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연구원의

변화경영연구소의

  • 승완
  • 조회 수 2976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2년 10월 29일 07시 29분 등록
 

* 본 칼럼은 변화경영연구소 1기 연구원 김미영 님의 글입니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 남편과 설악산에 다녀왔다. 나무들의 죽음이자 부활인 단풍을 보러 백담사 가는 길을 걸었다. 눈부시게 예쁜 덧없음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앞다퉈 그 장관을 보러 모여든 사람들도 어찌나 많은지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푸른 잎들이 빨갛고 노랗게 물든 화려한 죽음, 그 앞에서 그저 감동했고 가슴 벅찼다. 거기선 그랬다.

 

그런데 여기 이곳은,

 

또 떨어졌단다. 죽음이 일상이 되어버린 오늘이다.

산다는 게 뭘까, 하는. 죽음을 선택한다는 게 뭘까, 하는. 오래된 물음을 던져보지만 답은 없다. 아니 모르겠다. 나는 그저 오늘도 어제처럼, 언제나 그랬듯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하루살이처럼 살아갈 뿐이다. 돈 걱정에 일 스트레스에 그래도 당분간은 이리 살자 하며 더 이상의 고민 없이 거울을 보며 웃는다. 시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문득 씁쓸하다.

 

얼마나 살고 싶었으면 죽었을까? 어떻게 살고 싶었기에 차라리 죽음을 선택했을까? 죽으면 그 좋은 천당에 간다고 믿는 사람들도 선뜻 선택하지 않는 죽음을, 고층 아파트의 그는, 그녀는, 왜 선택했을까? 죽음보다 더 싫은 게 뭐였을까? 죽음이 절실한 선택이었을까? 무슨 용기로 뛰어내렸을까? 아파트 단지에 경찰차와 구급차가 바삐 지나가고 사람들은 모여들어 수군거린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리며 까만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저 무심하다.

 

고통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해 겨울, 나도 16층 베란다에 서 본 적이 있다.

 

얘가 바람을 폈대

7월부터 만났구

올해까지만 만나려구 했대

도덕 선생님 같은 얌전한 강아지 였더라구

 

어떻게 알았냐고 묻더군

글쎄 말이야

나도 내가 한 짓이 후회스러워

담에 또 그럴 일 있으면 차라리 현금서비스를 받아서 쓰더라도 카드 긁구 다니지 말라고 했지

 

처음 만난 곳 잤던 곳 영화관 다 같이 가보자구 했어

그리고 어머니께 가서 말씀드렸지

시어머니 울면서 하시는 말씀

'너는 그동안 뭐했니?'

 

나도 내게 묻고 싶은 말이었어

각서를 받으시더군

어머니 가지시라구 했어

 

나 지금 죽고 싶을 뿐이야

난 이제 뭘 어쩌면 좋지?

내가 뭘 한참 잘못 살았나봐

아니 지금까지는 그렇다고 해도 앞으로 난 이 일을 어쩌지?

이건 이건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거든

 

나 이렇게 아이들이랑 남아서 울지도 못하고 담담한 척 하면 안 될 텐데

가슴이 이렇게도 무너져

내가 이렇게도 하찮게 느껴질 수가 없어

그냥 멍해

아이들 치료 중인 치과에 가서도 주루룩

주방에 서서 주루룩

나 혼자서 뭘 어쩌지?

 

그해 겨울, 아파트 16층 베란다 앞, 그 찰나의 시간에 떠오른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나도 모를 일이다. 아직 어린 두 딸이 나를 살렸다. 그 시절의 나는, 나보다 술을 더 좋아하는 남편이 싫었다. 그래서 미워했다. 그리고 남편은 그런 나 때문에 더 술을 마셨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나를 견디지 못했다. 그렇게 다른 여자를 만났고 나의 사랑은 끝났었다.

 

한때는 나를 거의 죽음 상태로까지 몰고 갔던 사람인데, 나는 지금 그를 다시 사랑한다. 아니, 사랑하고 싶다. 이 사랑은 대체 무엇인가. ‘죽고 싶다’는 말 대신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말로 바꾸었으니, 그렇다면 말 그대로 부활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사랑이 성취되었는지 어떤지는 인생이 끝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리라.

 

굶어 죽지 않아도 사회의 부조리한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삶은 척박하고 사람들은 칼날 위에 선 것처럼 위태롭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에 분노를 품고 있지만 어디에 터뜨려야 할지,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른다. 인생은 잠시 행복해 보이다가 이내 불행해 보인다. 슬픈 현실이다. 누군가는 죽어가고 누군가는 단풍놀이를 다니고 누군가는 사랑을 하고 누군가는 또 살아가고.

 

오늘 나는 무척 혼란스럽다.

어른, 이 그리운 세상이다.

 

- 김미영 mimmy386@hanmail.net

 

 

IP *.226.204.114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