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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5일 00시 19분 등록

 

범해 좋은 사람들 3

나는 지금 웰다잉 중이다   

 

 

   사람이 음식을 끊으면 죽을 수 있다. 불치를 선고받거나 충분히 삶을 누렸다고 생각하는 노인들은 가끔 곡기를 끊어 생을 마감한다.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쓴 헬렌 니어링의 남편 스코트 니어링이 그랬다. 그는 100세가 되던 해에 음식을 거절함으로써 스스로 삶을 마무리했다. 평생 같은 곳을 바라보며 자연의 순환논리에 맞춰 살았던 아내 헬렌은 그를 이해했다. “나의 남편에게 죽음은 단지 성장의 마지막 단계이자 자연적이고 유기적인 순환을 의미했다. 그는 끝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날이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기를 바랐다”. 그녀는 자신도 남편처럼 생을 마감하고 싶었으나 불행하게도 교통사고로 92세에 생을 마감했다.

 

  나의 삶은 52살이 되기까지는 굴곡없이 순조로웠다. 그러나 어느 나이가 되니 갑자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는 일이 많아졌다.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아들이 막 군대에 갔을 때 내게 첫 번째 위기가 다가왔다. 암에 걸린 것이다. 철이 없어 아직 아이로만 보이던 아들을 이 세상에 남겨놓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서러웠나 모르겠다. 길에서 꺼이꺼이 울었다. 모든 살아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유감보다 미완성으로 두고 가야 하는 다 자란 어린놈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예비 사망선고 같았던 암 수술은 다행히 잘 끝났고 5년이 지나 나는 암 생존자로 등록되었다. 죽음만을 생각하다가 삶을 되돌려받으니 그제서야 비로소 봄과 꽃이 눈에 들어왔다. 새 삶을 받은 후에는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고 내게 다가오는 인연을 소중하게 가꾸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캐나다에서 찾아온 누이를 맞아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지난날을 즐겁게 회고하던 남편이 누이를 배웅하러 일어서려다 주저앉았다. 너무나 놀라서 119를 부르고 허둥지둥 병원 두 군데를 거쳐 마침내 남편의 친구가 있는 병원으로 갔다. 뇌출혈이었다. 그 밤에 7시간이 넘는 수술을 하고 새벽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구급차를 타고 가며 반쪽 몸을 일으키려 애를 쓰던 모습이 그가 보여준 마지막 선택이었다. 그 후 4개월을 병원에서 보내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생을 마감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죽음에 대한 공부도 없이 갑자기 들이닥친 이 일로 너무나 정신없이 헤맸으므로 나는 뒤늦게 죽음을 공부하는 사람이 되었다. 매일 아침저녁 단 30분의 면회가 허용되던 중환자실 입원 기간 동안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티베트의 지혜만을 읽고 또 읽었다. 아무도 내게 앞일을 가르쳐주지 않았고 나는 생각해놓은 것도 없었으므로 매일 이 책을 읽고 또 읽으며 죽음을 따라갔다.

 

그렇게 두려운 죽음과 만났다. 갑자기 죽음에 맞닥뜨렸을 때 왜 이 세상에 죽음에 대한 책이 없는지, 이럴 때 무엇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하고 투정을 부렸다. 국회도서관에 가서 죽음을 검색해보니 이 세상의 모든 책이 반은 삶을 말하고 반은 죽음을 말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100권도 넘는 책을 읽고 칼럼을 썼다. 아니 기록해두었다. 공부 끝에 지금 당장 나의 죽음을 위하여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지 알게 되었다. 우리 어머니는 세월에서 쌓인 지혜로 윤달에 수의를 마련했고 당신의 묘도 오래 전에 준비했으며 아이들에게 사후의 일을 부탁해두었다. 어머니의 마지막은 맑은 정신으로 천수를 다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나의 운명을 모른다. 다만 이런 일이 앞으로 필요하리라는 예측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의 죽음이 웰다잉(well-dying)'이 되도록 이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두려고 한다.

