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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경영연구소의

  • 경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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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5일 23시 40분 등록

2006. 4월

 

변화경영연구원 1차 합격자가 되어 매주 한 편씩의 독후감과 칼럼을 쓴 지 한 달이 되어간다. 대학교 때 이후 처음으로 책에 줄을 쳐가며 맹렬히 파고들고, 마감을 코앞에 두고 후다닥 글을 써 올린 것이 벌써 4주나 되었다는 뜻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매주 책 한권을 읽고 독후감을 쓴다는 것, 일기도 쓰지 않던 사람이 매주 칼럼-까지는 아니더라도 글 한 편-을 쓴다는 것은 정말, 꽤나, 힘든 일이었다.


월요일마다 독후감을 다 못 썼네 칼럼은 정말 못 쓰겠네 하는 내 우는 소리를 들어주던 회사 선배는, 지난주에 ‘(연구원이 된다면) 앞으로 일 년 동안 50권의 책을 읽고 매주 이 걸 해야 한다고!’ 라고 징징 우는 소리를 내는 내게 급기야 한마디 던졌다.


“그렇게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잖아.“


화들짝.


“ 아니, 싫은 게 아니고, 단지 좀 힘들다는 거지. 그렇잖아, 일 년 동안 매주 한 권씩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칼럼을 써야 하는데, 갑자기 아프거나 할머니가 돌아가시거나 해서 한 주라도 놓치면 연구원에서 탈락된다는 거, 그게 너무 빡빡하다는 거지.... ”


사실, 앞으로 일 년 동안 매주 이런 마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 연구원 과제를 위해 평소라면 절대 읽지도 않았을 책들을 끙끙대며 읽으면서 그 책들을 통해 만난 새로운 세계에 감탄하고 있던 나는, 앞으로 이렇게 억지로라도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독서 커뮤니티라도 가입을 해야겠다, 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원래 책을 좋아하는 편이고, 주말마다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서 서점에 가곤 했지만, 편중된 독서습관 탓에 항상 비슷한 책을 읽어왔다. 이 기회를 통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색다른 분야의 책을 읽게 되었고, 무엇보다 미숙하게나마 그 책의 내용을 정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아주 기뻤다. 앞으로 일 년 동안 계속한다면, 다양한 책을 더 많이 읽을 수 있을 테고, 정리하는 것도 익숙해질 것이다. 이 얼마나 값진 수확인가.


사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책을 읽는 나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계획했었지만, 회사 마감이다, 야근이다 피곤해지면서 유야무야 되어버렸다. 반성하지만, 정말 실천이 힘들었다.

덕분에, 주말의 주요 시간을 거의 다 투자해서 과제를 완성해야 했다.


연구원이 되기 위해 개인사를 쓰기 시작했던 때부터 연구원 과제를 해야 했던 장장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나의 주말은 거의 아래와 같았다.


금요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서 노트북 배터리를 충전기에 꽂고 잠든다.


토요일. 10시쯤 부스스 일어난다.


11시. 노트북과 책을 커다란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선다.


12시. 커피집에 도착한다. 재빠르게, 창가 맨 구석자리를 확보한다.


카푸치노를 한 잔 사고, 운동화를 벗고,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 샤프로 줄 쳐 가며 책을 읽기 시작한다. 다 읽었으면, 쓴다. 나는 일단 쓰면서 생각하는 타입이라, 무조건 노트북을 두들겨야 한다. 쓸 말이 생각나지 않으면 책에서 줄 쳐 놓은 부분을 타이핑한다.


2시 반쯤이면 배가 고파온다. 베이글이나 샌드위치를 시켜 먹는다. 넓은 책상과 등받이가 높은 의자 때문에 자주 가게 된 그 커피집이 일요일에는 베이글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4시쯤이면, 거의 한계다. 더 이상 집중하기 힘들다. 이 때쯤이면 슬슬 딴 짓을 해야 한다. 화장을 고치거나, 잡지를 읽거나, 스케쥴표를 확인한다. 애인에게 전화해서 빨리 오라고 닦달한다. 애인이 오면 저녁을 먹고, 수다를 떨고, 싸우고, 집에 간다.


일요일.

10시쯤. 부스스 일어난다. 토요일과 같은 방법으로 집을 나선다.

가끔은 한 시간 가량 오락프로를 보며 뒹굴다가 시계를 보고는 투덜거리며 일어난다. 이렇게 지체한 날에는 이미 평소에 가던 커피숍은 자리가 없기 마련이니 비교적 한적한 커피숍을 찾아가야 한다.


카푸치노를 한 잔 사고, 운동화를 벗고, 노트북을 두들기기 시작한다.


쓴다. 머리를 쥐어짠다. 가끔은 필 받아서 신나게 쓰다가 노트북 배터리가 모자란 날도 있다. 그런 날은 PC방으로 옮겨가서 쓴다. (사실 이런 날은 딱 이틀뿐이었다)


네 시가 넘어가면, 또 한계다. 애인을 부른다. 밥을 먹고 투탁거리다 보면 집에 갈 시간이다. 연구원 과제를 하면서, 애인과 데이트할 시간은 주말 저녁뿐이었다.


연구원이 된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주말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생활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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