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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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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8일 00시 11분 등록

*이 글은 4기 정예서 연구원의 글입니다.


내 지인 중에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문학인이 여럿 있다. 며칠 전, 내식대로 읽혀지지 않는 삼국유사를 한참 노려보던 참에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 명을 보니 K선배였다. K선배는 사대 일간지중 하나인 D신문, 신춘문예로 화려하게 등단한 후, 곧이어 일억 장편 공모에 당선이 된 소설가였다. 무엇보다 성실한 글쓰기에 운까지 따라주어 문단의 주목을 받는 듯 했다.
그것을 계기로 선배는 파출소 소장이라는 직함도, 직장도 접고, 아예 근교에 집필실을 마련하여 야심차게 글쓰기에 몰입했다.
선배는 오 년 여 동안 대단한 열정과 성실성으로 다섯 권의 장편을 완간했다. 어쩌다 마주치면 “나는 한국이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소설을 쓸 것” 이라고 말했다.  만년 문학소녀였던 우리는 그 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만큼 선배의 길은 누가 봐도 전도양양해 보였다.

 그런데 등단 십 여 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선배가 전한 공지 사항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1. 신춘문예 동기들끼리 문예지의 회의실을 빌려 소설 창작실을 연다.
2. 소설을 배우고 싶다는 작가 지망생을 적극적으로 소개할 것.
3. 모월모시에 개원식을 열 것이니 참석 할 것.
아, 그렇게 됐군요. 네네 대답만 하던 나는 전화를 끊으며 겨우 한 마디 했다.
“아 선배 정말 잘 됐네. 그동안 들어 앉아 글만 썼으니 가르칠 만도 하지. 글쓰기에 자극이 될 거에요. 잘 됐어요.
“잘되긴 뭐가 잘돼. 아무도 내 글을 안사겠대서 밥 굶게 생겼으니 호구지책으로 나선거지. 학생이나 소개해줘. 너 욕 안 먹도록 열심히 가르칠게”

 나는 참석하겠다는 말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전화를 끊었다. 내가 그 같은, 십 분 위로용 인사를 하게 된 것은 들려오던 풍문 때문이었다. 선배가 출판사에서 장편 출판을 번번이 거절당했고, 글을 써서 원고료를 받아 본적이 언제였는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을 지인들에게 한다는 풍문 말이다. 글쓰기 외에 다른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누누이 말해왔던 선배로서는 그 같은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가인 C. 그는 대학의 전임강사다. 그리고 가끔 독립투사나 옛 위인들의 평전을 쓴다.

 그와 함께 식사를 하던 자리에서 “평전 출판 기념회를 하니 시간이 되면 오라. 이번 평전, 반응이 좋으면 다음 기획도 잡혀 있다”며 초대를 했다. 그리고 한숨처럼 “작가가 자기 글을 써야 하는데” 라며 말끝을 흐렸다.  작가라는 직업의 특권은 작품을 쓰고, 발표 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던 때였다. 소설가가 왜 작품을 안 쓰고, 가르치고, 평전을 쓸까. 한꺼번에 묻고 싶은 질문 서 너 개를 참느라 나는 고개만 끄덕이며 밥을 먹었다. 연배가 있으신 분인지라 궁금증을 다 묻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3년 전에 소설가가 된 친구는 K선배처럼 등단하고, 2년동안 열심히 소설을 썼지만 원고청탁은 물론, 어디에서도 발표 지면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친구에게 계간지 편집위원 제의가 들어 왔다. 그녀의 ‘소설가’ 개점휴업상태를 내 일처럼 걱정하고 있던 나는 제의를 받아들이라고 부추겼고. 덕분에 계간으로 문예지를 한 권씩 배달 받게 되었다. 성실한 그녀는 예술 고등학교에서 전임강사 자리도 얻었다. 그 친구가 내게 말했다.

“당신은 시를 배우면 어떻겠어. ”

소설은 어렵지만 시는 다른 일을 하면서도 할 수 있어.”

 “시가 그렇게 쉬운가? 시야말로 재능이 있어야 하는 거지. 그런데 시 한 편, 소설 한 편에 원고료가 얼마야?"
잡지사에서 원고료를 지급하는 일도 하는 친구의 대답을 들은 나는 적이 놀랐다.
그것은 창작의 수고는 물론이요, 노동의 수고라고도 볼 수 없는 ‘소액’이었다.
문학상 수상식에서 들은 어느 시인의 수상소감이 떠오른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일부 행태와 상관없이 글의 교환가치로는 살아 갈 수 없는, 가난한 문단의 시대를 문학인들이 문학 주변부에서 문학과 관계된 여러 일을 하면서 유장하게 삶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문인이 아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목격한 예와 “오직 작품으로 자급자족하는 유토피아가 도래하기를 기다린다” 라는 말을 통해서 작금의 어려운 문단 사정을 감히 유추해 볼 뿐이다. 그렇다면 왜 글을 쓰는 문인들은 그와 같은 삶을 근근이 이어 가고 있는 것일까.
  모든 글쓰기에는 사회적 책무가 우선한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여러 경로를 통해 문인으로 등단했을 때, 한 번쯤은 또는, 늘 그 사회적 책무감, 나아가 자신의 소명을 확인하는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명을 함부로 저버리지 못해 문학주변인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널리 읽히고 오랫동안 읽히는 고전(古典)을 쓰는 것, 그 책이 어떤 장르든 글을 쓰는 모든 문인의 소명이고 소망이다. 

일연의 글이 고전이 되어 이렇게 후대까지 널리 읽혀지고, 후인이 합장을 하듯이 자신의 글을 낭독 하게 된 것. 당시에는 미천한 계급이었던, 승려 일연이 삼국유사를 쓰면서 짐작이나 했을까. 삼국유사는 당시의 사회적 요구를 일연이 읽어 내고 편찬한, 즉 사회적 책무를 훌륭히 이뤄낸 예증의 산물이다. 사회적 글쓰기의 책무감을 충실히 이행한 선인의 글을 애써 새로 조망한 고운기의 삼국유사. 이 책이 800년 후에도 읽힐 고전이 된다면, 우리는 작가와 동시대인이 된다.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연과 고운기의 글을 읽으며 보낸 지난 일주일은 지나온 어떤 날보다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사람들의 통행이 빈번한 길목의 빨랫줄에 결코 자랑이 될 수 없는, 단 한 벌 뿐인 누덕누덕 기운 속옷을 널어 말리는 것과 같은, 그것이 바람에 이리저리 휘불리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봐야 했던 심정으로 보낸 시간.

  일천한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은, 골라내고 골라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여름 우기 중 쌀독에 난 뉘를 골라내는 일과 같은 일이다. 하지만 ‘깊이 통찰하지 못하고, 멀리 보지 못해서 그것을 배우러 온 학생이니까’ 라는 말로 자꾸 숨고 싶은 나를 달래 글을 올린다.

 글쓰기의 책무감은 차치하고, 정작 글쓰기는 아직 멀었다는 뼈아픈 자각이 몰려온다. 남루한 또 한 벌의 젖은 옷을 빨랫줄에 널어놓고, 다시 부끄러움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다. 고전 (古典). 그 이루지 못할, 그러나 기어이 이루어야할 소명을 위해 시인이 문학 주변인으로 지난한 세월을 견디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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