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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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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16일 08시 47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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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www.yes24.com

 

 

 

 

8월의 어느 날, 한 남자가 행방불명되었다.

- 아베코보 <모래의 여자> p.9

 

곤충채집을 나선 남자가 실종된다. 세상은 그를 사망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남자는 사구 속에 묻혀가는 집에 갇혀버린 것이다. 그 남자는 한 여자와 함께 매일 무너지고 밀려오는 모래를 퍼내야 살아갈 수 있다. 매일을 모래와 전쟁을 벌이는 남자. 그는 그 ‘모래의 집’을 탈출하려 하지만, 다시 붙들려 모래의 집으로 다시 들어가게 된다. 매일매일을 살아내기 위해 모래를 퍼내야 하는 남자와 여자. 이 소설에서 남자의 이름도, 여자의 이름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남자’와 ‘여자’로 불릴 따름이다.

 

아베코보의 소설 <모래의 여자>속 남자와 여자는 우리가 매일을 살아가는 모습을 ‘모래의 집’을 통해 형상화 한다. 모래의 집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막기위해 모래를 퍼내야 하는 일을 반복하는 남자와 여자. 하지만 남자와 여자의 입장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갇혀버린 모래의 집에서 탈출을 희망하는 남자에게있어서 노동은 괴로움만을 안겨줄 따름이다. 그는 자유를 갈망하지만, 그만큼 현실이 서글픈것이다. 반면에 여자에게있어서 노동은 당연한 처사인 것이다.

 

소설은 계속해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계곡의 위로 밀러올리는 시지프의 신화와 매일 파먹어도 다시 자라나는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연상시킨다. 남자에게 있어서 시지프의 바위는 매일매일의 노동이고, 프로메테우스의 간은 그의 심장을 관통하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다.

 

부락이 그럭저럭 유지되는 것도, 우리들이 이렇게 열심히 모래를 퍼내는 덕분이니까요... 우리들이 그냥 내버려 두면, 열흘도 못가서 완전히 모래에 묻혀버려서...... 그 다음에는, 뒷집이 똑같은 일을 당하게 돼요. 

- 아베코보 <모래의 여자> p.49

 

감금당한 남자와 그 남자에게 어떠한 감정도 있지 않은 채 묵묵히 노동을 하는 여자의 관계는 스티븐 킹의 작품, <미저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여자는 <미저리>속 ‘애니’와는 다른 모습이다. 남자는 온갖 탈출방법을 다 동원하지만 여자는 어떠한 동조도, 저항도 하지 않는다. 울 수도, 슬퍼할 수도, 절망할 수도 그렇다고 기뻐할 수도 없는 상황. 모든 공포는 바로 일상생활이라는 ‘모래’에서 나온다. 이렇게 백지장같이 차가운 여자는 오히려 더 커다란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소설의 마지막, 모래 구멍으로 사다리가 내려와서 도망을 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기지만, 더 이상 남자는 도망치지 않는다. 그가 도망치지 않은 이유는 단순하게 그 생활에 길들여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모래 속에서 물을 얻을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해 냄으로써 구멍 속에서 이미 구멍 밖의 삶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래와 매일의 사투를 벌이지만, 바로 '생활의 힘'이 더 큰 것을 보여준다.

 

결국, 세상은 남자를 실종 사망으로 처리한다. 사람이 한 명 없어져도 세상은 별일 없이 잘 돌아가고, 사람과 사람은 소통없이도 무미건조한 관계를 잘 이어간다. 이러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위태한 관계는 ‘모래’로 변형되고, 무너지는 모래를 퍼내는 행위는 이러한 관계를 어떻게든 복구해보려는 인간의 욕망을 그려낸다. 백지처럼 차디찬 여자가 보여주는 노동의 행위는 생에 대한 습관성을, 자유와 열망에 대한 접힌 꿈을 안고 사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모래의 집’ 이라는 독특한 설정과 본인이 원하지 않는 곳으로 ‘실종’ 되버린 환경, 그리고 모래를 퍼 나르는 숙제를 ‘해 내 야만’ 살 수 있는 인물들은 왠지 내 자신이 일상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순간 소스라치는 놀라움을 준다.

 

딱히 서둘러 도망칠 필요는 없다. 지금, 그의 손에 쥐어져있는 왕복표는 목적지도 돌아갈 곳도, 본인이 마음대로 써넣을 수 있는 공백이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유슈 장치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욕망으로 터질 듯하다. 털어놓는다면, 이 부락 사람들만큼 좋은 청중은 없다. 오늘 아니면, 아마 내일, 남자는 누군가를 붙들고 털어놓고 있을 것이다.

도주 수단은, 그 다음날 생각해도 무방하다.

- 아베코보 <모래의 여자> p.227

 

 

 

 

 

 

 

 

 

 

 

IP *.216.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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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7 07:41:08 *.216.38.13

이 칼럼은 아베코보 시리즈 3부작 중 첫번째 입니다.

 

일본의 초현실주의 작가로, '일본의 카프카'라는 칭호를 받았던 아베코보.

 

다음 칼럼은 오우감감독의 영화 <페이스 오프Face off >의 모티브가 되었던 작품, <타인의 얼굴>,

그리고, 3부작 마지막은 처절한 현대 인간의 모습을 담은 <상자인간>입니다.  

 

혹시나, '아베코보' 시리즈가 반응이 좋으면 그의 초기작에 대한 칼럼을 준비 중에 있긴한데, 그것은 독자분들의 반응에 따라 선택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비교적 덜 알려진 작가라 낯설기도 한 이름일 수도 있는데, 이런 작가를 발굴하는 것 또한 매주 칼럼을 쓰는 재미 중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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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7 14:23:38 *.36.139.126

내가 좋다 해도 반응이 좋은 거에 든다면 아베코보를 더. !  독자가 빙수 쏠 수 있다. 살롱에서.  글 잘읽고 있느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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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7 18:13:59 *.216.38.13

와와와~!!!

 

제 생애 처.음.으.로. 독자한테 빙수 얻어먹는 영광이!!!  

 

그럼 제가 술 쏠께요! ^ 캬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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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31 15:06:10 *.193.222.173

칼럼 기둘리고 있는데 뫼르소의 글이라면 어떤 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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