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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뫼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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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2일 04시 28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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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www.yes24.com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변화경영연구소에 부고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1기 연구원이 부친상을 당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연휴 전날이라 교통체증이 시작되는 시점이었습니다. 홈페이지에는 설 연휴를 앞두고 비보를 알리게 되어 죄송하다는 연구원의 이야기도 함께 올라와 있었습니다. 저는 업무가 끝난 시점에 동기 연구원들과 연락을 취해 고인이 계신 은평장례식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 연구원은 통기타에 김광석의 노래를 늘 맛깔나게 불러, 연구소에선 그의 성을 따, ‘오광석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몇 년 전, 그가 첫 책을 출간했을 때였습니다. 당시만해도 저는 선배 연구원들과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아 어색한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저에게 그 선배 연구원은 책에 이렇게 써 주었습니다.

 

 재엽씨. 재엽씨의 아름다운 열정이 보기 좋습니다. 재엽씨의 첫 책을 기다릴께요.’

 

그 일을 계기로 저와 연구원은 급속도로 친해졌고, 저는 호칭을선배에서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습니다.

 

영정사진 속 고인은 환하게 웃고 계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조문을 받고 있던 선배 연구원의 얼굴이 너무나 창백해 보여 장례식장에 있던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연휴 시작 전날이라 어려운 발걸음을 하게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는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촉촉하게 배어있었습니다.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이는 그의 모습 뒤로 아버지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묻어있었습니다. 

 

장례식장을 나와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길에 날카로운 바람이 불었습니다. 언덕길 눈바람을 가로질러 자전거를 함께 타고 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사이좋게 자전거를 타는 부자의 모습에, 저는 장례식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던 고인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내 연구원 선배의 수척한 얼굴이 겹쳐졌습니다. 그 위로 소설가 김소진이 쓴 <자전거 도둑>이라는 작품이 소복히 쌓여있는 눈과 같이 제 머릿속을 흩날렸습니다.

 

김소진의 소설 속 아버지는 가난하고 못났으며 세상으로부터 늘 모욕당하는 존재입니다. 주인공인 아들은 비참한 아버지의 모습을 면전에서 지켜보며 절망하지만, 어느새 조금씩 그런 부모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소설 <자전거 도둑>,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고전영화, <자전거 도둑>과 맞물려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영화에서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필요한 자전거를 도둑맞고, 도리어 그 자신이 자전거 도둑이 되어 꼬마 아이들 앞에서 봉변을 당합니다. 소설 속는 가끔씩 이 영화를 돌려보며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곤 하는 존재입니다. 소설 <자전거 도둑>의, 영화 <자전거 도둑>의 주인공인, 또다른 '브루노'인 것입니다.

 

혹부리영감의 커다란 도매상에서 자질구레한 물건을 떼어다 구멍가게를 꾸리며 겨우겨우 살아가던나의아버지는, 어느 날 몹시 억울한 일을 당한 후 영감의 도매상에서 소주 두 병을 훔치게 됩니다. 그러나 혹부리영감은 대번에 눈치를 채고 아버지와를 돌려세웁니다. '겁에 질린 송아지처럼 눈에 흰자위가 유난히 많아진 아버지의 눈동자'를 본 나는, 소주 두 병을 더 넣은 것은 자신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맙니다. 그러자 혹부리영감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거래를 끊진 않을 테니 대신, 자신이 보는 앞에서 손버릇 나쁜 자식을 제대로 손을 봐주라.”고 말입니다. 결국, '아버지의 손이 부들부들 떨며 허공 높이' 올라가 주인공의 뺨을 때리고 맙니다.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그에게 굽신거린 다음 (…) 내 뺨을 기세 좋게 올려붙였다. 그러나 이 지독한 연극을 지켜보면서 나는 아픔을 거의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머릿속에서 뭔가가 맑아지는 느낌뿐이었다. 그리곤 투시해버리고 말았다.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의 눈 속에 흐르지도 못하고 괴어 있는 눈물을. 차라리 죽는 한이 있어도 애비라는 존재는 되지 말자. 아마도 나는 그때 그런 끔찍한 다짐을 했는지도 모른다.

 

세상과 돈 앞에 부모가 굽신거리는 모습을 보게 되는 참담한 순간들마다, 김소진의 소설은 제게, 그러나 나의 부모가 진정으로 세상에 진 것을 아니라고 말해주곤 합니다. 아버지의 잘못을 덮어주려 거짓말을 한 자식을 때리는 부모의 마음은 이 세상을 떠날 만큼 아팠을 것입니다. '부모'는 세상과 타인에게 모욕을 당하고, 눈물을 손으로 씻어내리고, 이 가혹한 세상에서 비굴한 밥벌이를 하면서도, 강한 생명력으로 자식들을 위해 끝내 먹여 살리는 그런 존재인 것입니다.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승리자의 모습일지 모른다고 작가는 저에게 이야기합니다. 영화 <자전거 도둑>이 오랜 세월을 넘어 흑백화면 너머로 숱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듯, 김소진의 소설은, 초라한 풍경들 속의 부모님에 대한 덤덤하고 묵직한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김소진의 <자전거 도둑>은 가장 초라한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임과 동시에, 가장 자랑스러운 부모님의 이야기이도 합니다.

 

34살에 생을 마감하며, 여덟 권의 책을 세상에 발표한 작가 김소진은, 세상 앞에 모욕당한 부모를 둔 자식이, 그런 못난 부모를 부끄러워하고 외면해본 적이 있는 자식이, 더 질기고 길게 부모를 기억하고 있다고 말해줍니다. 아마도 선배 연구원은 아버지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할 것입니다. 설 연휴 전날에도 그와 함께 책을 논하며 밤새던 후배 연구원들의 모습과 이제 그가 또 펼쳐낼 아름다운 책들을 아버지께 자랑하겠지요. 장례식장에서 자전거를 함께 탄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저는, 버스를 탈 때까지 응시하였습니다. 그들의 모습 위로 하얀 눈발이 지속적으로 날렸습니다. 포근하고 조용한 겨울 밤 풍경이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영화를 볼 때 마다 난 무엇보다 외로움을 느꼈다. 아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아버지의 권위를 깡그리 무시당한 안토니오의 무너진 등이 견딜 수 없어 콧등이 시큰해졌고, 그보다는 무너져 내리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목격해야 하는, 그럼으로써 평생 씻을 수 없는 내면의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갈 어린 아들 브루노 때문에 나는 혀를 깨물어야 했다.

? 왜냐고? 그건…. 빌어먹을, 내가 바로 또다른 브루노였으니깐……”

 

- 김소진 <자전거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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