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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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8일 19시 27분 등록

인터뷰룸에서 만난 그녀는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2년만의 인터뷰 기회라고 했다. 유능한 물류전문가였던 그녀는 다니던 외국계 기업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를 결정하면서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손도 많이 가고 자신도 재충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시점이라 일단 가정에 충실하며 향후 기회를 엿보기로 했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그녀의 나이는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공백이 길어서인지 그녀에게 취업의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경단녀(경력단절여성). 사람들은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나는 그녀에게 4개월 계약직 포지션을 제안했다. 외국회사에서 본사의 감사를 준비하기 위해 함께 일할 사람을 찾고 있는데 단기 계약직이라 하겠다는 후보자를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우선 경단녀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라고 그녀를 설득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일단 업계에서 경력을 쌓게 되면 다른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 내 논리였다. 다행히 그녀는 인터뷰에 통과해 그 회사에서 4개월간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계약기간이 만료되자 회사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다시 전업주부로 돌아간 그녀에게 드디어 행운의 여신이 손을 내민 것이다. 그녀가 그 회사의 물류 담당자가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는데 회사에서는 그 후임으로 그녀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마지막 관문인 현재 아시아 퍼시픽 시장을 총괄하는 리젼 매니저의 인터뷰를 앞두고 있다. 워낙 성실하게 맡은 바 업무를 잘 해냈던 터라 한국 지사에서의 인터뷰 과정은 모두 패스한 채로. 나는 그녀가 그 자리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경단녀에서 영영 탈출하여 전문가의 경력을 다시 쌓아갈 기회가 드디어 그녀에게 온 것이라고 확신한다.  

 

구직 현장에서 만나는 후보자들 중에는 계약직에 대해서 유난한 과민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직업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고용 안정인 모양이다. ‘어떻게 나에게 그런 자리를 제안할 수 있냐고 따져 묻는 사람들도 있다. 계약직으로 일해왔기 때문에 정규직이 아니면 절대 지원하지 않겠다는 구직자도 있다. 본의 아니게 계약직으로 일하다 보니 이력서가 매우 어지럽게 되었다며 이번에는 기필코 정규직으로 취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바람과는 반대로, 요즘은 계약직 포지션이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외국회사의 경우에는 1년 계약직으로 근무 후 성과 평가를 통해 정규직 전환 여부를 결정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철저한 검증을 통해 오랫동안 함께 할 인재를 선발하려는 채용 전략이다. 또 다른 경우는 본사로부터 인재 채용 허가를 받기가 어려운 외국기업이 취하는 전략이다. 현업 부서에서는 일이 많으니 사람을 뽑아달라고 아우성이고 본사의 허가는 떨어지지 않을 때 계약직 직원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마지막으로 정규직 직원에게 지급해야 하는 각종 혜택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계약직을 채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회사들은 주로 파견회사 소속의 파견직 직원을 활용하는데 이들은 계약 종료 시점에 대부분 회사를 떠난다.

 

커리어 컨설턴트로 후보자에게 계약직이라도 취업을 권하는 경우는 명확하다. 긴 경력 공백이 있거나 실무 경험이 적을 때다. 대표적인 경우가 경단녀들이다. 임신과 출산, 육아의 과정을 겪으며 장기간의 경력 공백이 있다면 계약직이 아니라 더 열악한 조건이라도 일단 받아들여야 한다. 떨어진 업무 감각을 끌어 올리고 최신 트랜드를 익히는 시간이 분명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이는 많지만 실무 경험이 적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학을 여러 곳을 다녔거나 해외에서 장기 유학을 했거나 자격증 취득 등 다른 일을 하느라 경력에 비해 나이가 많은 후보자들은 기업에서 채용을 꺼린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조직에서 나이는 암묵적인 규율을 잡아주는 존재다. 우리사회가 능력에 따른 승진과 보상이 점차 일반화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나이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 이런 후보자들은 일단 어디든 들어가고 봐야 한다. 계약직이라도 실무 경험을 쌓고 업무 능력을 인정받으면 더 좋은 기회들을 잡을 수 있다. 계약직이라고 무조건 꺼리다 보면 공백만 길어지고 취업은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개 계약직과 정규직을 가르는 기준이 학력이나 경력 등의 스펙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의외의 경우를 많이 만난다. 특히 스펙보다는 역량을 중요하게 평가하는 외국기업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내가 진행한 모 외국기업의 계약직 구매 담당자 포지션의 경우, 외국대학 졸업자를 제치고 순수 국내파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인터뷰를 마친 채용 담당자는 국내 대학 출신자가 해외 유학파 보다 훨씬 영어를 잘 한다고 평가했다. 탈락한 후보자는 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유수의 기업에서 단기 경력을 쌓았던 사람이었는데 현재는 통번역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하니 정말 중요한 것은 스펙이 아니라 업무 능력과 전문성인가 보다.

 

기회를 잡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계약직을 전전하면서 정규직이 아니면 안 가겠다고 버티는 사람도 있고 계약직으로 들어가 정규직 자리를 꿰차는 사람도 있다. 그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 구본형이 지은 세월이 젊음에게라는 책에서 힌트를 얻어 보자.

 

병을 고쳐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의료업은 좋은 직업이다. 그러나 매일 아픈 사람들과 살아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의사나 간호사는 그저 고된 직업일 뿐이다. 기업과 투자자에게 어디서도 얻지 못하는 고급 정보를 제공해 준다고 생각하면 회계는 수준 있는 직업이지만, 평생 숫자와 함께 지루하고 바쁜 일상을 반복해야 한다면 그것은 지겨운 일이다. 정비소에서 기름때 묻은 작업복으로 다른 사람의 차나 고치며 밥 벌어 먹는다고 생각하면 그 일은 고되고 박한 것이지만, 내가 가는 그 정비소의 젊은이들은 늘 웃고 친절한 걸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그러므로 일의 가치는 객관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에 대한 태도가 곧 그 일의 가치를 결정한다. 나는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좋다 

 

그렇다. 차이는 일을 대하는 태도다. 당신이 계약직이라서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대하는 태도가 딱 그만큼이기 때문이다. 혹시 이런 마음은 아니었을까.나는 계약직이니까 여기까지만. 이 정도면 충분해사실 정규직과 계약직의 차이는 거의 없다. 정규직이라도 1년 일하고 떠나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면 1년 계약직과 무엇이 다를까? 계약직이지만 업무 능력과 전문성을 인정받아 신뢰할 수 있는 인재로 자리 잡는다면 정규직 전환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빈자리를 항상 나기 마련이다. 이때 조직은 능력과 인성이 검증된 인재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당신이 계약직을 전전하는 이유가 혹시 당신이 일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 아닐지 오늘은 곰곰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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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재키제동은 15년간의 직장 경력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경력 계발에 대해서 조언하는 커리어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재클린 캐네디의 삶의 주도성을 기반으로 김제동식 유머를 곁들인 글을 쓰고 싶은 소망을 담아 재키제동이란 필명으로 활동 중입니다. 블로그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꿈, 나의 인생 http://blog.naver.com/jackie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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