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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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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4일 16시 01분 등록

6기 연구원 박미옥님의 칼럼입니다.

 

한 남자의 사랑스런 아내

두 아이의 지혜로운 엄마

유능한 생활인

 

현실에서 소화하려고 애쓰는 나의 배역들이다. 잇따른 행운과 영악한 처신으로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계약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의 축복이었다. 하지만 계약은 끊임없이 갱신된다. 주어진 역할들을 얼마나 훌륭히 소화하느냐에 따라 배우로서의 나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배역은 어디까지나 배역일 뿐 배우로서의 가치가  인간으로서의 존재가치를 대체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 모든 역할들을 수행함으로써 최종적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내 존재의 본 모습은 무엇일까? 언젠가부터 '스스로의 기쁨으로 세상을 기쁘게 하라'라는 벡터에서 삶의 구동력을 얻고자 애쓰고 있지만 실제로 현실의 역할들 속에서 나는 얼마나 나답게 기능하고 있는 걸까?

 

여행은 기회였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그동안 생활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스스로 정한 수많은 터부를 넘어보는 방식으로 나의 현재를 진단해보기로 했다. 나를 떠나 마셨고,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피웠으며, 스스로에게조차 감추고 싶었던 상처와 속살을 기어코 헤집어 내놓았다.

 

해방감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흉내내는 것과 몸을 던지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경험이었다. 현실감이 결여된 꿈이기에 '로망'이라 불리던 일탈, '로망'이라 불렸기에 한없이 목마르기만 했던 신기루중 대부분은 가짜였지만, 그 중 몇 개는 진짜 나에게로 연결된 깊은 오아시스라는 느낌이 들었다. 현실에서 풀지 못한 모든 문제의 답을 내기에 열흘은 턱없이 짧았지만 가짜 로망을 솎아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여기에서 멈출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여행에서 찾아낸 일탈의 샘물이 달콤할수록 두 가지 종류의 이율배반적인 질문의 세트가 집요하게도 나를 공격해왔다.

 

하나의 질문 세트 : 이토록 아름다운 자유를 일상으로 가져갈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존재가 갈망하는 자유를 허용할 수 없는 일상이란 말 그대로 억압 그 자체가 아닐까? 어차피 일상에서 의미를 배정받을 수 없다면 애써 발견한 존재의 유물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것이 다였다면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여행전과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정반대 방향에서 치고 들어오는 또 한 세트의 질문목록의 기세 또한 만만치 않았다.

 

두번째 질문 세트 : 견고하게 나를 기다려줄 일상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내가 이토록 거리낌없이 일탈을 향유할 수 있었을까? 검증되지 않은 영역으로 소중한 나를 보내는 발걸음이 가뿐할 수 있었던 것은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정감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색다를 것 없는 음료와 연기와 몸짓에 어마어마한 '자유'를 부여하는 오버는 튼튼한 일상을 갖고 있는데 대한 은근한 우월감의 다른 표현은 아니었을까?

 

여행에서 돌아온 지도 사흘이 넘었지만 나의 의식은 아직도 일상에 착지하지 못하고 지중해와 서울 사이를 배회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질문세트를 해결하지 않고는 무엇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에 아직도 풀지 못한 짐과 어지러운 집을 남겨두고 늘 가던 카페를 찾았다. 카페에 앉아서도 한참을 커피만 축내다 드디어 마음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는다.

 

충분히 마셔보지 않았던 것도, 피워보지 않았던 것도, 마음껏 나눠보지 않았던 것도 아니잖아. 하려고 들었다면 선택권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그것들을 현실에서 밀어냈던 이유는 무엇이었니? 결국 불쾌한 여운을 남기는 것들을 하나둘씩 제거한 결과가 지금의 현실을 구성하고 있는 거잖아. 누리는 기쁨보다는 치르는 고통이 더 크다고 판단해 기꺼이 물리쳤던 자유였잖아. 그래서 좋았잖아. 흡족했잖아.

 

이번 여행을 통해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믿고 싶었던 것 중에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구? 그래? 그렇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줄께. 자신있다면 도전해 보렴. ,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 자유에는 언제나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는 맥빠지게 평범하지만 뼈져리게 아픈 변함없는 진실 말야.

 

하지만 너무 겁먹을 것도 없어. 어차피 네가 연기하는 현실의 그 역할들도 결국은 모두 진짜 네가 되어가는 과정일 뿐이잖아? 기쁘게 누리고 또 당당히 치뤄내는 것도 성장을 위한 피할 수 없는 과정일지도 모르니까. 어때? 도전해 보겠니?

IP *.1.16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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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5 10:25:40 *.220.23.67

맥빠지게 평범하지만,

뼈저리게 아픈 변함없는 진실..

 

결국.....^^ 

쵝오야..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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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6 09:42:12 *.1.160.32

^^*

 

이글을 쓴지도 1년하고 6개월이나 지난 지금.

다시 보니 저도 새로운 느낌이었어요.

 

오늘같은  1년6개월 뒤가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더라면

조금은 더 편안하게 나와 세상에 대한 실험을 즐길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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