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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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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3일 06시 51분 등록

* 이 글은 변화경영연구소 5기 연구원 이승호님의 글입니다 (2009.07.09)

 

약관(弱冠)의 나이 20대 초반 시절. 당시 나는 대학 생활의 낭만과 함께 1981년 MBC 대학가요제 입상곡인 김한철님의 ‘스물 한살의 비망록’이라는 노래를 흥얼 거리고 다녔었다. ‘귀를 기울여요 바람타고 스며드는 신문팔이 아이의 새벽 알리는 소리. 잠깨는 풀꽃에 이슬돋는 소릴 들으며 오늘을 생각하리’로 시작되는 시적인 멜로디에 경쾌한 가락이 덧붙여지는 노래였다. 막걸리 한잔이 들어갈 때면 양희은님의 ‘아침이슬’과 함께 이노래는 자연스럽게 터져 나왔었고 방황하던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이립(而立)의 나이 서른살. 조직생활을 통해 조금은 세상에 대한 쓴맛을 알아갈 즈음 고김광석님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와 함께 했다. ‘또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로 시작되는 가사가 고김광석님의 개성적인 목소리와 멋들어지게 어우러지는 가운데 나의 서른은 그렇게 지나갔다. 서른 두 살이 되었을 때 누가 이런 말을 하였다. 달력을 보면 31일까지 숫자가 되어있는데 이제는 본인의 나이만한 숫자가 세상에는 없다는 멘트를.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에대해 대수롭지않게 여겼었는데 이말을 듣자 철모르는 나도 조금은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서른 아홉 십이월달. 남의 일로만 생각을 하고있던 삼십대의 마지막 젊음. 말로만 듣던 마흔을 넘어가기 위한 자그마한 홍역을 치루고 있었다. 왠지모를 우울함, 40대에 대한 걱정, 불안감, 책임감 등등.

 

  드디어 불혹(不惑)의 나이. 남들이 말하는 중년으로 접어드는 나이 아저씨라고 표현되는 나이에 이르렀다. 예전 80평생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딱절반을 살아온 시간. 이제는 인생에 대한 존재에 대한 췌취가 더욱 묻어 나오는 나이. 이시기에 들어서니 다음과 같은 특징의 몇가지 변화가 주어졌다.

 

1. 아! 이름이여

  마흔살 언제였던가. 지하철을 갈아타고 전화를 걸기위해 번호를 누르려는 순간 상대방의 사람 얼굴은 기억이 나는데 핸드폰 번호가 떠오르질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좀체 기억이 나질않아 결국은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일일이 찾아볼수 밖에 없었다. 처음 느껴보는 경우라 그때의 황당함의 충격은 컸었다. 이것이 마흔에 접어든다는 신호인것 같아 씁쓸함도 함께 느껴졌었지만 그뒤로도 이런일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 누구의 얘기대로 비극이 아닌 잊어버림에 대한 새로운 기억에 대한 충만으로 기억해야 할지.

 

2. 한때는 나도 팔팔 했었었는데 

  남자들이라면 한번쯤 경험해 보았음직한 술내기. 나는 대학교에 들어와서야 정식적으로 술을 배우게 되었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여러 선배들과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덕분에 여러 취향의 선배들의 모습을 볼수 있었다. 젊음의 객기로서 소주에다 밥을 말아먹는분, 빨대로 소주를 마시는분, 도수를 낮추기 위해 맥소롱을 타서 드시는분 등등. 덕택에 나도 그대열에 합류를 하였고 직접 모임도 만들었었다. 우주회(雨酒會)라고. 말그대로 비오는 날이면 만나서 술먹는 모임이었다.

  원래 잘마시지 못하는 술이었지만 회사의 영업부 생활을 하면서 이 주량은 증감을 하였다. 특히 경남권 지역을 담당 하였을 때는 그 주량이 피크를 이루었다. 거래처 조직원들이 술을 좋아 하였던 탓에 매출이라는 지상과제를 안고있던 나에게는, 그 술로써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고 여겨졌었다. 덕택에 매주 3박4일 출장을 가서 밤늦도록 나는 거래처분들 그리고 술과 함께 하얀 밤을 지새웠었다. 말그대로 악이다 깡이다 먹었었는데 그래도 30대의 체력은 저력으로써 버텨내어 주었다.

