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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17일 11시 07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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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칼럼은 변화경영연구소 2기 연구원 정재엽 님의 글입니다

 

 

 

저는 지금 파리에 출장을 와 있습니다.

누군가 파리를 로맨틱한 도시라고 이야기했지요. 그러나, 저에게만은 예외인 것 같습니다. 출장으로 파리에 오면, 늘 거래처에 전화하기 바쁘고, 인터넷 상황도 그리 좋지 못해서 PC방을 찾아 헤매서 작업을 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습니다. 게다가 회사측에서 늘 정해놓는 호텔은, 150년의 찬란한 역사를 지녔다고 자랑하는데, 결정적으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있지 않아 모든 짐들을 험난한 회전식 계단으로 가지고 올라가야 합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국가문화재 당국 측에서 문화재 보호차원으로 엘리베이터 설치를 부결했다는군요.) 또한 방음시설이 잘 되어있지도 않을 뿐 더러,  밤마다 창 밖으로 보이는 거리에는 카페들이 즐비하게 펼쳐져 있어, 고성방가에 시달리는 이곳 파리-. 저에게는 결코 낭만적인 도시가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이곳에 오면 언제라도 반드시 들리는 카페가 있습니다. Les Deux Magots 라는 곳인데요, 여기는 다름아닌 신출내기 소설가였던 헤밍웨이가 5년 동안 파리에 머물며 초기작품을 썼던 곳입니다. 이 때를 회상하는 이야기는 말년에 썼던 회고록, <A Movable Feast>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이 책은 헤밍웨이가 죽은 3년뒤인 1964년에 출판된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젊은 헤밍웨이가 파리에서 신혼생활을 하며 작가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즐거운 삶이 작품 전체에 묻어있습니다. 파리에서의 수습시절은 문자 그대로 움직이는 축제일로 그의 마음속에 항상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이 작품은 헤밍웨이가 파리에서 만났던 유명한 문인들에 대해서도 기술하기도 합니다. 당시 그를 미국 문단에 소개시켜주는 견인차 역할을 했던 거트루트 스타인 여사(Gertrude Stein)’와의 이야기, 그리고 그의 문학에 영향을 주었던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와의 만남, 그리고 늘 비교 대상이었던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S. Scott Fitzerald)’에 대해서도 비교적 자세히 기술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바로 헤밍웨이 자신의 문학론입니다. 그는 자신의 서술기법에 대해서 말하면서 삭제를 한 부분이 이야기를 보다 강화시켜주고 그로 인하여 독자들이 이해하는 것 이상의 그 어떤 것을 느낄 수 있다면 그 부분은 삭제할 수 있다는 이론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그의 작품인 <노인과 바다>,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등에 모두 투영되어 있어서, 등장인물이나 사건에 대하여 논리적인 설명을 일단 유보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작가 자신은 경험에 의하여 세상에 인간이 기억하는 것보다 더 많은 애매하고 다의적인 부분이 있으며, 겪었던 모든 것을 진솔하게 피력하는 것이 곧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전 생애를 통해 세 번의 이혼과 네 번의 결혼을 하였으며, 만년에는 우울증에 알콜중독, 정신 불면증까지 겹쳐 불행하게 보냈습니다. 결국 1961년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의 자살을 두고 책임 없는 돌발적 행위라고 개탄할 수도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은 작가가 인생의 황혼기에 '최악의 조건에 저항한 용기있는 도전'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이 또한 < A Movable Feast>에서 밝혔듯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이 모든 의미를 전달 할 수 없다는 논리를 그의 인생을 통해 확인시켰을 따름입니다.

그는 이 Les Deux Margots 라는 카페에서 아침마다 글을 쓰기 전 연필을 깎으며 하루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저에게는 한없이 불편하고 답답한 아날로그의 도시인 파리가, 헤밍웨이에게는 늘 축제처럼 가슴 벅찬 도시였나 봅니다.

- 글쓴이 : 정재엽 smilejay@hotmail.com, 변화경영연구소 2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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