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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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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1일 04시 30분 등록

이 칼럼은 박소정(2기 연구원)의 글입니다. (2006.3)

 

 

내가 이 단어를 처음 느낀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소년 같고 들풀 같았던 내 친구들과 가슴으로 바람을 맞고 바다를 보러 다니고 하늘을 자주 보던 중학교 시절이 끝나고 본격적인 입시의 인문계 고등학교로 들어갔을 때.

학교가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좋아할 만한 것이 없었다. 마음을 빼앗길 것이 없었다.

그래. 마음을 빼앗길 만한 무엇이 없는 것, 마음이 허전한 상태. 그 상태가 내게 권태였다.


아침 일찍 등교해서 어슴푸레한 창밖의 교정을 보며 내가 사는 이유가 뭘까 내가 태어난 데는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를 중얼거리던 시절이었다.

눈썹을 얇게 그리고, 유행하던 블루블랙으로 염색을 하고, 주말에는 살짝 화장도 하고

남자아이들을 만나러 다녔다. 고등학교 1학년 때에는.

총각 선생님이 나를 보며 너 좀 놀지? 하던 시절이었다.

몇 개월 되지도 않아 재미가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주기로 했다. 아이돌 스타에게.

그때부터 고등학교 시절 내 생활의 전부는 스타였다. 나는 자율학습 시간 내내 그들이 나오는 라디오를 들었고 그들의 사진을 책 밑에 끼워놓았으며 자율학습을 땡땡이 치고 개구멍을 빠져나가 그들의 새로운 사진을 사러 나갔다. 콘서트에 가기 위해 도망가다가 교감에게 걸려 근신을 먹기도 했다. 자율학습 4시간 동안 내리 엎어져 자기도 했다. 집에 가서 밤새 통신을 하기위해, 그들의 팬클럽 사이트에서 ‘활동‘하기 위해.

나는 지금 스타가 나오면 비명을 질러대는 여학생들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어른이 되어있지만, 그들의 비명소리가 시끄러워서일 뿐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꿈이 부족하고, 마음이 허전하고, 그래서 좋아할 것이 필요한 것이다. 집중할만한 무언가.

그들을 좋아한다고 느끼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을 통해 자기를 즐겁게 하기 위함이다. 지루한 시간을 달래기 위함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대학교 시절도 비슷했다. 동아리 활동을 했지만 별로 좋아하지 못했고, 연애를 독하게 하지도 못했다. 그 시절, 그 권태로운 시간을 죽이기 위해 택한 것이 도서관이었다. 학과 공부가 아니라. 단지 책.

이제 생각해보면 나의 독서는 책을 읽고 싶어서가 아니라 책을 읽는 동안은 지루하지 않기 때문에 시작된 것이었다. 나를 지루하지 않게 하는 읽을거리. 권태롭지 않을 수 있는 흥밋거리. 편중된 독서였다. 덕분에 최다열람자 순위 몇 위에도 올라봤다. 아아, 나에게 독서는. killing time 이었구나. 이제 보니.


내가 왜 갑자기 이런 얘기를 꺼내느냐 하면, 어제 하루 종일 집에 박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몇 주 전에 발목을 삔 이후로, 출근을 해야 하는 주중은 제하고라도 주말에는 응당 집에 박혀 있어야 했지만, 주말에는 집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쓰고 생각하는 건설적인 사고를 전혀 할 수 없는 나인지라 이리저리 커피집을 찾아다니며 연구원 과제를 쓰고 책을 읽어야 했기에, 무리해서 돌아다녀서인지 영 발목이 좋지 않아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집에 박혀 있어야 했다.

하루 종일 얼마나, ‘지루해, 지루해’ 를 반복했던가.

영화를 봐도 재미가 없다. 티비는 더더욱 재미가 없다. 집에 있으니 책도 손에 잡히지 않고 독후감은 쓸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나는 왜 아무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가. 왜 나는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는가.

왜 나는, 권태로워 할 뿐 그 이유를 찾지 못하는가.

다른 이들은 모두 집중할 만한 무엇이 있는가. 그들은 어떤 일들로 일상을 채워나가는가.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의 그 자괴감.

내 관심은 내 안으로만 향하고 있다. 다른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나는 신문을 거의 보지 않고, 정치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회적으로 무엇이 이슈가 되는지에 관심이 없다.

기본적으로, 나는 남에게 관심이 없는 것일까. 이게 혹시 내 권태의 이유일까.

스스로에게만 파고드는 사람은 발전하지 못한다. 자기애만 강한 사람은 성장하지 못한다.

내가 칼럼을 쓰기 힘든 것도 그런 이유일까. 다른 것에는 별 관심이 없으니, 무언가에 대해 별다른 의견을 갖지 않는다. 아니, 별다르게 쓸 말이 없다.

내가, 연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향해 가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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