 

우선 나는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전의료의향서를 한 장 써두었다. 한국죽음학회에서 나온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이라는 책을 보면 양식이 있다. 모든 병원에서 다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내 생각을 내가 말할 수 있을 때 해두면 마음을 놓을 수 있다. 그리고 주변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어머니는 환갑을 넘기고 한 번 아프시더니 바로 옷장을 정리했다. “내가 죽은 다음에는 아무도 가져가지 않을 거다하더니 몇 벌만 남기고 모두 다 이웃에게 나누어주었다. 결국 20년을 더 살아서 새 옷을 사야만 했다. 나도 옷장을 비우려고 한다. 불필요한 욕심이 너무 많았나 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애착이 가는 물건들이 많아서 정리 과정이 오래 걸린다. 어머니의 남은 옷도 큰딸인 내가 다 가져왔다. 이제 나는 사시사철 두 벌씩만 남기고 다 나누려고 한다. 책이 제일 걱정이다. 미처 읽지 않았기에 버릴 수 없는 책이 많다. 책을 정리해서 모두 도서관에 맡겨두려고 한다. 벌써 정리가 끝났어야 하는데 같은 고민들이 자꾸 되풀이되는 것이 안타깝다. 단식 캠프에서 여러 날 단식을 하고 속을 비워보니 음식이 모두 맛있고 고마웠다. 바로 이런 기쁨일 것이다. 웰다잉으로 가는, 다 내려놓은 마음은 그래서 더욱 고귀하고 소중하다.

 

앞으로는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일이 더 드물어질 것이다. 죽음은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떼어놓고, 홀로 고독 속에서 삶을 시작할 때처럼 혼자 가야 한다.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85세에 죽어가는 자의 고독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 아직도 우리가 죽어가는 사람이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에 대해서 직면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정말 필요한 일들이 어둠에 묻혀 있다고 말했다. “죽음은 인간의 진화단계의 특정단계이며 또한 죽음은 한 인간의 절대적 종말이다. 죽은 자는 소멸되며 다만 산 자가 가지고 있는 기억들로 존재할 뿐이다라는 것이 이 사회학자의 결론이다.

 

산 자의 기억 속에 남아, 죽은 자가 산 자와 함께 산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나의 일을 기록하는 일을 지금 하고 있다. 처음엔 부모님을 기리기 위해 나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으나 이제는 아이들을 위해 자기 역사를 기록하기로 했다. 아마 내가 겪은 일들을 기록해두면 나중에 아이들은 그들이 기억하는 사건에서 생생하게 살아나 문제 해결법과 생의 기쁨을 말하는 나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나의 웰다잉은 부모님을 이어받아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이다. 아마 세월이 가면서 또다시 깨우치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때는 내 기록을 다시 수정하면 된다. 평범한 사람의 역사는 스스로 기록함으로써 세상에 남는다. 아이들은 이야기로 나를 기억하고 나는 그들과 함께 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지금까지 생각해둔 나의 웰다잉의 과정이다.

 

      < 삶이 보이는 창 > 기고문, 20139.

 

 

 

IP *.201.99.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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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5 20:15:01 *.108.69.102

앗!   사이트에 수시로 들어오는데도 좌샘 글을 처음 보았네요. ㅠ.ㅠ

1,2편도 읽어 볼게요.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는 '죽음'에 대한 공부, 좌샘 글을 통해 시작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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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6 07:50:36 *.201.99.195

범해의 재발견....ㅎㅎㅎ

 

나는 일요일 새벽에 글을 올리기로 했어요.

일요일의 작가이지요.

 

삶과 죽음은 일란성 쌍둥이 랍니다. 많이 닮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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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6 09:53:02 *.252.144.139

그래서 선생님이 죽음에 대한 책을 쓰시려 하는구나.

이제 그 책이 세상 밖으로 나올때가 된 것 같아요.

올 가을에 연구소 차원에서 북페어가 있다고 하니 꼭 참여해 보세요.

좋은 결과 있을 거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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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7 07:08:49 *.201.99.195

재키야, 내가 최근 몇년동안 죽자고 노래 불렀는데...이제야 알았다는 거임?

<사랑, 그놈> 말고 <책, 그놈>은 때가 되면 제발로 걸어 나가겠지?

아님, 책 그눔짜식....땅을 파고 묻어버리지 뭐!

오늘 아침 기운생동이다. ㅎㅎ  추석 잘지내라, 재키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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