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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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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7일 04시 26분 등록

이 글은 한명석 2기 연구원이 쓴 칼럼입니다 (2009.9.5)

 

 

 


제인 구달이 26세에 처음으로 탄자니아에서 연구를 시작할 때의 일이다. 어느날 그녀는 숲속 빈터에 침팬지가 한 마리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다가갔다.  손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는데도 그 침팬지는 달아나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침팬지를 만지지는 않고,  그대신 손을 뻗어 종려열매 하나를 내밀었다고 한다.



침팬지는 침착하게 그녀와 종려열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열매를 잡더니, 그것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리며 그녀의 손을 아주 살짝 잡았다. 제인 구달은 그 때, 녀석이 종려열매를 원하지는 않지만 자신을 신뢰하고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허락하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녀석은 그녀가 이름을 지어 준 첫 번째 침팬지가 되었다. 그 때까지 기존의 연구자들은 아무도 침팬지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1호, 2호 하는 식으로 번호를 붙여서 관찰하고 연구했을 뿐이다. 그러나 제인 구달은 침팬지 한 마리 한 마리를 개체로서 존중하고, 우정을 가지고 접근했다. 그것이 사십 년에 걸친 기념비적인 연구가 가능했던 핵심인지도 모른다.



나는 제인 구달과 침팬지가 만나는 첫 장면에 사람과 사람의 첫 만남에 필요한 요소가 전부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사람과 친해지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낯선 제인 구달이 다가갔을 때, 침팬지는 달아나지 않았다. 심심했든지 사람을 좋아했든지 호기심이 많았든지 어쨌든 녀석은 인간의  접근을 허용한 것이다. 그 때 침팬지가 달아나 버렸다면 둘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과 마찬가지이다.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낯가림이 심하거나 관계맺기가 귀찮거나 어렵다고 생각해서 은둔하는 사람은 영영 사람에게 다가갈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다.



일단 만난 다음에는 첫 인상이 중요하다. 사람이 어떤 사람을 판단하는 데에는 4초면 충분하다든가. 그 짧은 순간에 외모와 분위기, 목소리와 매너를 판단해서 인상을 결정짓는다니 얼마나 아찔한가. 그래서 옛 사람들이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첫인상에서는 종합적인 지적 능력보다도 비주얼에 대한 순간적인 느낌이 더 중요한 것이다.  첫인상에서 받은 느낌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그 몇 배에 해당하는 정보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니, 첫 만남에서 최선의 인상을 주기 위해서는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이 필요하다.  다행히도 만남이 지속되면서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약해진다고 한다.



제인 구달이 처음부터 침팬지를 만지려고 덤비지 않고 종려열매를 내민 것도 주목할 만하다. 처음에 너무 강하게 접근하거나 서두는 사람은 반감을 살 우려가 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본 모습을 보일 기회를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인간관계에는 아주 완만한 접근이 필요하다. 서둘기 보다는 진정성을 전달하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 진정성! 뭐니뭐니해도 만남에 있어서 진정성을 전달하는 방법은 주목과 경청이 아닐까? 은은한 미소를 띠며  나에게 눈을 맞추고 내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을 거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침팬지조차 제인 구달의 눈을 쳐다 보았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제인 구달이 침팬지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부분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이름은 그 사람의 고유한 것이다. 제인 구달이 모든 침팬지를 똑같은 것으로 치부하거나 연구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았듯이, 우리에게도 그 사람의 고유함을 알아보고 불러주는 혜안이 필요하다. 사람의 마음을 사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그 사람이 자랑스러워 하는 부분을 칭찬해 주는 것이다. 상대방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부분을 알아채기 위해서는, 경청과 관찰하는 습관은 물론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는 감정이입의 능력이 필수적이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내 잣대로 상대를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말고 상대의 마음이 되어 본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새 역사가 시작된다. 진정어린 눈빛으로 내게 다가오는 저 사람을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더구나 그는 자기 스타일을 쏟아 붓거나 강요하지 않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살펴 보고 있다. 나에게 눈을 맞추고, 내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들으며, 내 마음을 헤아려 보려고 애쓰고 있다.  나를 이해하고 알아봐 주는 저 사람이 좋아서 가슴이 설레인다. 저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것이 어디까지 계속될 지 아무도 모른다.  첫 마음을 놓지 않고 서로 신뢰하며 서로 배운다면, 우리도 찬란하게 빛나는 우정의 탑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제인 구달이 사십 년에 걸쳐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이룩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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