하릴없이 혼자 TV를 응시하는 큰사위의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장모님께서는 계속해서 화투 판에 들어가라고 하셨고, 몇 번의 거절 후에는 말없이 곶감이며, , 사과를 혼자 먹으라며 가져다 주셨다.

 

왜 나는 그 판에 끼어들지 않았을까.. 왜 그들과 어울리며 즐거움을 나누지 않았을까.. 내가 끼어들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그들이 불편해 했을지도 모를 그런 행동을 왜 했을까집에 오는 길에 화투를 치지 않아서 불편했지?’ 라고 물어보는 아내도 계속해서 내 눈치만 살폈다. 왜 나는 내 자신이 화투를 치지 않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경계를 긋고 나만의 독자 행보를 선택했던 것일까.

 

오정희의 소설 <저녁의 게임>을 보면, 부녀간에 화투치는 장면이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된다. 주인공은 악성 빈혈에 시달리는 노처녀이고, 아버지는 위장을 잘라 내고 정기적으로 인슐린을 주사를 맞아야 하는 노인이다. 그들은 매일 저녁식사 후에 뒷면만 보아도 훤히 알 수 있는 화투를 가지고 게임을 한다.

 

식탁에는 여덟 장의 화투가 현란하게 깔려 있다. (…) 아버지는 곁눈질로 내 패를 흘깃거렸다. 나도 화투장을 움켜진 채 단단히 진을 친 아버지의 것을 넘겨보았다. 굳이 넘겨다볼 것까지도 없었다. 뒷면만을 보아도 무슨 패인지 환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로로 비스듬히 금이 가 있는 것은 난초 다섯끗, 왼쪽 귀퉁이가 둥글게 닳은 것은 목단껍질, 오른쪽 모서리가 갈라진 것은 멧돼지가 그려진 붉은 싸리 열끗이다. 뒤집어들고 있는 것보다 그림이 그려진 앞면을 서로 상대방에게 보이는 것이 속임수가 가능할 만큼 아버지와 나는 화투장의 뒷면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저녁의 게임> 속 화투놀이는, 서로가 속임수임을 알면서 벌이는 연극이며, 거짓말인 줄 알면서 나누는 대화는 소통되지 않는 부조리극을 연상시킨다. 여기서의 화투는 설날에 다 함께 하는 왁자지껄과는 거리가 멀다. 침묵을 대신하는 화려함에 그 이미지는 더 깊고 충격적이다.

 

어느 날 문득 가출해버린 오빠로 인하여 주인공과 아버지는 심한 충격을 받는다. 오빠가 없는 집에서 주인공은 그동안 느끼지 못한 채 집 곳곳에 배어져 있는 오빠의 존재를 확인하며 놀라고 아버지 역시 하루에 열 번 정도는 우편함을 열어 보고 화투패의 운수를 떼면서 오빠를 기다린다. 공연한 기다림으로 서성대는 아버지를 주인공은 공범끼리의 적의와 친밀감으로, 그리고 언제든 준비되어 있는 배반감으로 지켜보는 것이다.

 

씻은 그릇들을 찬장에 넣고 앞치마를 벗으며 돌아서자 아버지는 늘어놓았던 화투패를 모두었다.

뭐가 떨어졌어요?”

손님이다.”

아버지는 심드렁하게 내뱉었다.

 

화투를 치며 오빠에 대한 기억 못지않게 나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어머니의 비극적인 삶이다. 기형아를 낳은 뒤 아이를 살해한 뒤 정신병으로 기도원과 정신병원에 갇혀 지내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주인공은 빠르게 화투장을 넘긴다.

 

일상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한 주인공은 화투놀이를 하는 도중 들려오는 낯선 남자의 휘파람 소리를 듣고 집 근처 공사장으로 나간다. 일종의 신호였던 것이다. 낯선 남자와 자학적인 정사를 벌인 뒤 방에 돌아온 주인공은 책상서랍을 열고 어머니가 보낸 편지를 읽는다. 비로소 어머니의 죽음의 실체가 드러나고 나는 나 자신의 가장 깊숙한 곳과 만난다.

 

<저녁의 게임>은 무의미한 일상에서의 탈출 욕망과 현실의 좌절에서 오는 존재의 허무와 비극을 너덜너덜해진 화투 게임을 빌어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에 평론가 김치수는 이 작품을 보고 드러난 것과 숨겨진 것, 부재와 기다림, 삶과 죽음을 가지고 존재의 비극을 드러낸다,”고 하였다. 사소한 이야기 가운데서 생의 진실한 공감을 캐내는 작가 오정희는 이 작품을 통해 화투놀이 한 장면으로 삶의 본질을 탐색하는 놀라움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여전히 나는 왜 내가 선뜻 화투판에 끼어들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탈출구를 찾지 못한 주인공이 들려오는 낯선 남자의 휘파람 소리를 듣고 공사장으로 나갔던 것처럼, 연휴가 주는 편안함 속에서 느껴지는 지루함과 놀 줄 모른다는 현실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반항의 심리가 아니었을까.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화투 치는 법이라 찍으니 상세하게 검색된다. . 이제 나도 일상의 탈출을 벗어나 삶의 왁자지껄함 속으로 빠져들어가 볼까. 

 

아버지는 고지서를 식탁의 모서리에 던져놓고는 당당히 화투를 잡았다. 그리고는 피라미드형으로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맞은편에 턱을 받치고 앉아 늘어놓는 화투장을 하나씩 젖혀가는 아버지의 손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화투하나를 가지고 혼자서 할 수 있는 혼갖 게임을 다 알고 있다.

뭐가 떨어졌어요?”

님이 떨어지고 산보가 떨어졌다.”

아버지는 문득 다정하게, 그러나 음침하게 빛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어지럽니? 피곤해 뵈는 구나. 들어가 자거라.”

빈 들을 질러오는 휘파람소리는 어둠을 뚫고 더욱 명료하게 들려왔다. 아무래도 화투를 새걸로 한 벌 장만해야지. 패를 알고 하는 게임은 재미가 없어.

- 오정희 <저녁의 게임>

 

 

 

 이미지 출처:  http://www.mun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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