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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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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9일 00시 35분 등록

이글은 4기 이한숙 연구원(loishan@hanmail.net)의 글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
아타킴 온 에어 프로젝트


오늘 평소 보고 싶었던 전시회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KTX를 타고 부산에 문상을 다녀온 나는, 집에 가는 버스를 타려고 삼성 본관 앞에 서 있었다. 빛이 쏟아지는 도로는 30도에 가까운 열기로 후덥지근하였다. 그 때 나의 눈에 들어온 로뎅 갤러리 배너 하나. ‘아타 김 <온 에어> 사진 전시회!’ 이 작가, 얼마 전 현대 미술 잡지에 실려 내 눈길을 사로잡은 작가다. 밤을 새고 기차를 타고 상경한 터라 집에 가서 눈좀 부치고픈 생각 밖에 없던 나는 0.1초도 망설이지 않고 표를 샀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창의적인 작가를 만났다.

 

들어가는 입구에 전시된 '최후의 만찬'부터 사람을 압도한다.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이 작품에는 13사람의 남자가 나체로 포도주와 빵이 놓인 테이블 앞에 앉아 있다. 각각의 사람 이미지는 선명하지 않다. 한 사람 한 사람은 13사람의 중첩된 이미지이다. 하나 속의 여럿, 여럿 속의 하나, 거기에는 나와 너의 경계가 사라졌다. '아타(我他) 김', 그의 이름 역시 하나의 상징인 것을 깨닫는다. 다음 사진은 '사천왕상', 8개의 사천왕상 사진을 겹쳐서 만든 작품이다. 다음은 만다라 시리즈의 '부처', 작가는 부처의 이미지를 위해 500여명의 사람을 만나고 그 중에 60컷 사진을 찍어 15컷만 골라 중첩을 했다고 한다.서로 다른 이미지가 겹쳐 전혀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 이미지 역시 선명하지 않다.

 

이쯤 되면 온 에어 프로젝트의 중요한 기술이 중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왜 중첩이라는 방법을 이용하여 이렇게 모호한 이미지를 얻어내는 걸까. 왜 원래의 이미지는 모두 사라지게 하는 것일까. 조금 더 가 본다. 이번엔 섹스 시리즈가 펼쳐진다. 첫 작품은 섹스를 하는 남녀 사이에 차가운 유리 판이 놓여있다. 중첩을 이용한 탓에 남녀의 나체 역시 선명하지 않다. 둘 사이에 놓여진 이 차가운 유리판은 아마도 남녀(나아가 인간)의 완전한 일치가 가능한가를 묻고 있는 것 같다.

 

그 다음은 다른 포즈로 섹스하는 남녀의 사진이다. 15 커플이 실제 섹스하는 모습을 한 시간 동안 관찰하면서 찍은 사진, 15컷을 중첩한 작품이다. 이미지는 사라지고 두 사람 몸의 실루엣만 안개처럼 희미하게 남았다. 그 다음 섹스 장면은 형태조차 없이 더 많이 뭉그러져 있다. 여기서 그의 작업 방식의 또 다른 특징 하나를 알 수 있다. 그의 모델은 전문 모델이 아닌 일반 사람들이다. 여기 커플들도 실제 커플들이다. 그들이 그의 작업에 조인되는 순간, 그들은 그의 작업의 협력자가 된다. 통념상 민망한 사진에 노출되기 위해선 모델들이 먼저 자기 세계를 깨고 인식 전환을 해야 한다. 작업을 통해 해방과 자유를 경험하는 건 비단 작가만이 아니라 모델들 역시 그러하리란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아타 김의 작업은 모델과 작가의 공동 퍼포먼스이다.

