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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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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12일 05시 59분 등록

나의 삼촌 에밀리

 

L.jpg

 

 

 

 

여기, 한 편의 시를 선사합니다.

 

사랑은- 생명 이전이고

죽음- 이후이며-

천지창조의 시작이고

지구의 해석자

 

어떠세요? 시라기보다는 짧은 경구와 같지요? 이 시는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작품입니다. '사랑'이야말로 ‘천지창조의 시작이고 지구의 해석자'라고 정의한 에밀리 디킨슨은 55살로 생애를 마감할 때까지 시에 대한 열정으로 모든 것을 바친 시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일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한 번도 앰허스트를 떠나지 않았으며, 자기 집 대문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녀는 이웃에 있던 오빠네 집조차 가지 않고, 그녀가 사랑했던 조카들도 그녀를 만나려면 2층 창문에 신호를 보내 2층에서 보자는 승낙을 받아야 했다고 합니다. 조카들을 위해 과자를 구우면 접시를 끈에 매달아 창밖으로 내려다줄 정도로 폐쇄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이 책 <나의 삼촌 에밀리>는 동네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이런 에밀리 딕킨슨과 조카 네드의 작은 에피소드가 담겨있는 아름다운 책입니다. 에밀리 딕킨스 사후에 편지에 기록된 것을 보면, 실제로 1881년에 일곱 살짜리 조카 토마스 길버트에게 죽은 벌과 시를 주고서 선생님께 갖다 드리라고 했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뒤영벌 (둥그스름한 몸에 더부룩한 털로 둘러쌓인 대형 꽃벌)이 실제로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고 합니다. 조카에게 자신을 ‘삼촌’이라고 불리기 좋아했던 그녀는, 아이들에게 늘 시를 선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폐쇄적인 삶에서도 조카들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문학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에밀리 디킨슨의 생애에서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는 아마도 그녀가 30대 후반부터 죽는 날까지 고수했던 흰색 옷일 것입니다. 이러한 고립된 생할과 흰 옷을 고수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연구자들은 그녀가 아마도 몇 번에 걸쳐 열렬한 사랑에 빠졌고, 그런 사랑의 경험에 비롯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지만, 그녀가 절실하게 사랑했던 것이 누구인지는 아직까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어느 날 우리가 정원에서 식탁에 놓을 꽃을 고르고 있을 때, 에밀리 삼촌에 선생님께 드리라며 내게 죽은 벌 한 마리와 시 한편을 내밀었어요. 에밀리 삼촌은 가끔 이런 식이에요. 작은 벌 한 마리와 짧은 시 한편에서 내가 세상을 보기를 바라지요. 자신을 삼촌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내 고모에요. 전혀 삼촌같지도 않고요. 하얀 긴 드레스를 입고 담배 같은 건 절대 피우지 않으니까요. ‘삼촌’은 우리 가족기리의 농담이에요. 마치 벌이 우리 두 사람, 에밀리 삼촌과 나 사이에서 통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 <나의 삼촌 에밀리> 중

 

이 그림책은 에밀리 디킨슨의 유명한 시 “말하라, 모든 진실을. 하지만 비스듬히 말하라"를 중심으로 자유 형식의 시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이 책의 저자인 제인 욜런은 은둔 시인 에밀리 디킨슨과 그녀가 애지중지하던 어린 조카 길버트 사이에 실제로 있었던 일을 이야기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고모를 삼촌이라고 부르는 건 그들 가족끼리의 암호랍니다. 일곱 살 길버트가 에밀리 삼촌에게서 선생님께 갖다 드리라며 죽은 벌 한 마리와 시 한 편을 받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길버트는 엄마의 부탁에 따라 삼촌이 써 준 시를 학교에 가져가고, 선생님이 교실에서 시를 읽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도 에밀리 딕킨스의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죠. 나중에 운동장에서 길버트는 시를 써준 에밀리 삼촌에 대해 못된 말을 한 녀석과 한판 붙게 되는 사건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다치고 집에 돌아온 길버트는 왜 다리를 저는지 가족들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데, 그 시를 쓴 에밀리 삼촌이 길버트가 모든 것을 말하도록 도와주게 됩니다. 그녀의 시처럼 ‘결국에는 진실에 돌아와 닿게’ 된답니다. 그날 학교에서 벌어진 일을 모두 다 솔직히 가족들에게 털어놓았을 때, 길버트는 에밀리 삼촌과 그 시에 대해 뭔가를 몸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도 잘 알게 되었지요.

 

이 책은 다음의 시로 마무리 합니다.

 

말하라, 모든 진실을, 하지만 말하라, 비스듬하게-

성공은 빙빙 돌아가는데에 있다.

우리의 허약한 기쁨에게 너무 밝은

진실은 엄청난 놀라움이니.

마치 친절한 설명으로 천천히

아이들의 눈을 밝히듯

진실도 차츰차츰 광채를 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장님이 되고 말 것이니.

 

디킨슨은 19세기 당시에는 전혀 시인으로 알려져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 생전에 어렵게 설득해서, 혹은 몰래 서너 편의 시가 발표 되었을 뿐, 몇몇 가까운 친척들을 제외하고는 그녀가 시를 쓴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죽은 후에 그녀의 서랍장에 생전에 쓴 약 2천여 편의 시가 차곡차곡 챙겨져있었다고 합니다.

 

제인 욜런은 이 책을 통해 에밀리 딕킨스의 일면을 한 편의 시와 같이 아름답게 그려냈습니다. 읽는 내내 저에게도 에밀리 삼촌처럼 시를 사랑하고 마음속의 진실을 얘기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버트가 갈등하고 있을 때 가만히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해. 이야기 속에서 진실이 드러나도록 말이야." 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말입니다. 누군가가 에밀리 삼촌처럼 이야기 해준 다면, 자신이 가졌던 생각이 그르지 않음을 스스로 알게 되고 진실을 말할 용기를 낸 자신도 자랑스럽게 될 것입니다. 시를 통해서 진실을 말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품어줄 수 있는 것, 우리는 그런 시를 읽으며 위안을 얻게 됩니다.

 

 

(이미지 출처 www.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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