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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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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1일 17시 11분 등록

 

1년에 딱 한 번, 뜨거운 계절에만 누릴 수 있는 작지만 큰 여유시간. 바다로 갈까 산으로 갈까 누구랑 갈까 고민할 것도 없었다. 고3 딸아이 덕분에 몽땅 생략하고 집에서 보냈다. 아무 계획도 없는 그저 멍한 시간. 요거요거 시작은 괜찮았다. 소파에 누워서 영화도 보고 드라마도 보고 뮤직비디오도 보다가 잤다. 책을 보다가 자고 팟캐스트 강의 듣다가 자고 배달음식 먹다가 자고 술에 취해서 자고 잠이 안 깨서 다시 자고 또 자고 주야장천 잤다. 잠귀신이 씌었는지 시도 때도 없이 자고 또 잤다. 그리고 아무 때나 먹어댔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조절할 수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내버려두었더니 몸은 정직하게 돼지가 되었다.

 

시간적인 여유만 생기면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친구도 만나고 혼자 여행도 떠나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도 다시 들여다보고 지금의 내 모습을 돌아보며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를 두드려댈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저 잠순이였다. 아무 생각도 없이 자고 또 잤다. 나이 먹으면 잠이 준다는데 난 회춘을 한 것인가. 금쪽같은 휴가에 멍하니 그저 게으른 시간을 보내고야 말았다. 그리고선 한다는 일은 거울을 보면서 피식 웃는 것뿐이었다. 그럴 수도 있지 뭐 어때 하는, 이 게으른 여유, 이건 또 뭔가. 이것도 나이가 주는 선물인가. 뭔가에 쫓기듯이 자는 시간도 아까워서 벌벌 떨던 30대와 비교하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뻔뻔해지나 보다. 돼지가 되어버린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고 까르르 웃어줄 수 있다니 말이다. 가면을 벗은 쌩얼의 나를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그런 나를 욕해도 그 화가 오래가지도 않는다. 물론 기억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것도 한몫한다. 다행인가. 언젠가부터 잊고 싶은 건 빨리 잊는다. 그러고도 남아있는 것, 그것을 들여다보게 된다. 실은 지금 내게 남아있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잊을 거 다 잊고 뺄 거 따 빼고 진짜 내게 남은 것, 남의 것이 아닌 내 것, 나만이 가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바로 그것, 그걸 알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잠순이 돼지가 되어버린 이번 휴가에서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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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2 05:15:57 *.152.83.4

푸하하.

미영의 글은 너무 솔직해.

언제나 그런 순진난만함이 멋지지.

그래서 우린 항상 같이 하는 일기야.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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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8 20:13:14 *.50.146.190

글쎄, 데이트는 언제 하냐고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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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7 12:52:42 *.193.138.248

늘 일하는 모습만 봤는데 휴가라니. 잘 댕겨 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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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8 20:14:41 *.50.146.190

ㅎㅎㅎㅎㅎ

잘 쉬었어요. 어찌나 좋던지요.

아무래도 쉴려고 일하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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