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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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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5일 19시 24분 등록

 

‘무려 철학 박사’ 강신주의 팟캐스트 강의 ‘다상담’에 빠져 지냈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몰입하게 했을까? 철학자의 통찰이었을까? 가려운 곳을 알려주고 게다가 긁어주어서? 곰곰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다. 강신주의 강의와 상담에 푹 빠져 지낸 나에 대한 호기심이 답인지도 모르겠다. 다음과 같은 상담에 대한 나의 반응을 들여다보는 것이 흥미로웠다고나 할까. 물론 답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문제가 뭔지는 알게 되었다. 그거면 됐다.

 

***

 

저는 서른여섯 살의 여성입니다. 네 살짜리 아이와 그 아이의 아빠가 되는 사람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 남편이 저보다 어리고 순한 사람이라 ‘땡잡았다’는 생각에는 변함없이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애 걱정 안 하고 회사를 다닐 수 있는 여건도 되고요. 아이의 아빠도 젊고, 여행도 다니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봄이 되면, 저는 발정난 개처럼 변합니다. 몸이 이상하게 반응을 하고, 갑자기 연애를 너무나 하고 싶어집니다. 열아홉 살 여고생이 된 것 같아요. 지난해에는 이 시기를 못 참고 12년 전에 짝사랑했던 대학교 후배를 만나 그때 너를 좋아했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왜 봄만 되면 이럴까요? 다들 이러고 사나요? 이런 건 별 문제 안 되는 건가요?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지르고들 사나요?

 

결혼 제도라는 건 사실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어요. 영원할 수 없는 것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려는 불가능한 시도니까요. 하나의 사랑이 하나의 꽃이 핀 것이라고 비유해 보지요. 이렇게 핀 꽃을 박제해서 영원히 고정시켜 놓으려는 불가능한 시도가 바로 결혼이라는 것입니다. 봄을 화사하게 수놓는 벚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벚꽃이 지지 않고 계속 피어 있는 것 보셨어요?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벚꽃이 아니라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造花)일 겁니다. 사랑의 기간은 꽃이 피어 있는 기간과 유사한 것이지요. 어떤 사람과 함께 능숙하게 서로를 연주하며 나도 악기이고 그 사람도 악기인 관계가 지속되는 기간, 이것이 사랑이니까요.

 

벚꽃이 피었다는 것이 중요하지, 벚꽃이 지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죠. 마찬가지로 사랑이 시작되어 활짝 절정에 이르렀다는 것이 중요하지, 그것이 얼마나 지속되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약속은 폐기할 수 있을 때 약속이라고 합니다. 약속을 할 때 완전한 구속이 된다는 건 사실 이상한 거예요. 두 사람이 손을 잡았을 때, 한 사람이 빼면 끝나는 거예요. 그런데 결혼이라는 건, 법적으로 강한 구속을 해 놨잖아요. 그러니 이상하죠. 이분은 건강하신 거예요. 이분은 지금 남편과 아이가 있는 가족이라는 틀 안에 있기 때문에, 이런 생각들이 일종의 불륜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겁니다.

 

근본적인 이야기를 합시다. 잘 살려면, 남을 신경 쓰지 말아야 돼요. 니체의 책 중에 <선악을 넘어서>라는 책이 있어요. 선과 악을 넘어가겠다는 거예요. 여기서 선악은 굿Good과 에빌Evil이거든요. 선과 악은, 사회적 가치관이고 신의 명령이죠. 나와 무관한 거예요. ‘이래선 안 돼. 이건 사악한 짓이야’ 이렇게 말하는 게 선이에요. 니체는 <도덕의 계보학>에서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선악을 넘어선다는 건, 사회적 가치 평가와 통념으로 살지 않는다”라는 거라고요. 자기감정을 어기고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자기감정에 당당한 사람이 삶의 주인이에요. 타인을 위해 자기감정을 억누르는 사람은 대개 노예들이에요. 여러분들은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배려라고 생각한다고요. 기껏 배려한 게 권력자들에 대한 배려예요. 그건 배려가 아닙니다. 자기감정을 거슬러서 살면, 그때부터 삶이 불행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니체가 선악을 넘어서 내 입장에서 보라고 하는 겁니다. 타인이 정한 행복과 불행이란 기준이 아니라 나만의 행복과 불행이란 기준으로, 일체 검열하지도 않고 쫄지도 말고 당당하게 자신의 감정에 따라 판단하라는 겁니다. 니체가 말한 굿과 에빌을 넘어서 굿Good과 배드Bad를 선택한 사람은 사회적 통념과 싸울 거예요. 그런 사람을 니체는 초인이라고 부릅니다. 초인은 더럽게 힘들죠. 완전한 자기 삶의 주인인 거예요. ‘나만의 굿과 배드라는 판단에 의해서 산다.’ 이 사람은 사회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게 더 이상 중요하지가 않죠. 니체의 초인이 그런 의미예요. 그래서 초인이라는 말에는 외로움이랄까, 무엇인가 비극적인 뉘앙스가 깔려 있어요. 발버둥이니까. 타인의 욕을 들어 가면서까지 자신으로 살려는 절절한 발버둥이니까요.

 

‘굿/에빌’과 ‘굿/배드’ 이 차이가 애매하시다면, 비유를 하나 들어 볼까요? 어떤 사람을 만났다고 해 보세요. 그 사람과 키스하고 싶습니다. 이 경우 내 입장에서 키스하는 것은 ‘굿’이고, 키스하지 못하는 것이 ‘배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부모님이나 목사님은 결혼하지도 않은 남녀의 키스 등 육체적 관계를 ‘에빌’이라고 하고, 육체적 관계를 피하는 것을 ‘굿’이라고 할 겁니다. 만일 부모님과 목사님이 제안한 ‘굿/에빌’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키스하려는 나 자신의 감정을 부정해야만 합니다. 이럴 때 우리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어요? 키스하고 싶은데 키스도 못하잖아요. 당연히 ‘굿/에빌’을 넘어야 ‘굿/배드’라는 솔직하고 당당한 관계가 가능할 수 있을 거예요.

 

[비교를 하면 신랑이 더 나아요. 그래서 같이 사는 데에는 문제가 없는데 자꾸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와요.]

 

비교한다는 것은 건강한 거예요. 항상 비교하셔야 돼요. 어떤 사람에게만 절대적인 사랑을 요구하는 사람들 있죠? 절대적이지 않아요. ‘절대’라는 말을 버려야 돼요. 이 세상에 ‘절대’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항상 비교하셔야 돼요. 그리고 그 비교를 상대방에게 이야기해도 좋아요. ‘옆집 아저씨에 비해서 네가 배가 많이 나온 것 같은데?’ 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아요. 항상 비교하는 거예요. 우리의 모든 형용사는 비교예요. ‘당신은 너무 멋있다’는 말에는 ‘무엇보다’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는 거예요. 우리의 모든 가치 평가는 비교에서 와요. 그러니까 절대적일 수 없죠. 단지 확실한 건, ‘당신은 멋져요’라고 한다면, ‘내가 만났던 모든 사람보다 지금 당신이 더 멋져요’를 말한다는 거예요. ‘앞으로도 영원히 멋질 거예요’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요. 더 멋진 사람이 나타날 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들이 니체가 말한 초인의 길로 갈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인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얼마만큼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사랑하는지의 문제고요. 덜 사랑하면 할수록 굿과 에빌, 선과 악의 가치 기준에 따라 사실 겁니다.

 

 

- 『강신주의 다상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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