  이러던 체력이 마흔 고개가 넘어가자 어느덧 2차, 3차 고지는 자제아닌 자제를 하게 만들어 주었다. 의식적인 자제보다는 체력이 따라주지를 못하였던 것이다. 마실땐 마시더라도 다음날 근무할 때의 데미지가 생각보다 컸었다. 그래서인지 요사이는 어르신분들이 벗들을 만날 때 반주로 술을 한잔씩 하시는 것이 눈에 들어오곤 한다. 그럴때면 술을 오랫동안 조금씩이라도 저렇게 즐기시는 모습들이 참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자연히 건강관리를 하여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막걸리 술이 나오면 아직도 주체를 못하고 있다. 철이 덜든건지, 낭만파인지.


3. 노래 취향이 달라졌어요

  앞서 20대와 30대시절 개인적으로 포크송 계열의 좋아하는 노래를 소개 했었는데 이 취향이 마흔에 들어서니 자연스럽게 변해갔다. 어느날 출장길 휴게소에서 일어난 일이다. 고속버스가 정차하는 휴게소 내에는 음악을 틀어놓으며 영업을 하는 곳이 있는데, 어떤 노래가 나오자 자연스럽게 나는 흥얼거리기 시작했고 발도 장단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러다 무심코 어떤 노래인가 생각을 해보니 트롯트 장르였다. 세상에~ 트롯트에 내가 자연스럽게 반응을 하게 되다니. 연세드신 분들이 좋아한다는 트롯트에 젖어드는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이 들자 솔직히 나의 마음은 울적해졌다. 하지만 사실 20대 젊은분들이 좋아한다는 랩이란 것들이 귀에 박히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 트로트 가사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멜로디가 이어진다. 흔히 말하는 관광버스용 메들리 노래에는 추임새도 이어진다. 그럴때면 나도 모르게 아이 좋고 아이 좋아를 외친다. 이런 나의 모습을 남사스럽다고 해야할지.


4. 좁쌀 영감이 되어가유

마눌님 : ‘승호씨, 요새들어 왜그렇게 잔소리가 많아져? 그냥 넘어가도 될일을 가지고.’

나 : ‘내가 어쨌다고? (씩씩 대면서)’

마눌님 : ‘지금도 그렇잖아. 나이가 들어가니까 점점 더하네.’

나 : ‘......’

  최근들어 부쩍 마눌님에게 듣는 소리이다. 남자에게는 데스토스테론 여자에게는 에스트로겐 이라는 성장 호르몬이 있다. 이것은 남성을 남성답게 여성을 여성답게 해주는 호르몬이다. 그런데 이것이 마흔이 넘어가면 조금씩 역전이 되길 시작한다. 즉, 호르몬 등의 영향으로 인해 남성은 여성화 경향이 나타나고 반대로 여성은 남성화 경향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젊을 때 아내를 꽉쥐고 살았던 남편들도 이시기가 되면 역전이 되는 경우들을 우리는 왕왕 볼수있다. 이런 영향 탓인지 남성은 점점 집으로 회귀하는 본능이 더욱 나타나고 여성들은 모임 및 사회로의 진출을 활발히 진행한다.

  여성화의 상징의 하나로 나에게는 이것이 잔소리로 나타나는것 같다. 공자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미혹되지 아니한다고 하여 불혹(不惑)이라고 명시 하셨건만, 요사이는 작은 것에 더욱 민감해지는 나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조금씩 세상을 더욱 알아가고 더욱 대범해야할 나이에 오히려 좁쌀 영감같은 이런 반응이 나타나다니.

 

  삶에 대한 무게가 더욱 느껴지고 그로인해 소시민적인 생활로 이어지는 하루하루의 날들. 당장 살고있는 집값에 신경을 쓰고, 가스비와 전기세 인상 뉴스에 더욱 마음이 가는 현실속의 나. 한때 정치에 대해 시국에 대해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열변을 토했던 나의 모습은 이제는 아련한 빛바랜 사진속의 모습으로 퇴색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아직도 나의 열정과 생산적인 에너지는 여전히 남아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천천히 삶의 두루마리를 펼치는 것이라고 했던가. 아직 그려지지 않은 그리고 그려 나가야할 싸부님이 언급하신 ‘Big Picture'를 위해 나는 오늘도 밤을 새운다. 으라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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