 

다음은 얼음시리즈. 얼음으로 조각한 반야심경이 72시간 동안 녹고 있는 모습을 잡았다. 모든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좀 더 리얼하게 잡기 위해 얼음이란 소재를 택했다. 이번 얼음은 두 개의 해골 조각이다. 현대 미술의 거장 앤디 워홀이나, YBA의 심볼 데미안 허스트가 즐겨 작업하던 해골이 녹고 있는 걸 보니, 거장의 작업들도 다 해체되는 느낌이다. 이번 얼음 조각은 마오쩌둥의 두상 시리즈다. 이제는 중국 혁명의 영웅까지 해체되고 있다. 옆에는 마릴린 몬로의 두상이 녹고 있다. 그는 자신의 것까지 만들어 녹아가는 과정을 담고, 그 녹은 물은 둥근 유리병에 잘 담아 두었다. 이 것들은 1천개의 작은 유리병에 담겨져 수련을 꽃피우는데 쓰여질 것이라고 한다. 아직 그의 작업은 진행 중인 셈이다. 사라지고 없어진 형체의 잔존물인 물은 점차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물질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런 작업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이미지를 재현하고 기록하려는 사진의 속성과 존재하는 것은 모두 사라진다’는 자연의 법칙을 대비시켜 존재의 실체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라고 한다.

 

'온 에어' 프로젝트와 쌍벽을 이루는 그의 '뮤지엄 프로젝트!'. 도록을 사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현대 미술의 생명은 색다름이다. 색다른 게 색다를 게 없는 현대 미술에서, 그의 작업은 정말 색달랐다. 그 도록에는 베네통 사진집 보다 한 발 더 앞서간 충격적인 사진들로 가득했다. 투명 아크릴 상자 속에 든 인간 누드들은 전쟁과 이념, 종교와 구원, 정상과 비정상, 본능과 욕구, 욕망과 죄의식, 폭력과 위선 등 인간 존재의 리얼리티를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뮤지엄 프로젝트 역시 그가 직접 섭외한 일군의 일반 모델들이 갖가지 다양한 퍼포먼스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의 작업 아이디어는 정말 신선했다. 아니 누구도 생각하기 힘든 독특한 것이었다. 그는 독학으로 사진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기존 작가의 그늘에서 배웠다면 그런 혁신적인 시도가 가능했을까. 중첩방식의 독특한 프로세스를 통해 사라짐을 보여주는 온 에어 프로젝트와 달리 뮤지엄 프로젝트는 인간의 자기 발견, 혹은 존재의 의미 찾기로 보였다. 이 두 프로젝트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짝이 되어서 존재와 사라짐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인도의 댈리를 장노출로 찍은 <인다라>시리즈는 더욱 충격을 주었다. 사람과 풍물로 복잡하게 얽힌 도시의 풍경은 1천 컷, 3천 컷, 1만컷의 중첩으로 완전히 형체가 사라지고, 화면에는 뿌연 회색만이 남았다. 그가 하루 종일 촬영하고 채집한 인도의 풍물들은 이미지가 겹겹히 포개질수록 그 이미지는 더 희미해져갔다. 나는 그 사진 앞에 망연자실 오래 서 있었다. 사라짐의 끝에서 아타 김은 무엇을 잡고 싶었던 것일까.

 

캠벨 책을 읽으며 그가 지향한 동양적 시간과 공간, 영원에 대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왔다갔다 하던 참에 그의 작품들을 대하니 머리 속에 반짝 스파크가 일었다. 캠벨이 지향하는 신과 종교관이 아타 김의 이름과 그의 작품 속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에 1만컷이라는 중노동도 마다 않고, 어려운 모델 섭외까지 작업의 과정으로 싸안는 이 사나이, 그의 작품이 온 몸으로 증언하는 그 '생각'이라는 것 때문에 나는 이렇듯 전율하고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카메라 장노출로 찍은 도시 풍경사진(뉴욕,천안문 광장),모터쇼전시장, 축구장, DMZ의 사진들, 세계인 모두 하나같이 '사라짐'을 통해 존재야말로 가장 지독한 긍정인 것을 역설하고 있었다.

 

"나는 자연의 섭리에서 배워온 내 생각과 철학을 사진이란 매체를 차용해 옮겨 쓸 뿐입니다."

 

10년 동안 고국에서 작품 하나를 팔지 못했던 그는 지금 현대 미술의 최전방 뉴욕에서 세계 사진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빌게이츠도 그의 고객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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